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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미 공군 사격장. 2004년 4월 20일 농섬 상공에서 폭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미 공군 사격장. 2004년 4월 20일 농섬 상공에서 폭격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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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동안 미군사격장으로 사용됐던 경기도 화성 매향리사격장이 주민들의 품으로 돌아간다. 지난 19일 경기도는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을 통해 내년 3월 말까지 1단계로 매향리 농섬 주변의 노출된 사격잔재물 제거를 마무리하고 농섬 반경 1~2.4㎞ 지역 갯벌의 어장을 개발해 주민들에게 돌려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매향리 농섬 주변 갯벌은 1955년부터 미 공군사격장으로 사용되다가 2005년 폐쇄된 이후 2007년 국방부로 소유권이 이전됐다. 이후 화성시는 국방부로부터 관리권을 이전받아 2010년부터 매향리 인근 갯벌을 바지락 등 패류양식어장으로 이용하려고 했지만 국방부의 반대로 미뤄졌다. 그동안 국방부는 갯벌에 사격잔재물이 많아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갯벌 사용을 반대했다.

매화 향기 날리어 매향리라네
농섬 웃섬 구비섬 아름다운 땅

노래패 '우리나라'는 노래 <매향리는 전쟁 중>에서 매향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매향리는 이름 그대로 매화 향기 가득하고 갯벌이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이었다. 하지만 60년 동안 매향리에는 매화 향기가 아니라 포화 연기만 자욱했고 갯벌에는 조개껍질이 아니라 포탄껍데기만 뒹굴었다.

1955년부터 사격장이 폐쇄된 2005년까지 1년에 250일 동안, 하루 600회에서 700회 가량 사격훈련이 계속됐다. 매화나무가 가득했던 농섬은 3분의 1로 크기가 줄어들었고 매화나무는 10그루도 채 남지 않았다.

매향리는 향기를 되찾았을까?

매향리 주민들이 미 공군 사격장에서 수거한 포탄더미 뒤엔 오늘도 사격훈련이 있음을 알리는 주홍색 깃발이 펄럭인다.(2004년 4월 21일)
 매향리 주민들이 미 공군 사격장에서 수거한 포탄더미 뒤엔 오늘도 사격훈련이 있음을 알리는 주홍색 깃발이 펄럭인다.(2004년 4월 21일)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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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주민들은 극심한 소음 피해에 시달리고 불시에 마을로 날아드는 포탄과 파편 때문에 인명피해를 입기도 했다. 사격장이 생긴 이래 피해를 입은 주민은 모두 713가구, 4000여 명이었다. 8개월 임신부를 포함해 오폭 및 불발탄 사고로 13명이 사망했고 손목 절단 등 중상을 포함해 22명이 부상을 입었다. 자살한 사람도 32명에 이른다.

2007년 원진환경건강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매향리 주민들의 자살률은 다른 지역보다 2~7배가량 높았으며, 정신과 상담이 필요한 고도우울증 환자는 전체 주민의 26.5%로 4배 이상 많았다. 고도불안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세를 보이는 주민은 각각 6.9%, 15.81%로 다른 지역보다 9배 이상 많았다.

매향리 주민들의 저항은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훈풍은 얼어붙었던 매향리 주민들의 저항정신을 깨어나게 했다. 이전까지 미군기지는 신성불가침의 성역과 다름없었다. 주민들은 수십 년 동안 온갖 피해에 시달리면서도 항의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분을 삭이지 못한 몇몇 주민들이 미군에 식칼을 휘두르는 등 즉자적이고 산발적인 저항을 한 것이 전부였다.

