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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첫 내각에 대해 '못한 장관' '잘한 장관'으로 평가를 제시한 <동아일보> 1월 2일자 1면 기사.
▲ 못한 장관, 잘한 장관 박근혜 정부 첫 내각에 대해 '못한 장관' '잘한 장관'으로 평가를 제시한 <동아일보> 1월 2일자 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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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이렇게 바쁘기도 쉽지 않고 이런 식으로 바빠도 되나 싶다. 박근혜 집권 2년차에 벌어진 '개각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실세 '부통령(김기춘)'도 생중계되는 TV 앞에 서서 45초 동안 무덤덤하게 "지금은 개각 없다"고 '윗분'의 뜻을 전했다.

총리도 휴일에 장관을 소집하여 '일괄 사표설'은 오해라고 말했다. 어찌 보면 일상적인 언론의 개각설 보도에 이 정부의 대응이 어색하다. 홍보수석, 비서실장, 국무총리가 순차적으로 정색하며 달려들고 있지 않은가.

<동아>의 비상식적인 '못한 장관' 보도

신호탄은 <동아일보>가 쏘아 올렸다. 1월 2일자 머릿기사로 <제 역할 못한 장관들… 개각 목소리 커진다>를 게재하며 개각 필요성을 제기했다. 못한 장관 5명, 잘한 장관 5명을 선정했는데 그 방식이 상식적이지 않다. <동아일보>와 <채널A>의 부장·차장급 기자 30명과 외부전문가 10여명을 상대로 한 긴급설문조사 결과에 기초해 선정한 것이다.

▲공약과 업무 추진 성과 ▲갈등 조정 능력 ▲내부 조직 장악력과 추진력 ▲대국민 소통 능력 등 4가지를 기준으로 40명의 패널이 한 사람씩 '못한 장관' 5명을 뽑았다. 1위는 현오석 기획재정부장관(30표), 2위는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29표), 3위는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28표)이 차지했다. 4위와 5위는 각각 고용노동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이 뽑혔다.

<동아>의 별점주기식 장관평가는 낙제점이다. 한 나라의 장관평가를 자사 기자들 30명과 외부전문가 10명의 인상평가에 기초해서 한다는 게 상식적인가? 이 신문의 의도성이 개입될 여지가 존재한다는 대목도 논란거리이다. <동아> 기자들 30명의 '공론' 형성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맘만 먹으면 이 신문이 '못한 장관 5명'을 선정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래서였는지, 실제 영향력은 <동아>가 75%를 행사하고서는(40명 중 30명) '못한 장관, 잘한 장관'의 이유는 외부전문가 10명의 의견만을 기술하고 있다.

이날 보도에 대해 <동아> 기자 출신인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언론의 횡포"라고 비판했다. 이 전 의장은 3일 오후 MBN '시사마이크'에 출연해서 동아일보의 '못한 장관 5명' 보도에 대해 "언론은 '개각이 필요하다'는 나라의 분위기를 보도하는 건 좋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장관이 일을 잘하고 못하는 것을 평가하는 것은 언론의 횡포"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서 "언론은 장관들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밀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는 이 보도에서 치명적인 문제점도 노출했다. '잘한 장관' 4위를 기록한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좋은 의견을 준 두 사람 준 한 명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였다. 서승환 장관은 임명 직전까지만 해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였다. 성 교수가 서 장관을 평가하는 것도 그렇고, 그의 발언을 인용하는 것도 보도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인용이다. 서 장관이 연대 경제학과 출신임을 몰랐을 리 없었을 텐데 그와 같은 인용을 대놓고 한 이 신문의 호기가 놀랍다.

파문의 확산, 45초 브리핑 그리고 주말 장관소집 회의

이날 <동아> 보도의 파문은 컸다. 이정현 홍보수석이 먼저 나섰다. 그는 2일 오전 "개각은  지금 현재로서는 전혀 그리고 아예 검토되는 게 없다"며 개각설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고 '현재로서는'을 언급한 것이 민감한 상황에서 의혹을 부채질했다. 2월말 3월초 개각에 오히려 힘을 실어주는 브리핑으로 해석됐다.

