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기사 수정: 17일 오후 4시 25분]

지난 6일 고답마을 현장에서도 그는 핸드폰으로 경찰을 찍었습니다.
 지난 6일 고답마을 현장에서도 그는 핸드폰으로 경찰을 찍었습니다.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구속 직전 7일 오전 9시경 정씨가 밧줄로 목과 몸을 칭칭 감아 차량에 묶고 있었습니다. 당시 말리지 못했던 저는 죄책감이 듭니다.
 구속 직전 7일 오전 9시경 정씨가 밧줄로 목과 몸을 칭칭 감아 차량에 묶고 있었습니다. 당시 말리지 못했던 저는 죄책감이 듭니다.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지난해 12월 14일 밀양 송전탑을 반대하다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잃은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를 찾았다가 정대준(52, 울산시민연대 상근활동가)씨를 처음 만났습니다. 덥수룩하게 턱수염을 기르고 있던 그 사람과 저녁을 같이 먹고 가끔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에 대해서는 잘 몰랐습니다.

정대준씨는 낮이면 농성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깨진 핸드폰을 들고 어르신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면 별빛이 보이는 분향소 한편에서 어르신들 곁에서 잠을 잤습니다.

지난 6일 어르신 10여 명이 구급차를 탔던 상동면 고답현장에서도 그는 핸드폰을 들고 현장을 찍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카고 크레인 차량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도 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날이 밝아 왔지만, 그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굵은 밧줄에 목과 몸을 칭칭 감아 차량에 묶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제가 "이젠 나와야겠어요"라는 무심한 말만 던진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멀리서 경찰에 사지가 들려 차량에 구겨지듯 던져지는 그의 모습을 봐야 했습니다. 지난 10일 그는 구속됐습니다. 그랬던 그가 면회자를 통해 노트에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자기가 자신을 인터뷰한 편지를 지난 16일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아마도 제 펜을 빌려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게 많았나 봅니다.

다음은 정대준씨가 옥중에서 보내온 편지입니다. 정대준씨가 자신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서술된 점 감안해서 읽어주십시오.

정대준씨는 오늘(17일) 오후 4시 30분 구속적부심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밀양 송전탑과 관련해 구속된 사람은 총 3명, 주민 한 명과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정대준씨였습니다... 기자 말

업무방해로 체포됐는데 구속은 하지도 않은 폭행으로...  

정대준씨가 옥중에서 보내온 편지입니다.
 정대준씨가 옥중에서 보내온 편지입니다.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정대준씨는 지난 7일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답공터 카고크레인 밑에서 밧줄로 허리와 목을 묶고서 차량의 운행을 막다가 경찰에게 끌려나와 체포된 후 지난 10일 구속됐습니다.

- 안녕하세요? 체포된 지 벌써 일주일째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네. 몸도 마음도 편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1월 7일은 제가 밀양에 온 지 정확히 100일째 되는 날이더군요. 저의 밀양 100일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 밀양경찰서 형사들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리고 싶네요."

- 차량운행을 막아서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구속은 폭행 건으로 되었더군요.
"저도 그게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그 폭행 건은 작년 12월 17일 밀양시 산외면 골안마을에서 일어난 일인데요. 108번 공사현장에 일하러 올라가던 작업 인부들과 한국전력 직원들을 막으려고 지키고 있던 주민, 연대자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측 젊은 청년 한 명이 올라오는 저들에게 "당신들, 누구냐!"라고 물었더니 그 중 한 명이 다짜고짜 청년의 뺨을 주먹으로 때리면서 싸움이 시작되었지요.

저는 뒤늦게 합류해 말리려다가 오히려 되맞았습니다. 이후 실랑이를 하던 도중 그가 저를 넘어뜨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수 차례 내게 폭행을 가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작업인부 세 명이 저를 고소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맞고소를 한 상태입니다.

이때는 경찰들도 없었고 어두웠기 때문에 채증이나 사진촬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런 증거자료도 없이 오직 저들의 진술이 논리적이라며 저를 구속 시킨 것입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오마이뉴스> 기자가 제가 폭행 당하는 것을 봤다고 증언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이는 그 날짜 기사로도 올라가 있습니다(관련 기사 : 땅에 내던지고, 주먹으로 때리고... 한전의 '횡포').

실랑이를 하던 중 그가 저(얼룩무늬 바지)를 넘어뜨렸습니다. 그리고 수차례 폭행을 가했습니다.
 실랑이를 하던 중 그가 저(얼룩무늬 바지)를 넘어뜨렸습니다. 그리고 수차례 폭행을 가했습니다.
ⓒ 김종술

관련사진보기


- 경찰은 그 외에도 두 가지를 더 걸었다고 하던데.
"하나는 96번 현장 입구 임도에서 경찰의 통행을 막을 목적으로 대나무 대문을 만들었다는 겁니다. 제가 만들지도 않았거니와 거기는 사유지여서 그 길에는 주인이 뭐든 설치할 수 있는 곳입니다. 단, 그 길을 이용하는 가구가 5가구 이상이면 해당 지자체장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길 위에는 2가구 밖에 없습니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거죠. 그런데 경찰들이 아직 설치도 하지 않은 그 미완성 대문을 물리력을 사용하여 불법적으로 가져가 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동네 주민인 강아무개 아주머니를 체포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현재 그 땅 주인은 경찰 책임자를 고소한 상태입니다.

