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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해서 죄송합니까?> 겉그림
 <뚱뚱해서 죄송합니까?> 겉그림
ⓒ 한국여성민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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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해서 죄송합니까?

이 질문은 지난해 11월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출간한 책 제목이기도 하다. <뚱뚱해서 죄송합니까? - 예뻐지느라 아픈 그녀들의 이야기>는 '다르니까 아름답다' 캠페인의 일환으로 24명의 여성을 인터뷰 한 내용 등을 모아 만든 책이다.

새삼 책 제목을 두고 오랜 시간 고민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제목에 대한 반응도 좋고, 제목의 줄임말인 '뚱까'를 애칭처럼 부르고 있지만, 처음부터 제목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첫째로 책에 성형과 다이어트 경험을 모두 담아 자칫 제목만 보고 다이어트 경험을 모은 책으로 읽힐까봐 고민됐다. 또 책을 보게 될 인터뷰이들의 반응도 걱정됐다.

24명의 인터뷰이들과 '예뻐지기' 위한 고군분투기와 '예뻐야 한다'면서 스트레스를 주는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았다. 그녀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마치 그녀들과 오랜 친구라도 된 듯 내 이야기도 풀어냈다. 그래서 이 제목의 책을 마주하게 될 인터뷰이들이 오해하거나, 기분 상하지는 않을지 몇 번을 고민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도 이 제목을 고집했던 이유는 정말 이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뻐지기를 당연시하는 이 사회에 한 번쯤 소리쳐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뚱뚱해서 죄송합니까?"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인터뷰이 24명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외모에 대한 온갖 '말'이 주는 스트레스로 고통 받고 있었다. 말 뿐만 아이라 외모 스트레스는 10대부터 50대까지 세대와 관계없이 '모두'의 문제였고, 불쾌감을 드러낼 수 없는 이면에는 '여자의 외모관리는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외모 코멘트나 노골적인 외모 평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이 더 선명해졌었다.

'외모관리'란 쳇바퀴를 쉴 새 없이 돌리는 여성들

여성들은 "외모 가꾸기는 자기 관리다",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다" 등 경계가 애매한 걱정과 무례함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매일매일 "뚱뚱해서 죄송하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 일상이었다.

외모 관리 스트레스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말'에 대해 인터뷰이들은 칭찬도 비난도 모두 독이 된다고 말했다. '착한 몸매', 'S라인 몸매' 와 같은 고정화된 미의 기준이 요구되고 있고, 보통의 여성들은 광고 속 이미지들과 끊임없이 비교 당한다. 사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여성들 모두 다이어트 경험이 있었지만, 모두가 소위 말하는 고도비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의 광고 속 모델처럼 되기 위해선 평균 체중이 아닌, '미용 체중'이 되어야 한다 또 나이가 들어도 아름다워야 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늙어서도 '외모관리'라는 쳇바퀴를 쉴 새 없이 돌려야 한다. 여성들은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에 완전한 칭찬도 없을뿐더러 외모 관리의 완성도 불가능하다.

인터뷰이들은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누군가가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의 무례함을 토로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외모에 대한 '말'은 자연스럽게 화두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나도 누군가에게 쉽게 말하진 않았는지 반성했고 "지금 생각해보니 되게 기분 나쁜 말이었네!"라며 불현듯 화가 치밀기도 했다.

사실 외모 코멘트를 들을 때마다 불쾌감으로 대응하거나 화를 내는 방법이 대안이 되긴 어렵다. 일상적인 외모 코멘트의 배경에는 노동시장의 용모 차별, 성형 산업 등 '사회구조적' 문제가 긴밀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하던 중 우리의 목적과 비슷한 캠페인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End Fat Talk(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였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Delta Delta Delta Body Image Initiative'에서 시작한 이 캠페인의 목적은 '체중(살)에 대한 말이 왜곡된 몸 이미지를 만들고, 무리한 다이어트로 인한 섭식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에 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를 실천하자'다. 이 운동은 많은 대학교나 건강센터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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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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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에서도 이 캠페인을 진행하였고, 스티커도 제작하였다. 막상 진행하려고 구상하다보니 캠페인 참여자들에게 그저 '말하지 않기'만 강조되거나, 상대방을 비난하는 걸로 느껴지는 건 아닐까, 고민됐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 "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 스티커였다.

캠페인 기간에 누군가 "살 좀 빼"라고 말할 때, 일일이 대꾸하기보다는 스티커를 이마에 딱 붙인다면? 분위기도 살벌해지지 않고, 할 말은 할 수 있는 비장의 아이템이 될 거라는 아이디어였다. 스티커 제작을 위한 해피빈 모금함을 열었고, '캠페인 내용이 좋다, 동감한다'며 조금씩 모금액이 늘어났다.

스티커는 상대방을 비난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보다는 유머 섞인 대응법, 미묘하게 통쾌함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담아 구성해보았다(아무리 걸러내도, "내 몸 내가 알아서 할게", "살 좀 빼, 매일 하는 그 질문 작작해요"는 순화할 길이 없었는데, 센스 넘치는 회원 나리맛탕의 일러스트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귀여운 스티커가 완성될 수 있었다). 제작된 스티커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책에도 삽입되었고,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아이템이었다.

스티커 이미지를 페이스북과 홈페이지에서도 공유하였는데, 많은 분들이 각자의 SNS 계정 프로필 사진으로 활용하였다. 아마 누군가에게 "내 몸 내가 알아서 할게", "먹게 내버려 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저는 뚱뚱하냐고요? 노코멘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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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는 출판기념 북콘서트도 열었다. 1부 토크쇼와 2부 PT 파티로 진행된 3시간 동안, 북콘서트 현장에 모인 모두가 '화자'였다. 80여명의 여성들이 그동안 고민했던 다이어트 스트레스, 콤플렉스, 외모관리를 둘러싼 모순 등을 한 자리에 모여 실컷 풀어냈다.

PT파티에서 민우회 회원 노새는 '나의 외모 품평(free day)선언기'를 발표했다. 어린시절 '점순이'라 놀림 받던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한 그는 체질적으로 점이 많이 생기는 피부일 뿐이지만, 주변에서 가볍게 던지는 놀림 때문에 자신이 '거대한 점'처럼 느껴졌다고 밝혔다. 그는 놀림이 지겹고 속상해서 온몸에 있는 점을 빼는 고통스런 과정을 학창시절 내내 반복하였다고 한다.

노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게 있던 '점'도 떠올랐다. 나에게는 '낮은 코'와 '덧니'가 노새의 '점'과 같았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여성들도 각자의 '점'을 떠올리며 노새의 발표에 울고 웃었다. 북콘서트 내내 '함께라서 좋다'라는 진부한 말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책 출판 이후에 인터뷰 요청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지금 인터뷰하시는 활동가는 뚱뚱하십니까?"라고 물어본다.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이 좋을지 생각해보고, 다른 활동가들과 의논하였는데, 최근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해봤다. "노코멘트입니다."

우리가 책을 내고, 이런 캠페인을 벌인 이유는 '뚱뚱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누군가에게 "뚱뚱해서 죄송합니까?"라고 묻기 전에 한 번 더 고민해보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반아는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입니다.



태그:#몸매, #여성, #뚱뚱해서 죄송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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