1988년 6월 '매향리 미공군 국제폭격장 철폐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이하 주민대책위)가 결성되고 7월 주민 614명이 청와대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매향리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1989년 3월 팀스피리트 훈련기간 중 주민 700여 명이 3주 동안 폭격장을 점거했고 1994년 12월에는 198채 가옥 균열피해에 대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면서 미군기지 앞에서 3개월 동안 천막농성을 벌여 한미배상심의위원회로부터 3억5천만 원을 보상받았다. 1998년 2월에는 주민대표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폭격소음피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2000년은 매향리 싸움의 분수령이었다. 5월 8일 A-10 근접지원기의 오폭으로 주민 6명이 부상당하는 이른바 '매향리오폭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매향리의 비극은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6월 한 달 동안 매향리에서 사격장 폐쇄를 위한 세 차례의 범국민대회가 열렸고 6월 30일 '매향리 미군 국제폭격장폐쇄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가 결성되었다. 이후 범대위와 주민대책위의 주도로 범국민적인 저항운동이 전개되었고 매향리는 한국 '평화운동의 메카', '반미운동의 성지'로 부상했다.

2004년 3월 매향리 주민들은 첫 번째 승리를 쟁취했다. 대법원은 매향리 주민 1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음피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2005년 1월 매향리 주민 1889명의 손해배상소송에서도 승리해 총 81억 원의 위자료를 받게 됐다. 그리고 2005년 8월, 주한미군은 마침내 매향리사격장을 폐쇄했다.

매향리투쟁은 '한국 평화운동 최초의 승리'였다. 또한 신성불가침의 성역, 치외법권과 다름없었던 주한미군을 상대로 이뤄낸 값진 승리였다. 매향리의 승리는 불평등한 한미동맹에 경종을 울리며 올바른 한미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초석을 놓았다.

'아름다운 땅'은 아직도 신음 중

1968년에서 69년까지 임진강과 미군기지 주변에 고엽제를 무단 방류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필 스튜어트가 2011년 7월 26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신산리 캠프 피터슨 옛 미군기지 터를 찾아 당시 기억을 되살려 고엽제 처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1968년에서 69년까지 임진강과 미군기지 주변에 고엽제를 무단 방류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필 스튜어트가 2011년 7월 26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신산리 캠프 피터슨 옛 미군기지 터를 찾아 당시 기억을 되살려 고엽제 처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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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매향리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2006년 주민대책위와 환경운동연합이 실시한 토양 오염도 조사에 따르면 매향리에서 고농도의 중금속이 다량 검출됐다. 납은 전국 평균보다 최고 923배나 높은 4786㎎/㎏이 검출됐고 구리는 9배가 높았다. 카드뮴은 23.1배나 많이 나왔다.

경기도와 화성시가 환경정화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매향리가 제 모습을 되찾으려면 앞으로도 수 십 년의 노력이 필요하다. 매향리가 진한 매화 향기를 되찾고 '평화생태공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매향리의 갯벌은 되찾았지만 '아름다운 땅'은 아직도 신음 중이다. 여전히 한반도 곳곳에서 미군은 훈련을 지속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아름다운 땅'에서는 포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

주한미군은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2016년까지 서울, 의정부, 동두천, 부산 등 80개 미군기지와 시설들을 반환하기로 했다. 2013년 현재 49개가 반환됐고 용산기지를 포함해 31개는 2016년까지 반환된다. 미군기지가 반환되면서 그동안 한미동맹의 장막 속에 감춰져 있던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실태가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반환되는 미군기지와 시설들은 대부분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죽음의 땅'이 돼버렸다.

2006년 7월 24일 환경부가 국회에 보고한 '반환기지 환경치유 협상결과 보고'에 따르면 당시 환경오염조사를 마친 29곳 중에서 26곳이 심각하게 오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토양만 오염된 기지가 10곳, 토양과 지하수가 모두 오염된 기지는 16곳이었다. 2005년 5월 초에 공개된 '반환 예정 미군기지 환경오염 조사 후속 쟁점사항 및 향후 대책'이라는 환경부 문서에는 15개 반환기지 중 14개 기지의 토양이 유류와 중금속으로 심각하게 오염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오염물질은 기준치보다 평균 4배, 최고 100배나 많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용산 기지 주변의 녹사평역, 캠프킴 주변 등 기름 유출로 지금까지 오염이 확인된 지역의 면적은 최소 1만2235㎡라고 한다. 서울시는 기름 유출 정화비용으로만 이미 58억 원을 지출했다. 미군은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현재 부산시민공원으로 조성 중인 하야리아 기지 주변지역의 지하수에서는 대표적인 발암물질인 페놀이 기준치보다 4배나 많은 최고 0.021㎎/L이 검출됐다. 인체에 치명적인 비소도 기준치의 247배에 이르는 최고 96.5㎎/㎏까지 검출됐다. 비소에 오염된 물질을 장기간 섭취하면 방광암, 피부암, 간암, 신장암, 폐암 등에 걸릴 수 있고 한다.

