학원이나 과외 없이 아이들 키우기 힘든 세상. 그 비용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하는 엄마들도 많습니다. 학원 교육을 염두에 두고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도 있고 학원을 장려하는 교사도 있는 현실이지요. 공교육이 그만큼 무너졌다는 말이겠지요. 그런 세상에, 그런 공교육에 아이를 보내면서 아이의 자유의지만을 믿고 아이를 키우는 '간 큰 엄마'가 되려고 합니다. 그렇게 키워도 망하지 않을 듯한데, 저와 제 아이를 격려해 주실런지요? - 기자 말영혼 없는 베껴쓰기였더라도 공자의 공덕을 본 것일까, 눈 백개를 떼어내고 정지 버튼마저 누른 엄마 CCTV의 인내가 빛을 발한 것일까. 여하튼 아이와 엄마 사이에 훈풍이 넘실거리고 있다.
그 훈풍은 뜻밖에 학교에서 불어왔다. 상하반기 두 번에 걸쳐 있는 학부모 면담. 11월에 학부모면담 신청하라는 가정통지문이 왔길래 엄마의 헤벌어진 속을 담임 선생님께 하소연할 작정으로 면담을 신청했다. 이 학교 학부모 상담은 아이와 부모, 선생님 3자 대면 방식이다. 본인을 번연히 앞에 두고 실생활을 여실히 드러낼 작정이었다. 막상 얼굴을 마주한 선생님은 '왜 오신 거지?' 하는 표정이다.
"**이는 저에겐 선물같은 학생이에요. 선하고 밝고…. 이런 아이들만 있다면 선생님 노릇하기 참 편할 거예요."넘친다 싶을 만큼의 찬사. 하지만 그 속에 '공부 잘한다'는 문장은 들어 있지 않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소연을 시작할 타이밍이다.
"**이가 학원을 다니지 않고 공부하는 건 아시잖아요. 그런데 요근래 핸드폰을 많이 해서 저랑 좀 실랑이를 했어요. 저 혼자 힘으로 공부하기 어려운 아이인데 제가 버티고 공부하라고 하는 건지 고민스러워요"."음… 성적을 보니 공부 좀 하긴 해야겠네요. 그치 **아? 근데 **이 글쓰기 상 탄 거 아시죠? 또 반 애들 사이에서 **이는 팬픽 소설가로 이미 유명해요." 반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팬픽 소설(아이돌 스타와 일반인의 연애를 줄거리로 하는 인터넷 소설)을 한 번 써주었는데 반 아이들이 읽어 보더니 너도나도 자기를 주인공으로 하는 팬픽을 써 달라 해서 피곤하다고 녀석이 말한 적은 있었다.
그런 유치한 팬픽으로 뭐 하나 싶어 귓등으로 들었다. 또 진로탐색 시간에 쓴 글이 어쩌다 아귀가 맞아떨어졌는지 상을 받아왔었다. 부상으로 받은 문화상품권이 눈에 띄었으나 글을 읽어 보니 그다지 신선하진 않았으므로 다른 아이들이 워낙 괴발개발 대충 썼나보다 했었다.
"**이 글은 중학교 1학년 수준을 뛰어 넘어요, 어머니. 예고에 문예창작과가 있는데 거기 보내실 요량으로 준비시켜 보시면 어떨까요?"아이가 찾은 재능, 나에게도 보름달 같은 등이 커졌다
핸드폰이란 단어가 나올 때부터 낯빛이 흐려져 있던 아이의 얼굴에 쨍 하고 햇살이 쏟아진다.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이리 꼬았다 저리 꼬았다 하는 양이 가관이다. 엄마라고 다를까. 내 아이가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선생님께 듣고 보니 가슴에 보름달같은 커다란 등이 켜졌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그날 당장 컴퓨터에서 주위에서 갈 만한 예고를 검색하고 문창과를 탐색한다. 선배들의 시험 후기도 들여다보고 뭐가 필요한지 시시콜콜히 체크한다. 결론이 났나 보다.
