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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2일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 1층 현관 유리문을 열기 위해 장비를 든 소방대원들이 투입되어 경찰이 노동자들이 막고 있던 유리문을 깨고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유리깨고 진입하는 경찰병력 지난해 12월 22일 민주노총이 입주한 경향신문사 1층 현관 유리문을 열기 위해 장비를 든 소방대원들이 투입되어 경찰이 노동자들이 막고 있던 유리문을 깨고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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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이 끝났다. 하지만 민영화는 현재 진행형이고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체포 및 구속, 징계는 계속되고 있다. 어느 정도의 후유증을 남길지 제대로 알 수 없다. 그 후유증은 철도노조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용자인 코레일과 정부에도 큰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철도 파업에 대한 불편한 공격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벌어졌던 철도파업 과정을 돌이켜 보자. 철도파업 과정에서 항상 있어 왔던 파업에 대한 공격이 있었다. 철도노동자들의 임금을 두고 이번 파업을 폄훼하려는 시도가 그 중의 하나다. 현재 진행되는 민영화와 철도노동자들 임금 수준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참 이상한 논리다. 철도노동자들이 임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지만 설사 임금을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도 민영화 반대 파업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민영화는 누구나 반대할 수 있는 것이다.

서민이 불편하다는 이유의 파업 공격도 있었다. 철도 노조의 파업으로 서민들만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서울에서 인천까지 전철을 타고 출퇴근 하기 때문에 걱정이 제법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한 2-3일 정도 철도를 제시간에 이용하지 못했던 불편이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불편함은 노동자들에게 파업권을 인정하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서민들이 정부에 항의하기 위하여 집회, 시위를 한다면 그 불편함은 다른 서민이 감수해야 하는 몫이다. 우리 사회는 그러한 불편함을 서로 감수하는 것을 전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전제를 부정하는 공격이 아직도 횡행하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파업에 대한 가장 강경한 공격은 '법과 원칙에 따른 대처'

이런 공격들 중에서 가장 아픈 것은 법률을 이용한 공격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서 철도의 파업을 진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과 원칙에 따른다는 주장은 쉽게 반박하기 어렵다.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으므로 이를 집행해야 하고, 노동자들이 근무규율을 어겼으니 징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논리적이면서도 물리력까지 갖추고 있으므로 법을 동원한 공격은 참으로 매섭고 아프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이 논리적이고 바람직할까? 경찰은 철도노조 집행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고 이를 집행한다고 민주노총 사무실에 진입했다. 민주노총 사무실도 대한민국 안에 있으니 대한민국 법률이 당연히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청난 후유증을 몰고 온 사태지만 그 자체로는 법의 집행이므로 달리 문제삼기 어려워 보인다. 반대의 논리는 법집행을 자제하는 것이 더 낫다는 정도로 법률 이외의 것이다.

철도노조 집행부가 조계사에 들어가자 경찰은 더 이상 진입을 하지 못했다. 왜 이 경우에는 체포영장을 집행하지 않았을까? 박근혜 정부가 종교를 존중해서? 종교를 사랑해서? 종교가 원래 치외법권이어서? 이 문제는 좀 심각하다. 약간 과장해서 보면 조계사가 민주노총에 비하여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볼 수도 있고 다르게 보면 민주노총이 조계사에 비하여 차별을 받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법은 진공을 싫어한다? 모든 것을 다 지배하려는 법률

법률은 존중과 사랑을 알지 못한다. 냉정한 권리와 의무의 관계만을 규정할 뿐이다. 나도 변호사지만 일일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상대방의 의무를 따지는 법률가는 사실 좀 친구로 사귀기 그렇다. 종교를 존중해 줄 이유를 법체계 내에서 찾기는 어렵다.

만일 조계사의 스님들이 민주노총 집행부를 계속 숨겨주고 또 도피자금을 제공했다면 처벌받을 수도 있다. 바람직스럽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1980년대 중반 소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에서 천주교의 신부님이 이러한 이유로 처벌받았다.

수배중인 박태만 철도노조 부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5일 오후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계사에 불편을 줘서 죄송하다는 입장과 함께, 종교계가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 모습드러낸 철도노조 박태만 부위원장 수배중인 박태만 철도노조 부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5일 오후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계사에 불편을 줘서 죄송하다는 입장과 함께, 종교계가 중재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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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조계사에 진입하지 못한 것은 법적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다. 경찰이 진입하지 않은 것은 다른 정치적, 사회적 논리에 따른 것이다. 조계종단을 건드리면 정치적, 사회적 후유증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서라도 조계사에 진입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법과 원칙이라고 하면 모든 경우에 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법률가는 특히 그렇다. 사회에 법이 적용되지 않는 분야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와 인간의 모든 분야를 지배하고자 하는 것은 법의 속성 중의 하나이다.

국가의 지배는 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근대 국가는 인간의 행동과 생각까지 지배하려고 한다. 이를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달성하고자 한다. 이것이 가장 잘 표현되는 곳이 바로 학교, 군대, 그리고 감옥이다. 이를 두고 '법은 진공(眞空)을 싫어한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자연과학 분야의 유명한 말인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의 패러디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법률이 적용되지 않아야 하는 분야도 많이 있다

그런데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 않아야 하는 부분은 의외로 많이 있다. 이번 조계종 사례처럼 종교시설에 대피한 사회적 약자는 보호되어야 한다. 이 정도의 여유도 없다면 우리 사회는 너무 각박할 것이다. 가정은 또 어떤가? 가정에 법률이 개입한다고 해서 가정을 유지하는 것보다 바람직한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가족간의 사랑과 믿음을 법률이 대신할 수는 없다.

학교는 더욱 그러하다. 법대로 하다가는 학생들이 너무 많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청소년들의 가능성, 사제간의 관계는 법률로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장도 그렇다. 이처럼 인간에게 소중한 공동체에 법률이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권리, 의무라는 법률관계로 해소되지 않는 사랑과 믿음, 의리와 같은 중요한 덕목이 공동체에는 있고 이것이 공동체를 유지 시킨다.

법률이 개입할 수 없는 가장 큰 부분은 개인의 정체성이다.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개인의 정체성은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개인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분야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이다. 이러한 분야는 이미 개인의 가장 중요한 인권으로 확인되었다.

또 다른 갈등을 낳는 폭력적 법치주의는 경계해야

정홍원 국무총리는 12월 18일 철도노조의 파업과 관련하여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대국민담화에서 정총리는 철도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정부는 법과 원칙에 의한 국가경영을 기본원칙으로 하고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법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말은 체포영장을 집행하고 철도노동자들을 가차 없이 징계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형적인 한국형의 폭력적 법치주의이다. 여기의 법과 원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갈등을 낳는 법과 원칙이다. 철도노동자들에 대한 가차 없는 체포영장 집행과 징계는 또 다른 노사간 갈등을 낳을 것이고 코레일에게도 풀기 힘든 숙제를 남길 것이다.

모든 문제를 철두철미하게 법대로 해결할 수는 없다. 법률이 양보를 하고 존중을 해야 하는 분야도 있다. 아무쪼록 법률 이외의 부분을 존중하는 의미에서든 아니면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낳지 않는다는 관점에서든 이번 철도노동자들에 대한 수사와 징계는 없었던 것이 되든지 아니면 최소화되어야 한다. 수백 명을 징계하고도 좋은 직장, 국민의 기업이라고 광고하는 것은 모순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등을 지냈으며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태그:#철도파업, #폭력적 법치주의, #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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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래발전연구원(http://www.futurekorea.org/)은 민주주의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진보적 정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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