매향리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부산 서면 도심에 있는 미군기지인 하야리야 부대 전경.(2010년 1월 27일)
 부산 서면 도심에 있는 미군기지인 하야리야 부대 전경.(2010년 1월 27일)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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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는 왜관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고엽제를 암매장했다는 퇴역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의 증언이 언론에 공개돼 큰 파장이 일기도 했다. 스티브 하우스는 부천의 캠프 머서, 부평의 캠프 마켓, 춘천의 캠프 페이지에도 고엽제를 매몰했다고 증언했다. 강원대 환경과학과 김만구 교수에 따르면 2003년 5월 삼성물산의 의뢰로 왜관 미군기지 지하수와 토양시료를 분석했는데 기준치의 30배가 넘는 고농도 발암물질이 검출됐다고 한다.

이처럼 반환기지뿐만 아니라 전국의 거의 모든 미군기지들이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지만 미군 당국의 비협조로 실태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용산기지 기름유출도 사건이 확인된 후 12년이 지난 2013년 5월에 겨우 한미공동실무회의가 구성됐다. 그나마 실무회의가 구성된 것도 박원순 시장이 "조사요청이 거부되면 1인 시위라도 해야겠다"며 강하게 압박했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반환기지의 환경복구 비용을 사실상 우리 정부가 모두 부담한다는 점이다. 환경단체들의 추정에 따르면 반환기지의 환경복구비용은 최소 5천억 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기지 밖 오염까지 포함하면 최소 1조 원은 넘는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환경에 관한 특별양해각서'에 따르면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ISE)에 대해서만 미군 측에 정화 책임이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반환기지의 오염실태를 오히려 축소 발표해 미군의 정화 책임이 있는 반환기지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반환기지 환경오염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2009년부터 부산 하야리아 기지 등 7개 반환기지에 대한 위해성 평가를 실시했다. 2010년 1월 이명박 정부는 "6개 기지의 경우, 미 측의 자체 조치 및 일부 보완 조치 등으로 오염이 없거나 위해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발표했다. 발암물질이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다량 검출된 하야리아 기지에 대해서도 전체 면적의 0.26%만 위해성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 보고서는 부지 내에서 채취한 244개 시료 가운데 235개에서 기준치 이상의 비소가 검출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군 활동에 의한 인위적인 오염이 원인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는 납득하기 힘든 결론을 내렸다. 파주 지역의 4개 미군사격장에서는 축구장의 143배나 되는 약 102만㎡의 부지를 단 이틀 만에 조사를 끝내는 경이로운 축지법을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 한국 정부의 위해성 평가는 주한미군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요식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박근혜 정부도 5개 반환기지에 대한 위해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결과는 이명박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용산기지는 반환되는 것이 아니라 평택으로 이전된다. 매향리 사격장은 폐쇄된 것이 아니라 군산 직도로 이전됐다. 심지어 올 3월에는 B2 스텔스 전략폭격기가 직도에서 핵폭탄투하 훈련까지 진행했다. 주한미군은 아직도 마치 굶주린 메뚜기 떼처럼 '아름다운 땅'의 곳곳을 옮겨 다니며 금수강산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매향리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나홀로연구소> http://blog.naver.com/silchun615 에도 중복 게재 됩니다.



태그:#매향리, #용산기지 기름유출, #농섬 반환, #미군기지 환경오염, #전만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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