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 시대를 지탱하는 큰 축을 두 가지 꼽으라면 단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의 발원과 역사, 과정에 대해서는 귀가 닳도록 배운다. 정치 시간에, 역사 시간에, 사회 시간에. 그러나 자본주의의 태동에 대해 아는 이는 몇이나 될까. 심지어 '자본주의'에 대해 연구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에선 '금서'의 영역에 있었다.
그들은 왜 '민주주의'처럼 떳떳하게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가. 왜 재갈을 물렸을까. 무엇이 두려워서.
동네에서 뛰노는 게 그저 행복했던, 뒹굴던 돌조각 하나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고, 사회에 나오면서 웃음은 점차 사라지고 한숨은 점차 늘어간다. <검정고무신>의 주인공, 기영이도 그랬다. <다짜고짜 만화 경제학>에서 다시 만난 기영이에게 발랄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원래 알던 기영이가 아니었다. 그러다 불쑥 사라져 4년 만에 나타났다. 치킨집을 하는 고향 친구 도승이 앞에.
그리고 어린 시절 육성회비를 가져오지 못해 선생님에게 나란히 함께 매를 맞았던 그에게 '어떤'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영이의 말을 들은 도승은 '거대한 힘에 의해 멱살이 단단히 잡힌 채 모르고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그것을 깨달았을 때의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사실 기영이가 거대한 음모나 비밀을 얘기한 게 아니다. 그저 '자본주의'의 시작과 발전과정을 말했을 뿐이다.
'자본주의' 시작은 '약육강식'이었다기영이의 이야기는 홉스로부터 시작한다. 홉스는 인간의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봤다. 하여 안전과 질서를 위해 우리의 권리를 왕에게 양도하자고 주장했다. 한 명에게 힘을 줘서 무질서를 바로 잡자는 것.
왕권이 강화되자 위기감을 느낀 귀족들은 자신의 재산을 지킬 무언가가 필요했다. 확실한 사유재산권의 필요를 느낀 게다. 안절부절못하던 귀족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로크'다. 로크는 자신에 대한 권리는 스스로에 있으니, 자신의 노동이 투입된 땅은 당사자의 소유라는 주장을 했다.
땅에 대한 소유권이 없던 시기는 자급자족 경제였다. 필요한 만큼 농사를 지으면 됐다. 그래서 딱히 필요가 없는 땅에 대해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자신이 먹고 살 만한 땅, 딱 그거면 됐다. 하지만 탐욕에 찌든 몇몇은 그렇지 않았다. 열심히 땅에 울타리를 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정도가 심했다. 마을의 모든 땅을 한 사람이 독차지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그저 울타리를 치면 자신의 땅이 됐기에. 농사 지을 곳이 없자 사람들은 땅을 차지한 이에게 찾아가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부탁했다. 땅을 빌리고 생산물의 일정 부분을 주기로 했다. 땅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제 가만히 앉아서 곡식을 챙기기 시작한다. 불로소득의 보편화다.
농사를 지으며 내야 하는 곡식의 양은 계속해서 올라갔다. 당장 굶게 생겼으니,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수탈이 심해지자 사람들은 땅을 독차지한 이에게 찾아가 따졌다. "도대체 당신에게 울타리를 치고 땅의 소유를 주장할 권리를 누가 줬느냐?"라고.
딱히 답변할 수 없었던 땅 소유자들은 왕에게 달려갔다. 정부가 구성되고 법률이 제정됐다. 공권력으로 스스로 보호했다. 항의하던 이에게 채찍이 날아왔고, 거부하는 이는 쇠사슬에 묶였다. 지금처럼.
이를 지켜보던 루소는 "소수가 땅을 차지하던 바로 그때에 누군가가 말뚝을 잡아 뽑으면서 '이 사기꾼에게 속지 마라, 땅 그 자체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라고 외쳤다면 그 사람은 인류를 얼마나 많은 범죄, 전쟁, 살인으로부터 구제했을까"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사회와 법률은 약자에게 새로운 구속을 부여하고 부유한 자에게는 새로운 힘을 줌으로써 자연의 자유를 영원히 파괴해 버리는가 하면, 사유재산과 불평등의 법률을 영구히 고정시키고 교묘한 약탈을 당연한 권리로 확립시켜 몇몇 야심가들의 이익을 위해 온 인류를 영원히 노동과 예속, 그리고 빈곤에 복종시켰던 것이다.(루소의 <인간 불평등의 기원론> - <다짜고짜 만화 경제학> 1권 68쪽에서 재인용)'대항해시대'가 낭만적이라고? 천만에!부가 누적되기 시작했다. 상인이 득세했다. 만족할 줄 몰랐다. 그들이 오로지 원하는 것은 더 큰 '부'였다. 자급자족 경제는 종말을 맞는다. 국가의 모든 결정에 부자들의 입김이 작용한다. 중상주의 초기의 풍경이다.
