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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중앙대학교의 '안녕들 하십니까' '100만원' 자보 70여 장이 학교에 의해 떼어졌다. 오후 4시 50분께 법학관에 게시돼 있던 '안녕들 하십니까' 자보 철거를 시작으로 청소노동자 노조(중앙대 분회)에서 설치한 간이게시판을 제외한 학내 모든 관련 자보가 철거당했다. 게시물을 철거한 것은 교직원과 방호노동자다. 방호반장은 "총무팀이 전화로 반장에게 지시했고, 내가 개별 노동자들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학교 이미지 실추'가 철거 이유

이엽 행정지원처장이 중앙대 커뮤니티 '중앙인'에 올린 글
 이엽 행정지원처장이 중앙대 커뮤니티 '중앙인'에 올린 글
ⓒ 중앙대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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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엽 행정지원처장은 지난 6일 학내 커뮤니티 '중앙인'에 올린 '교내 대자보 철거에 따른 사전 안내문'을 통해 7일 오후 5시 이후 허가받지 않은 게시물과 대자보를 철거할 것을 공지했다. 행정지원처장은 "일방적인 주장과 표현을 담은 대자보들이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정당한 활동을 침해한다"며 "신·편입생 선발로 수험생과 학부모가 학교에 방문해 이 상황을 본다면 학교가 힘들게 쌓아온 이미지가 너무나도 쉽게 실추된다"고 철거 이유를 밝혔다.

행정지원처장이 공지사항에서 대자보 철거의 근거로 든 것은 '학생홍보물게시에관한시행규칙'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학생홍보물게시에 관한 내규'(아래 홍보게시내규)다. 지난해 이 홍보게시내규는 시행세칙에서 내규로 바뀌었다.

학교 기획전략팀 학칙 담당 직원은 지난 8일 세칙에서 내규로 바뀐 것에 대해 "상위규정에서 위임을 받았으면 세칙, 받지 않았으면 내규"라며 "이에 따라 정정됐다"고 말했다. 게시물에 대한 상위규정은 학칙 제65조에 '학생활동 및 간행물'에 대한 조항이 있지만 위임을 한다고 표기돼 있지 않다. 또한 그는 "세칙과 내규의 효력 차이는 없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중앙대학교의 '규정관리 규정'을 보면 내규는 '적용 대상이 비교적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인 필요에 의하여 잠정적으로 정하는 규범'으로 세칙보다 적용 범위가 좁다고 볼 수 있다.

학칙과 모순되는 내규

학생회가 관리하는 과 게시판의 자보도 모두 철거당했다.
 학생회가 관리하는 과 게시판의 자보도 모두 철거당했다.
ⓒ <중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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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학칙 제65조는 학생자치에 의한 집회·인쇄물의 부착 또는 배부에 관해 주무부서에 '사전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홍보게시내규는 게시물 등을 부착하기 위해서는 승인을 받고 검인을 필하며 '허가'받지 않고 게시하면 징계한다고 명시돼 있다.

게시물에 대한 절차가 상위 규정인 학칙에는 '사전신고'로, 내규에는 '허가'의 영역인 것으로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 64호(2013년 6월 발행)에서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신고와 허가의 법률적 차이를 알아본 바 있다.

"박주민 변호사는 '신고는 원래 할 수 있다고 전제된 것을 한다고 알리는 것이고 허가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을 예외적으로 심사를 통해 하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신고와 허가가 완전히 다른 개념이므로 상위에는 신고, 하위에는 허가의 개념이 등장하는 것은 단순한 용어 차이 이상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박주민 변호사는 '하위규정은 상위규정보다 더 강하게 제한하거나 더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 그런데 상위에서는 신고, 하위에서는 허가라는 표현을 쓰면서 하위규정이 상위규정의 취지를 위반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학칙과 세칙의 문제점을 설명했다."('자유롭게 표현하라. 단, 허가받을 수 있다면' <중앙문화> 64호)

학교 기획전략팀 학칙 담당 직원은 또한 "규정과 내규가 상충이 될 경우 상위규정을 따르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홍보게시내규가 학칙 65조와 상충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법령 해석의 차이이지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헌법 위에 있는 내규? 

"대자보 떼는 학교... 안녕 못한 학생들" '100만원 대자보'로 논란이 된 중앙대학교(이사장 박용성) 관계자가 교내에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를 지난 7일 "허가받지 않은 게시물"이라며 떼고 있다.
 "대자보 떼는 학교... 안녕 못한 학생들" '100만원 대자보'로 논란이 된 중앙대학교(이사장 박용성) 관계자가 교내에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를 지난 7일 "허가받지 않은 게시물"이라며 떼고 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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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차적인 문제 이전에 게시물을 검열하고 허가하는 중앙대 홍보게시내규는 명백한 위헌이다.

"헌법 제21조 제1항, 2항에서는 명료하게 허가와 검열을 금지하고 있다. 박주민 변호사는 '헌법상 금지하고 있는 검열의 세 가지 요건은 사전에, 내용물을 제출하도록 해서, 그 내용을 보고 출간여부를 허락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검열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위헌적인 학칙'이라고 말했다."('자유롭게 표현하라. 단, 허가받을 수 있다면' <중앙문화> 64호)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게시물의 내용을 교직원이 판단한 뒤 도장을 찍어준다. 지난해 12월 16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게시하기 위해 학생지원처에 신고를 하러 간 학생들은 도장을 받을 수 없었다. 학생지원처 담당자는 "개인의 정치적인 의견은 허가할 수 없다"고 거부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지난 7일 인문사회계열 행정실의 한 직원은 "100만원 자보에 도장을 찍어줄 수 없다"며 "도장을 안 찍고 붙이는 것은 본인들의 자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럼 떼지 않을 것이냐'는 학생의 질문에 "그래도 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앙대는 내용을 검열해 허가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허가받지 않은 게시물은 지난 7일과 같이 방호원이나 학교 직원들에 의해 떼어지는 것이다.

행정지원처장은 '중앙인' 공지 글에서 "새로이 게시하는 게시물이나 홍보물은 관련 규정에 따른 적법한 검인 후 게시하는 절차를 준수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중앙대에는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적법하게' 게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학생을 지원하고, 행정을 지원하기 위한 부서가 위헌적인데다가 상위 조항과 모순되는 내규를 근거 삼아 학생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안태진 기자는 현재 중앙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 편집위원입니다.



태그:#중앙대, #대자보, #표현의 자유, #학칙, #중앙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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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에서 일하다 퇴직 후 세계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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