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칙적으로 교사들에 대한 평가가 불필요하다고 보는 사람이다. 교사들은 어디 먼 나라에서 수입해 온 '용병'들이 아니다. 이 나라 정부가 최종적으로 지도·관리하는 교원양성시스템(교·사대 및 일반대 교직 과정) 아래서 배출된다. 그들을 믿지 못하겠다고 해마다 평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현재의 교원양성 시스템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과 같다. 그 시스템을 믿지 못한다고? 그렇다면 교사들을 평가하기 전에 그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교원평가는 피할 수 없는 제도가 돼가고 있다.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교사는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해법은 한 가지다. 교원평가가 최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공정하게 이루어짐으로써 그 결과가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교원능력개발평가(교원평가)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교사 평가제도는 결코 그렇지 않다. 왜 그런가.
'2.5', '또는' 도대체 무슨 기준인가
얼마 전, 2013학년도 교원평가의 마지막 단계가 끝났다. 지난해 12월 27일까지 각 단위학교에서 능력향상연수 대상자 선정 심의 결과를 도교육청에 보고함으로써 공식적인 교원평가 업무가 일단락된 것이다.
차후 교사들 앞에는 평가 결과를 활용해 운영되는 맞춤형연수가 기다리고 있다. 맞춤형연수는 세 가지로 나뉜다. 교원평가 결과 우수교사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지는 학습연구년 특별연수, 평가 점수가 기준 점수 아래로 나와 미흡 교사로 판정된 이들이 받는 능력향상연수, 이들을 제외한 전 교원이 대상자인 자율연수가 그것이다.
교원평가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능력향상연수 대상자 선정과 관련한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교원평가 제도 전체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교육부 안에 따르면, 능력향상연수는 '단기', '장기기본', '장기심화' 세 가지로 구별된다. '단기'는, 교사 및 수석교사의 경우 동료교원평가 2.5 미만 또는 학생만족도조사 2.5 미만이 해당자가 된다. 동료교원평가와 학부모만족도조사 결과가 활용되는 교장·교감도 마찬가지다. 장기기본, 장기심화는 각각 능력향상연수 연속 2회, 연속 3회 지명자들이 받는 능력향상연수다.
그런데 단기 능력향상연수 선정기준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다. 접속어 '또는'이다. 단기능력향상연수 선정에서는 선정 지표인 동료교원평가와 학생만족도조사를 함께 보지 않는다. 둘의 평균값이 아니라 그중 하나라도 점수가 2.5 아래로 나오면 단기 능력향상연수 대상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교장·교감도 똑같다.
교원평가 결과 미흡 교사 여부를 가르는 기준인 2.5는 도대체 어떻게 결정된 것일까. 2.4점을 받은 교사가 2.5점을 받은 교사보다 미흡하다는 근거는 무엇일까. 교원평가 운영 계획안을 짠 교육부 관료들은 그 0.1점의 차이로 인해 교사들이 맞닥뜨릴 참담한 상황을 과연 한 번쯤이나 떠올려 보았을까.
강제 연수 대상자가 된 교사들이 극심한 자기 모멸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학생지도에 헌신적으로 매진한 교사들이 미흡 교사가 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몇 년 전에는 능력향상연수 대상자로 지명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장담하건대, 능력향상연수 후에 자신의 전문성이 신장되었다고 여기는 교사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훼손된 자존감으로 인해 교육에 대한 열정을 아예 잃어 버린 이들이 대다수가 아닐까.
교육부가 평균값이 아니라 '또는'으로 결정한 배경도 미심쩍기만 하다. 짐작이 가는 대목이 없진 않다. 그간 교육부는 동료교원평가가 온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 실제로 동료교원평가는 학생만족도조사에 비해 그 결과값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오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둘 중 하나라도 기준 점수에 미달하면 능력향상연수 대상자로 지명하도록 한 게 아닐까.
'또는'으로 꼼수를 부린 교육부 안은 문제가 많다. 역설적이지만, 모든 평가에서 평가 결과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평가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다. 그렇게 분석된 의미를 통해 평가 결과를 활용한 개선이나 변화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겠기 때문이다.
