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 죽다
우리나라에서는 1년 가운데 소한과 대한 사이인 이즈음이 가장 춥다. 그래서인지 거기에 따르는 속담도 많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소한이 대한의 집에 몸 녹이러 간다.""대소한에는 소 대가리가 얼어 터진다."이 속담들은 소한과 대한의 추위가 몹시 지독하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보다 훨씬 위도가 높은 중국 동북삼성인 만주의 추위는 섭씨 영하 30~40도로 한 겨울에는 그야말로 살을 에는 추위라고 한다.
나는 항일유적답사로 네 차례 동북지방을 다녀왔다. 매번 봄이나 여름에 가다가 꼭 한 번 초겨울에 갔다. 2009년 10월 말에 하얼빈에 갔는데 그때 그곳은 섭씨 영하 15도 정도인데다가 모진 강풍으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는 된 듯하여 몹시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강추위에도 관동군과 맞서 독립운동을 한 독립전사들이 있었다. 그 당시 독립군들은 추위에 얼어 죽거나 배고파 죽거나 일제의 총칼에 맞아죽거나 베어죽었다고 한다. 나는 그분들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만일 내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과연 어땠을까 반성해 보았다.
솔직히 고향산천을 떠나 먼 북국 이국땅에서 총칼을 들고 일제 관동군들과 맞서질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그들이 해방이 된 이후 이 분들을 가장 우러러 모시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항일영웅의 이름을 따서 헤이룽장성에 조상지를 기리고자 '상지시(尙志市)'를 만들었고, 하얼빈시에 '이조린(李兆麟)공원'을 만들었다. 내가 헤이룽장성 경안현에 갔을 때 관계자들이 경북 구미 출신의 허형식 장군 호를 딴 '형식공원'을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조상지와 허형식은 동격의 항일전사였다.
예산시는 매헌시로몇 해 전 한 재미동포(심훈 3남 심재호씨)가 당신 처가 함경도 성진을 갔는데, 그곳 성진이 해방 후 김책시로 변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김책이란 항일전사는 허형식과 봉천(심양)감옥에서 동지로 만난 사이로 두 사람의 동지애는 남달랐다.
인명을 지명으로 삼는 것은 동양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를 기념하고자 아메리카 주 이름을 만들었는가 하면 이탈리아 탐험가 컬럼버스를 기념하는 컬럼비아라는 나라도 있다.
미국에는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념하고자 워싱턴 주, 워싱턴 디시가 있다. 이밖에도 포르투갈 항해사 마젤란이 통과한 해협은 그의 이름이 붙었다.
최근 우리나라도 인명을 지명으로 한 곳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춘천 근교 '김유정역'이 바로 그 예다. 서울 중구 명동에는 '우당로'가 생겨나고 내 고향 구미에는 13도창의대장 왕산 허위 선생을 기리고자 '왕산로'가 명명되었다.
나는 기왕이면 좀 더 화끈하게 충남 예산시는 윤봉길 의사의 호를 딴 '매헌시'로, 경북 구미시는 '왕산시'로 전남 광양시는 황현 선생의 호를 딴 '매천시'로 지명을 고친다면 그것이 민족정기를 바로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새삼 이 추운 날씨에도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몸 바친 독립전사들의 영전에 깊이 고개 숙여 가신 분의 명복을 빌어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