곧이어 '부통령'이 전격 등장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TV생중계 화면에 등장했다. 그는 정확히 45초 동안 단 세 문장만 읽고 내려갔다. 기자들의 추가 질문도 받지 않았다. 그는 "지금은… 대통령께서는 전혀 개각을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뒤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나 조기진압은 실패로 끝났다. <동아>는 3일자 기자칼럼을 통해 김 실장의 기자회견을 소개한 후 "개각설의 불씨가 쉽게 꺼졌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고 주장했다. 

'개각설' 파문이 가라앉지 않자 4일에는 토요일이었음에도 국무총리가 관계장관들을 소집하여 회의를 개최했다. 정홍원 총리는 소집된 10여명의 장관들 앞에서 다소 뜬금없이 '일괄 사표설'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다. 정 총리는 "(총리실 1급 사표는) 일부 인사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해서 교체를 하고자 하는 뜻에서 한 것"이라며 "다른 부처에 대해서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토요일 오후에 장관들 불러서 '오해'하지 말라는 말을 한 것이다.

이틀 사이에 같은 사안을 놓고 홍보수석이 부인하고, 비서실장이 부인하고, 국무총리가 부인했다. 그러나 개각설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들이 언급한 '지금은 (없다)'라는 수식어의 의미를 국민들은 짐작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사용하는 '지금'이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 경험적으로 이미 MB정권이 보여준 바 있다.

집권 1년차를 마무리하던 2008년 말 대대적인 개각 전망이 나돌던 시절에 MB는 '국면전환용 개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동관 당시 대변인 역시 2009년 1월 13일 "지금이 개각을 얘기할 때인가"라며 부인했다. 그로부터 6일 후인 2009년 1월 19일 MB는 기획재정부, 통일부, 금융위원장 등을 포함한 개각을 단행했다. MB정권의 '지금은'은 6일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얼마인가?

지지율에 민감, 정국 자신감 결여로 분석되는 '개각설' 파문

박근혜 내각 17개 부처 중 하위 5인을 다루고 있는 <동아일보> 1월 2일자
▲ 못한 장관 5인 박근혜 내각 17개 부처 중 하위 5인을 다루고 있는 <동아일보> 1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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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과 총리의 분주한 움직임에서 박 대통령의 조바심이 느껴진다. 왜 박 대통령은 '개각설'에 화들짝 놀라서 조기에 진압하려고 하는가. 취임 초기에 발생했던 인사파동의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했기 때문인가.

취임 초였던 지난해 3월 29일 <갤럽>은 다소 충격적인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41%로 폭락한 것이다. 부정평가자를 대상으로 한 의견조사에서 51%가 '인사 잘못함/검증되지 않은 인사등용'를 꼽았다. 당시 김학의 법무차관 사표,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 사퇴,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가 사퇴했고 이것이 영향을 준 것이다.

호들갑 떠는 이 정부의 태도와는 달리 이 시점에서의 개각은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역대 대부분 정부는 집권 2년차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개각을 단행했다. YS정부는 집권 첫해 대대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DJ정부는 취임 15개월 시점에 개각을 단행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집권 첫해와 이듬해 초에 개각을 단행했다. MB정부는 임기 첫해 7월과 12월에 연속적으로 개각을 단행했다. 어느 정부든 2년 차를 맞이해서 새로운 국무위원들과 함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려고 시도했다.

6일 박근혜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고 신년 정국구상을 밝힌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개각'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며칠만 기다리면 개각설에 대해 가장 확실히 알고 있는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서 '개각'에 대해 의견을 밝힐 것이다. 그 며칠을 못 참고 홍보수석, 비서실장, 국무총리가 돌아가면서 '지금은, 지금은 안 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황급히 사라졌다.

이번 파문이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서 확실해지는 것이 있다. 박 대통령은 실세들을 앞세워 진실을 알리려 한 것이 아니라 잠재우려 시도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부통령은 딱 45초만 TV앞에 선 뒤 내려왔다. '소통'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다. 지시를 받은 행동이든, 스스로 한 독자행동이든 그 모든 것은 대통령의 의중을 고려한 행동이었다.

대통령 기자회견이 끝나면 '개각설' 파문 역시 끝날 것인가. 그 권력자가 내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 나선다.


태그:#동아일보, #박근혜, #개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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