또 다른 죄목은 11월 어느 날, 상동면 여수마을 123번 현장으로 올라가는 입구 도로에서 수십 명의 할머니들과 공모해 공사차량 통행을 막았다는 것입니다. 사진 3장을 첨부해서 공사업체인 ㈜한백이 고소했다고 하더군요. 11월에 있었던 일인데 왜 지금 고소를 했는지…. 어쨌든 그날 제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할머니들이 이미 도로를 점거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경찰들의 과잉진압으로 할머니들의 인권이 유린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했을 뿐입니다. ㈜한백이 첨부한 사진에도 저는 할머니들 뒤에 그냥 서 있을 뿐입니다."

- 구속적부심이나 보석은 신청하실 건가요?
"아직 조사받을 게 더 있을 겁니다. 저들은 나를 이곳에 오래도록 묶어 두고 싶어 하니까요. 그래서 위와 같은 터무니 없는 것들이라도 이것저것 다 갖다 붙이려고 하겠지요. 따라서 구속적부심은 경찰조사가 끝나고 나면 청구할 거고요.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보석을 신청해야겠지요. 근데 저는 두 가지 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재판도 최대한 늦게까지 끌 게 분명합니다."

"꼭 두고 보자, 꼭", 그게 시작이었을까요?

- 왜 오래 끌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죄질로만 보면 금방 끝나겠지요. 하지만 밀양의 할매, 할배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이 제게 가지고 있는 개인적 감정 말입니다. 밀양경찰서 경찰 중 정보과장, 경비과장, 수사과장을 포함해 송전탑 현장에 나오는 형사들은 대부분 저를 싫어할 것입니다. 자랑 같지만 제가 현장에서 경찰들의 잘못을 집요하게 따지고 들거든요."

- 김수환 서장하고는 무슨 문제가 있었나요?
"당연히 김수환 서장하고도 부딪혔지요. 주민들의 저항이 센 곳엔 어김없이 그가 나타났으니까요. 그리고 어김없이 주민과 경찰이 충돌했지요. 저는 그런 그를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때마다 김 서장은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찍지 말라고 하더군요. 공무를 수행하는 자라면 누구든 찍을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렇게 여러 번 부딪힌 후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동화전 마을 96번 현장 옆 황토방에서 주민 권아무개 아주머니가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 날이었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달려갔습니다. 아주머니는 몇 시간째 방치돼 있었고 입구에서는 경찰이 주민들은 물론 아주머니의 남편까지 못 올라가게 막고 있었습니다. 저는 몰래 옆으로 한 시간이 넘게 산을 타고 갔습니다. 가보니 아주머니는 이미 들것에 실려 내려가고 상황은 종료됐더군요.

경남경찰청 입장
"96번 현장에 (정대준씨가) 접근을 시도하길래 또다시 접근을 하는지 우리가 철저히 차단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두고 보자'는 말은 다시 96번 현장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또 모자를 뺏겼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고 등에 찍찍이로 붙인 모자가 떨어진 것이다."
허탈해 하며 길을 내려왔는데 입구에서는 여전히 경찰과 주민들이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을 지나는데 서장이 보였습니다. "또 보네"라고 제가 한마디 했더니 김 서장도 "자주 보네"라고 답하더군요. 그리고는 곧이어 내려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두고 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김수환 서장이 나보고 두고 보자라고 하네"라고 소리쳤고, 그 말은 들은 주민들의 항의와 야유가 빗발쳤습니다.

한 시간쯤 지나 서장이 호위경찰을 대동하고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저는 그에게 다가가 "두고 보지 말고 지금 보자"고 했습니다. 서장을 포함한 경찰들은 저를 피해 내려가다가 분을 참지 못한 주민들에게 실랑이를 당해 모자를 뺏기는 등 창피를 당했습니다. 아마도 그가 밀양경찰서장으로 온 이후 가장 치욕적인 날이었을 겁니다.

어떻게 경찰서장이 일개 시민에게 "두고 보자"고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수많은 경찰과 형사들을 수하로 거느린 경찰서장이 어떻게 시정잡배들이나 쓰는 그런 협박성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날 이후로 저는 길고양이 낙엽 밟는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잡혀 들어온 지금이 오히려 훨씬 편합니다. 잠도 마음껏 잘 수 있고요."

- 체포되기 직전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밧줄로 목을 매고 있었습니다. 주위 상황이 나를 그렇게 몰고 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후회도 했습니다. 구속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2, 3개월간 구속됨으로써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게 훨씬 커 보였기 때문입니다. 근데 지금 보니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이 제가 생각지 못한 부분들에서 이런저런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만 본다면 이번 사건으로 너무 많은 것을 받게 되었습니다. 행복합니다."

- 주민들 사이에서 정대준씨의 인기가 좋은데요.
"원래 제가 인기가 좀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큰 사랑을 보내줄 줄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태산입니다."

- 뭐가 걱정이라는 거지요?
"이렇게 인기가 좋을 때 구속돼 인기를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니까요. 2, 3개월 후에 나갔을 때는 그 인기가 다 식어 있지는 않을까 해서지요. 그럼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태그:#밀양, #밀양 송전탑, #정대준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