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퇴진, 국정원 사건 특검 수용을 외치고 산화한 고 이남종씨의 영결식이 서울역에서 거행됐다.
고 이남종씨의 시민 장례위원회(공동장례위원장 박석운, 신승철, 백은종, 허원배) 주최로 4일 오전 8시 고 이남종씨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에서 '고 이남종 열사 민주시민장' 장례 발인식, 오전 9시 30분 서울역 영결식을 마치고, 오전 11시 운구차가 광주 망월동 묘역으로 향했다.
이날 추모객 3000여 명이 모인 서울역 영결식에서 김동한(장로) 개신교평신도시국대책위원장은 영결기도문을 통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내어 놓으면서까지 실천한 고 이남종 열사는 예수살기를 몸 바쳐 실천한 작은 예수"라며 "가짜대통령 박근혜 독재정권 하에서 1년 동안 전전긍긍하며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든 국민들에게 그 공포와 두려움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 일어서라고 절규하신 고 이남종 열사의 그 죽비소리를 정언명령으로 이어받아야 한다"고 기도했다.
이어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백은종 서울의 소리 대표가 조사를 했다. 이어 썽풀이 춤, 조가, 헌화가 이어졌고, 오전 11시 광주 망월동 묘역으로 향했다.
고 이남종씨는 지난 해 12월 31일 오후 5시 42분경 서울역 고가 위에서 박근혜 사퇴, 특검실시 등이 적힌 현수막을 걸고 분신을 했다. 이후 3도 화상을 입고 화상전문병원인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일 오전 8시경 유명을 달리했다.
이 열사는 유서를 통해 "많은 국민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공권력의 대선개입은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개인적 일탈이든 책임져야 할 분은 박근혜 대통령"이라며 "이상득, 최시중처럼 눈물 찔끔 흘리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던 그 양심이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이 아니길 바란다"고 밝혔다.
고 이남종씨는 1973년 6월 전남 구례에서 출생해 1991년 2월 광주 서강고 졸업, 1991년 3월 조선대학교 영어과 입학, 1996년 육군 소위 학사장교로 임관했고, 2001년 육군 대위로 예편했다.
고인의 가까운 지인들의 전언에 의하면 고인은 평소 우직하고 진지한 성품으로 대학시절에도 학생회활동과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평소 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최근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과외 등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각 오전 11시 서울역에서 광주 망월동 묘역으로 향하는 운구차와 추모객들은 고 이남종씨의 죽음과 관련한 조사를 벌인 남대문 경찰서 앞에 잠시 멈춰 항의시위를 하기도 했다. 고 이남종씨는 오후 3시 30분 광주 금남로에서 30분간 노제를 지낸 후, 오후 5시 광주 망월동 민주 묘역에 묻히게 된다.
한편, 지난 1일 미국의 온라인국제뉴스회사인 <글로벌 포스트>가 연합뉴스 영문기사를 받아 '분신자살을 시도한 남성 사망(Man dies after setting himself on fire)'이라는 제목으로 고 이남종씨의 기사를 내보냈다.
<글로벌 포스트>는 이 기사를 통해 " 40대 남성이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와 대선 스캔들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거는 짧은 시위를 벌인 후, 화요일 오후 5시 30분쯤 서울역 앞 고가도로에서 분신을 시도했다"며 "이 남성이 즉시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수요일 오전 7시 55분 숨졌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