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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우리 마을 내가 지킬란다" 밀양 할매의 일성입니다. 당진지역에만 설치된 송전철탑은 모두 521개. 정부는 여기에 추가로 140여 개를 더 짓겠다고 합니다. 주민 400여 명에 불과한 마을에 그 사이 암으로 죽은 주민은 모두 13명. 11명은 지금 투병 중입니다. 어디나고요? 충남 당진 교로 2리 이야깁니다. 밀양의 미래라고 다를까요? 이 마을 주민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통해, 밀양과 당진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봅니다. [편집자말]
지난 15일 늦은 오후 충남 당진시 석문면 교로2리 마을회관. 10여 명의 노인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있다. 필자의 얼굴이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 송전선로 아래에서 전원 연결도 없이 폐형광등에 불이 들어왔다는 <오마이뉴스> 기사 '765kV 송전탑 아래선 전기 없어도 불이 들어온다'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연속된 관련기사 : '송전탑 형광등'이 쇼라고? 에너지 전문가들 '발끈').

6일 오후 충남 당진 왜목마을 일대에 설치된 765kV송전탑 아래에서 전자파의 영향을 실험하기 위해 설치한 형광등이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6일 오후 충남 당진 왜목마을 일대에 설치된 765kV송전탑 아래에서 전자파의 영향을 실험하기 위해 설치한 형광등이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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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이상 마을에 늘어선 철탑을 일상처럼 마주하고 살아온 주민들도 이 사실은 충격이었다. 놀란 주민들은 전날 밤 직접 형광등을 들고 송전선로 아래로 가 실험을 해 보기도 했다.

"정말이더라구! 손에 들고 있는 형광등에 불이 들어 왔어. 기사를 보고 놀라서 여기에 있는 주민 4명이 실험을 해 봤는데 진짜 불이 들어올 줄이야.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네."

"설마했는데, 진짜 형광등에 불이 들어오더라니까"

주민 이진성(73)씨가 격앙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뉴스를 보고 그냥 있을 수 있어야지. 설마 들어오랴 했는데 직접 실험을 해보니 형광등에 불이 들어와. 선로에서 50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깜박깜박하며 불이 들어오더라니까. 이러니 지역 주민들이 제대로 살 수 있겠어."

교로2리 마을 주민 임긍규 어르신.
 교로2리 마을 주민 임긍규 어르신.
ⓒ 유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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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이 마을 주민들은 고압 송전선로로 인한 고통을 호소해왔다.

"궂은 날이면 송전철탑에서 공기를 찢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심지어 철탑주변에서는 잠 잘 때 바닥에서도 소음이 났어요. 모래땅에서는 소음이 더 심했죠."

임긍규 노인회장은 주민들을 괴롭히던 전자파의 존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마을의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울분을 터뜨렸다.

"이 마을은 765kV 송전철탑과 154kV 송전철탑이 V자로 지나가요. 그러니 그 가운데에 있는 마을에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겠어요."

교로2리에서는 1999년 당진화력에서 송전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24명의 암환자가 발생했다. 이 중 13명이 죽고 11명이 투병 중이다. 200가구 400여 명에 불과한 교로2리에 24명의 암환자가 갑자기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과 송전선로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한전에서는 송전선로가 암을 유발했다는 근거가 있냐고 따져 묻지만 시골 주민들이 이를 증명할 방법은 없다. 다만 송전을 시작한 이후 암환자가 급증한 것은 사실이며 그 원인으로 마을 주민들은 송전철탑을 지목할 뿐이다. 

임긍규 노인회장은 "송전을 시작한 이후 폐암, 위암, 피부암, 백혈병 등 암이 급증했다"며 "입증할 방법이 없으니 보상도 받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이대로는 못살겠다, 집단 이주라도 해달라"

교로2리에 인접한 당진화력발전소는 현재 50만kW급 발전소 8기를 가동하고 있으며 100만kW급 발전소 2기를 건설 중이다.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송전하는 765㎸ 철탑이 마을 앞으로 지나가고 발전소로 송전되는 154㎸ 철탑이 마을 뒤로 지나간다. 여기에 민자발전사인 '동부화력'이 50만kW급 발전소 2기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멀리 당진화력이 보이는  765kV 송전탑.
 멀리 당진화력이 보이는 765kV 송전탑.
ⓒ 유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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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가 밀집하게 되자 정부는 이 마을에 또 다시 365㎸ 철탑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된다면 교로2리에는 154㎸와 345㎸, 765㎸ 등 우리나라의 고압 송전철탑 종류가 모두 들어서게 된다. 기존 154㎸와 765㎸ 송전선로로 인해 고통받고 있던 주민들은 345㎸ 송전철탑이 또 건설된다고 하니 "더 이상 이 마을에서 살 수 없다"며 집단 이주를 요구하고 있다.