한 국가 안에서 인구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부자의 욕심은 한계가 없었다. 물건을 팔 곳이 필요했다. 외국으로 눈을 돌린다. 그렇게 식민지 시대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부자들은 곳간을 넓혔다. 반대로 평화롭게 살아가던 원주민들에겐 고난이 닥친다. 이유나 알았다면, 억울하지도 않지.
처절했던 식민지 시대를 경험한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대항해시대'를 낭만이나 꿈에 연결해서는 안 된다. 원주민을 잡아다 노예로 팔았다. 미개한 이들을 교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침략과 약탈이 횡행했다. 금을 내놓으라며 양팔을 잘랐다. 인디언들, 다음은 아프리카 흑인들이 끌려왔다.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에 의하면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이가 3세기 동안 5천만 명에 이른단다.
원주민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가만히 있는 그들을 처참하게 짓밟았나. 칼이 뭔지 몰라 만지다가 손을 베였다니, 말 다했지 않나. 모두 경제적 동기였다. 인간에게 양심과 도덕을 내팽개치고 탐욕스럽게 만들었다. 수치심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북미에서 유럽의 이주민들이 인디언들에게 더부살이하던 시기에 있던 일이다. 한 인디언 족장에게 땅을 팔라는 편지가 도착했다. 지금에야 어떻게든 토지보상비(?)를 더 받아내려고 안간힘을 쓰겠지만, 편지를 받은 족장은 이렇게 답했다.
"땅을 팔라는 귀하의 제안을 저는 정중히 거절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땅을 팔 수가 없습니다. 그건 땅이 우리에게 속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땅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대지는 스치는 바람, 흐르는 강물을 어떻게 돈으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저 울창한 숲과 바위, 나무 하나하나에 서린 조상의 추억, 부족의 역사를 어떻게…."(<다짜고짜 만화 경제학 1권> 229쪽)판매를 종용한 이가 감동했을까? 천만에. 주인 없는 땅이라 생각한 이주민들은 본격적으로 사냥을 시작했다. '인간 사냥'을. 그리고 그 자리에 지금의 '미국'이, 원주민들 대신에 '미국민'들만이 남는다.
고단한 삶의 이유, 알고나 살자식민지는 산업혁명의 원동력이었다. 그렇게 부를 끌어모은 이들의 탐욕은 공장으로 뻗쳤다. 아동 노동, 야간 근무, 이윤을 위한 온갖 야만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인간은 기계로 전락했다. 숙련공이 근무여건 개선을 요구할라치면, 그들을 대신할 효율 높은 기계를 만들었다. 쓸모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렸다. 그렇게 혁신이란 미명 아래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은 균형을 잃는다. 결국 노동자는 굴종을 강요 당한다.
결과적으로 지금 사회에 가득 찬 분노의 목소리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란 거다. 자본주의는 탄생에서부터 그 원인을 배태했다. 구조적으로 사회를 곪게 한다. 환부를 드러내고, 새살이 나도록 연고를 발라야 한다. 그런 과정이 없이는 부의 쏠림과 야만적 수탈은 계속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시작과 작동방식을 안다면, 지금 왜 나의 삶이 고단한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어느 순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던 사실에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답을 찾거나 요구할 수 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거대한 질서에 대해 알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몸은 고단하더라도 정신은 차리고 살자. 화가 나면 성질내자. 기영이의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기영이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도승이의 소박한 치킨집이 망하지만 않는다면.
연재: [다짜고짜 경제 시리즈] 기영씨의 생활고
"스펙 쌓느라 고생해봤자 일자리 없다! 그러니 차라리 나가서 데모를 해라! 그러면 정부가 놀래서 일자리를 만들 것이다!"(한 지방대학 졸업식장에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 <다짜고짜 만화 경제학> 1권 159~160쪽) 덧붙이는 글 | <다짜고짜 만화 경제학>, 김부일 글, 이우영 그림, 한스미디어 펴냄, 2013.12, 1만4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