"나 공부해야 해. 문창과는 공부 잘하는 애들이 많이 온대. 특히 국어랑 영어. 어떡하지? 영어 못하는데….""예고 가게?""그럴까봐!"'영포자(영어 포기한 자)'를 꿈꾸던 녀석은 영어를 포기하면 안 되는 절박한 이유가 생겼다. 국어는 못한 적이 별로 없었지만 녀석에게 영어는 인칭에 따라 동사가 이상스럽게 변하는 '꼴불견' 과목이었다. 그게 지나간 과거가 되는 날이 오다니. 영어 단어 해석을 영어로 쓰는 시험에 완벽히 통과하질 않나, "영어가 하다 보니 되네!"라는 말까지 한다.
덩달아 다른 과목도 공부한다. 핸드폰 하다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하다 싶을 때쯤 책상 앞에 잠깐 앉았었는데 이제 완벽히 거꾸로다. 잠시 머리 식히려고 핸드폰 잠깐 매만져 주고 세시간 내리 책과 씨름한다. 그 모양새를 보고 있자니 엄마는 너무 달콤해서 얼굴의 기미마저 절로 사라지는 듯하다.
그 여세를 몰아 아이는 역대 최고 점수를 기록하며 2학기 기말고사를 끝낸다. 중간고사를 워낙 망쳐놨기에 그보다 못하기도 어려웠지만 국, 영, 수 주요과목을 상위권에 올려 놓은 쾌거는 칭찬 받을 만하다.
'마음 키우기' 공부도 멈추면 안 돼
"목표가 생기니까 되는 거 같아."
"진짜 예고 가려고?""응! 근데, 애들 미친 거 아냐? 벌써 2학년 꺼 공부하는 애도 있고 3학년 꺼 하는 애들도 있어."아이 눈엔 선행학습 하는 아이들이 제정신 아닌가 보다. 중학교 때 이미 고등수학을 하는 아이들도 있단 얘기를 들으면 더 펄쩍 뛰겠지. 중학교 성적부터 이미 표준편차라는 것을 적용하고 있고, 아이들을 성적으로 줄 세우기 위해선 중학 수학 문제에 고등수학을 살짝 버무려 상위권 동점자가 많아지는 것을 막는다는 증권가 찌라시 같은 얘기들을 건네 들은 적 있다. 이런 상황이 실제라면 선행학습이 큰 무기가 될 수도 있겠지.
"그 아이들은 오죽 바쁘고 힘들겠냐? 그런 공부는 안 해도 되는데, 마음 키우기 공부는 멈추면 안 돼. 그래서 하는 말인데, 논어 쓰기 다시 시작이다!""뭔 말인지도 모르겠던데….""그래도 계속 써, 한 문장이라도 걸리는 날이 오겠지." 기말고사가 끝나고 선생님은 아이에게 청소년 문학교실 수강 신청서를 작성해 주신다. 어떤 레벨의 문학교실인지 알 수 없으나 학교장 추천을 받은 소수 아이들만 그 문학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단다.
담임 선생님은 '**이가 다니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문학수업을 위해 따로 학원이나 과외를 할 생각이 없는 엄마를 둔 아이를 배려한 선생님의 응원이 그저 고맙다. 아이는 선생님께 문학교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가슴이 떨려 죽을 뻔했다고 호들갑이다.
일반학교보다 곱절은 더 된다는 예고 학비 걱정은 나중에 하자. 엄마는 아이가 예고에 가지 못해도 상관없다. 가슴 뛰는 목표를 세우고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모자랄 것이 없다.
핸드폰이나 컴퓨터에 빠져 있는 동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동기'였나 보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 모호한 가운데 아이는 그저 시간을 죽이고 있었나 보다. 누군가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주는 순간이 오자 아이는 먹이를 잔뜩 먹은 새가 날개를 펼치듯 비상하는구나.
엄마는 아이의 날갯짓을 보며 그저 손을 흔들어주는 역할을 하면 되는구나. 그 사이를 못 견디고 아이를 닦달한 엄마는 중요한 경험치를 한다. 아이를 믿고 응원하는 것보다 탁월한 것은 없다고. 아이는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중2가 된다. 엄마는 그 시절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