김종흔(71)씨는 "지금 우리는 전기방석 위에 사는 것"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석탄화력발전소와 송전철탑이 더 들어온다면 더 이상 살 수 없는 만큼 집단 이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전선로로 인해 온갖 고통을 받아온 교로2리 주민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주어졌을까? 널리 알려졌지만 지금까지 송전선로로 인한 보상은 철탑 건설부지와 선하지(특별고압의 가공전선 아래의 토지를 지칭하는 말) 보상이 전부다.

철탑은 한 번 지나가면 막대한 건강상 악영향은 물론 주변 토지 거래가 아예 막히는 등 재산상 피해도 심각하다. 선하지만 해도 선로 외측 3미터까지만 보상 대상이고 이마저도 공시지가의 30% 수준이다. 많은 주민들이 암에 걸려 죽고 병들었지만 한전에서는 철탑과 암의 상관 관계를 주민에게 입증해 보라는 말뿐이다.

지난해 12월 31일 '송변전시설 주변지역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송주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이곳 교로2리 주민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송주법'에서는 신설 선로만 대상으로 할 뿐 기존 선로는 보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 그동안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오히려 더 보상해야 마땅함에도 보상에서 아예 제외한다고 하니 주민들은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지 막막하다.

또한 '송주법'에서는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지원을 받는 지역도 제외되기 때문에 당진화력 주변 지역인 교로2리 역시 지원에서 제외된다. 주민들은 석탄화력과 송전선로로 인해 피해는 이중으로 받는데 지원은 이중으로 안 된다고 하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송전탑 개수 521개 당진에 140여개 또 추가


현재 당진의 송전철탑 개수는 모두 521개 (765kv 80개, 345kv 204개, 154kv 237개)다. 여기에 북당진-신탕정 간 345kV 송전철탑 41개의 건설이 예정돼 있어 해당 지역주민들이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지난 8월 30일 발표된 제6차 장기 송배전설비계획에 따르면 당진화력-북당진변전소 간 33.2km에 345kV 송전선로 100여 개가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당진시 전체 송전철탑 개수인 521개의 20%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앞서 정부는 2012년 12월에 작성된 '12년 중장기 전력계통 운영전망'을 통해 당진지역의 발전설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에도 접속설비는 765kV 당진화력-신서산변전소 간 1루트에 불과하다며 고장 시 수도권 대정전이 우려되므로 신규 1루트를 신속히 건설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마을회관 옆 765kv 송전탑.
 마을회관 옆 765kv 송전탑.
ⓒ 유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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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차 장기 송배전설비계획에서 당진화력-신서산변전소 간 765kV 송전철탑이 당진화력-북당진변전소 간 345kV 송전선로로 바뀌면서 송전 전압은 낮아졌지만 철탑 개수는 80여 개에서 100여 개로 훨씬 늘어나게 됐다. 정부에서는 수도권 대정전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라고 주장하지만 당진 지역 주민들은 믿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몇 달 전인 지난 7월 12일 대전MBC 시사플러스 '철탑왕국, 당진의 눈물' 편에서 한전 대전충남개발처 송변전팀장인 김도화 부장이 "당진화력-신서산변전소의 기존 765kV 선로는 최대 800만kW의 전력까지 송전할 수 있다"며 "당진에 발전소가 더 늘어난다고 해도 송전선로가 증설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송전선로를 추가하려는 다른 이유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전봇대인줄 알고 받아들인 송전탑... 다시 불안에 떠는 주민들

정부가 추진하는 발전소와 송전철탑 증설엔 일종의 공식이 있다. 우선 전기가 부족하다며 특정 지역에 발전소 2기만 짓겠다며 착공에 들어간다. 그 다음에는 생산된 전기를 생산지까지 보내야 한다며 송전철탑을 건설한다. 그 후엔 송전을 위한 인프라가 이미 구축돼 있으니 이곳에 발전소를 더 건설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교로2리 마을 주민들.
 교로2리 마을 주민들.
ⓒ 유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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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발전소를 증설하면 이번에는 발전 용량이 너무 커져 기존 회선으로는 개통이 불안정하다며 송전선로를 추가 건설한다. 이렇게 송전선로를 증설하게 되면 송전용량이 배로 늘어나기 때문에 이미 송전 인프라가 구축된 이 지역에 발전소를 또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발전소가 송전선로의 추가 건설을 불러일으키고, 송전선로가 발전소 증설을 야기하는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지금은 송전철탑 얘기만 나와도 펄쩍 뛰는 주민들이지만 초창기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정부안을 수용했다고 한다. 심지어 철탑 건설 부지의 보상을 바라고 유치한 주민들도 있었다고. 임관택 교로2리 전임 이장은 "처음에는 철탑인 줄도 모르고 일반 전봇대로 안 주민도 많았다"며 "심지어는 철탑 건설 부지 보상 때문에 일부러 유치한 주민도 있었다"고 말했다.

마을에 어떤 시설이 들어오는 줄 몰라 반대할 생각도 못했다는 주민들. 그러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송전철탑과 그로 인한 피해로 이제는 정든 고향을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입니다.



태그:#당진 송전탑, #밀양 송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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