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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희가 한 행동이 옳다고 봅니다. 대자보를 보시면 알겠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도, 크게 문제될 만한 것도 없습니다. 고등학생이라고 의사 표현도 못 하나요? 또 지난번에는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효력이 인정된다'는 대법원 판결도 있었고요. 법을 어기거나 학칙을 어긴 것도 아닌데 왜 선도위 결정까지 내려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박재신(50)씨 목소리에 억울함이 묻어나왔다. 박씨의 자녀인 개포고 2학년 박준희(18, 가명) 학생은 지난 19일 오후 6시께 등·하굣길 외벽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붙였으나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철거됐다. 대자보는 "내면화된 긍정은 우리에게 눈을 감고 노예처럼 살 것을 강요한다"며 비판적 사유를 강조하는, 일반적 내용이었다.

개포고 2학년 박준희(18,가명) 학생이 직접 써 붙인 대자보. 대자보는 "내면화된 긍정은 우리에게 눈을 감고 노예처럼 살 것을 강요한다"는 등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개포고 2학년 박준희(18,가명) 학생이 직접 써 붙인 대자보. 대자보는 "내면화된 긍정은 우리에게 눈을 감고 노예처럼 살 것을 강요한다"는 등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 학생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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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학생이 무단 철거에 반발해 생활지도부장을 찾아갔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학교 측은 학부모 박씨에게 전화해 '오는 30일 징계를 목적으로 하는 선도위원회를 열겠다'며 통보했다. 박씨는 "대자보는 의사표현을 한 정도일 뿐인데 상벌을 준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아들이 한 일이 옳다고 본다, 끝까지 응원해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애들이 무슨 정권 퇴진하라고 거리에서 데모를 했습니까, 아니면 파업을 했습니까. 고등학생이라도 본인들이 하고 싶은 얘기는 할 수 있는 겁니다. 나름대로 답답해서 쓴 글인데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것 아닙니까? 저도 준희에게 잘못이 없고 학칙에 위배된 게 없다고 보기 때문에, 아이를 끝까지 응원하고 지지할 생각입니다."

스스로를 '일반 회사원'이라 소개한 박씨는 "아이가 공부나 행실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면서 "학교가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자신은 평소 뉴스를 챙겨보는 정도일 뿐 사회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아이가 어릴 때부터 인권 등에 관심이 많았고, 앞으로도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만큼 되도록 제약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중학교 때는 해당 학생이 복장 단속과 관련해 학교에 건의, 단속 규정이 바뀐 적도 있었다고 한다.

"대자보 사전에 양해 구하고 붙여야" VS "학칙에 규정된 바 없는데 무단 철거"

학교 측은 대자보 무단 철거 사실이 청소년 인권단체 등을 통해 알려지며 논란이 되자 일단 한 발 물러난 상태다. 개포고등학교의 김아무개 교무부장은 26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원래 선도위에 올리기로 결정이 됐었는데, 오늘 다시 대책위원회를 열어 그게 타당한지 논의 중"이라며 "반드시 그 학생이 처벌이 된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학교 측은 징계 위기에 대해 '대자보를 붙여서'가 아니라 대응과정에서 학생이 보인 태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해당 학생이 교사와 대화하면서 불손한 태도를 보였으며, 대자보 철거에 항의하는 내용의 A4용지 인쇄물 약 600장을 각 반마다 돌려 다른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것이다. 학교가 대자보를 무단 철거한 이유에 대해서도 "(자보가) 미관상 보기 좋지 않았고, 교육적 차원에서 철거했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박준희 학생이 학교 측의 대자보 무단 철거에 항의하는 뜻에서 만든 인쇄물. 해당 학생은 이를 600장 찍어 각 반에 20장씩 돌렸다.
▲ '대자보 왜 철거하셨나요' 박준희 학생이 학교 측의 대자보 무단 철거에 항의하는 뜻에서 만든 인쇄물. 해당 학생은 이를 600장 찍어 각 반에 20장씩 돌렸다.
ⓒ 학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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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로 아들과 제가 학칙을 꼼꼼히 살펴봤는데 학칙 자체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선도위에 올리겠다는 이유는 아이가 불손하게 행동했고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건데, 우리나라가 무슨 공안국가도 아니고 전단지 돌렸다고 다 선동입니까? 그리고 불손한 행동이라는 것도, '어느 기준에 비춰 불손한 거냐'고 물었더니 학생부장 말이 '나는 선도위에 올릴 뿐, 그 판단을 선도위에서 할 거다'라고 하더라고요."

해당 학생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오히려 학교 측이 대화 과정에서 '글씨를 못 쓴다'는 등의 인신 공격적 발언을 했으며, 서울시 교육청이 채택한 학생인권조례 중 표현의 자유와 자치활동의 자유(제17·18조)도 위반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학칙을 봤지만 특히 인쇄물 배포에 대해서는 어떠한 규정도 없었고, 게시 전에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도 없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이에 대해 명확히 해명하지 못했다. 애초 교칙이 있다고 주장하던 학교 측 교무부장은 이후 "게시물을 사전에 양해 구하고 붙이는 게 일반적"이라면서 "이제껏 통상적으로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굳이 (학칙에) 명시가 필요했나 싶은 정도"라고 말을 바꿨다. 대자보 철거가 표현의 자유 등 인권 조례를 침해하지 않았냐고 묻자 "인권조례에 위반되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청소년 인권단체 항의방문·인권위 진정 예정... 학부모 "끝까지 항의할 것"

현재 '아수나로' 등 청소년 인권단체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 교육부 공문 발송이 "학생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개포고 등 개별학교 사례를 넣어 국가인권위원회에 27일 진정을 제기할 예정이다. 또 같은 날 온라인 모임 '청소년 안녕들하십니까'에서는 오후 1시 개포고등학교 앞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 방문도 할 예정이다.

'청소년 안녕들 하십니까' 등 청소년 인권단체는 27일 오후 만나 개포고등학교에 항의방문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소년 안녕들 하십니까' 등 청소년 인권단체는 27일 오후 만나 개포고등학교에 항의방문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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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아이가 징계 받지 않을까) 걱정 안 되는 부모가 있겠냐"고 웃으면서 "그래도 아이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만큼 혹시 징계를 받게 되더라도 끝까지 항의할 것"고 말했다. 교육부가 지난 18일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 '(대자보로 인해) 면학분위기를 해칠 우려가 제기된다'는 공문을 보낸 후 여전히 전국에서 '안녕 대자보'를 놓고 징계 시비가 일고 있는 가운데, 그가 남긴 말이 의미심장하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나마 관심이 있어야 자기 목소리를 내고, 그 중에서도 생각이 더 깊은 아이들이 행동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걔들이 조직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도 아닌데, 가만히 놔두면 자연스럽게 지나갈 문제를 '대자보 붙이면 면학분위기가 흐트러진다'며 탄압하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태그:#안녕 대자보, #대자보 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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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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