달랑 1명이 한 교원평가, 의미있을까어떤 평가 결과가 유의미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평가에 참여한 이들의 비율이 일정한 기준을 넘어야 한다. 평가 참여자 수가 모두 10명인 평가에서 1명이나 2명이 참여한 평가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교육부 안에 따르면, 그 1명이나 2명이 참여한 평가 결과가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나는 이번에 동료교원평가에서 3점대 후반 점수를 받았다. 단 1명이 참여한 평가 결과였다. 그런데 만약 나를 평가한 그 '미지의' 선생님이 2.5 미만을 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꼼짝없이 '미흡' 판정을 받아 강제 연수를 받아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린다.
학생만족도조사도 마찬가지다. 한 반 30명 중 단 1명이나 2명이 평가한 결과라도 2.5 미만이 나오면 강제 연수 대상자가 된다. 한 학년 200여 명 중 너덧 명의 평가 결과가 그렇게 나와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올해 이렇게 극소수의 학생이나 동료교원이 평가한 결과에 따라 강제적인 능력향상연수를 받게 된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1명이든 2명이든 응답률에 상관 없이 점수가 기준 이하로 나오면 무조건적으로 강제 연수 대상자로 지명하라는 교육부의 지시 때문이다. 작년 경기도교육청에서처럼 최저 응답률을 40%로 정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다.
문제는 또 있다. 교육부 안은 학생만족도조사나 학부모만족도조사 결과가 0인 경우에도 60시간 이상 연수를 이수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 연수는 교원이 자율적으로 계획하여 실시하는 것이다. 강제 능력향상연수에 비해 심리적 압박감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이다.
하지만 그 부담감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귀한 시간을 쪼개 60시간 이상 연수를 받는 게 한갓진 취미 활동일 수는 없지 않은가. 당장 올해 나도 60시간 이상 연수를 이수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 누구도 나를 평가하지 않아서다. 벌써부터 언제, 무슨 연수를 받아야 하나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다.
사실 이런 문제는 그 해결책이 간단해 보인다. 동료교원이나 학생, 학부모 등이 되도록 많이 평가에 참여하면 저절로 풀릴 듯하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도록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일선 학교의 교사들은 평가 자체의 신뢰성이나 공정성, 합리성을 의심한다. 이는 학생이나 학부모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발 더 나아가 학생·학부모들 사이에는 평가 결과에 따른 불이익을 염려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평가자들의 익명성을 보장한다며 적극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그렇다고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정서적으로' 자연스레 느끼는 불안감을 떨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
교원 전문성 향상, 정말 효과 있나교육부는 교원평가가 교사의 전문성 향상을 위한 것이라고 줄기차게 되뇌고 있다. 평가를 통한 진단 결과에 따라 전체 교원에게 맞춤형 교원연수를 제공하겠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교원평가 운영안을 보면 교육부의 주장이 헛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된다. 결과의 신뢰성을 보장해 주지 않는 낮은 응답률이나 0의 결과값에도 불구하고 연수를 이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합리한 강제 이수 규정 때문이다. 평가의 최종 목적이 점수 낮은 교사를 강제 연수 대상자로 지명함으로써 교사들에게 모멸감을 안겨주는 데 있지 않나 의심될 정도다.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는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로랑 베그의 최근작이다. 이 책에서 로랑 베그는 '당근'과 '채찍'이 조련사의 도구이지 교육자의 도구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당근과 채찍이 '도덕을 아직 깨우치지 못한' 존재들을 기르고 길들이는 데에나 쓰이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보상과 처벌이 어린아이들에게나 유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원평가와 관련한 교육부의 관점은 이 '당근·채찍론'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교원평가 결과 우수교사에게는 6개월~1년간의 학습연구년 특별연수(교수들의 안식년제와 비슷하다)라는 당근이 주어진다. 점수가 낮은 교사들에게는 강제적인 능력향상연수라는 채찍을 휘두른다. 교사를 어린아이 정도로 보는 교육부는 교육 기관인가, 아니면 조련사 집단인가.
현재의 교원평가는 교단을 황폐화할 뿐이다. 협력적인 교무실 문화는 꿈도 꿀 수 없다. 교사들이 주체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줏대 있는 교육 활동을 펼치는 일도 갈수록 위축될 게 뻔하다. 학교와 교실에 불신의 바이러스가 가득 퍼질 때 교육부는 또 누구 책임을 들먹이며 희생양을 만들어낼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