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4 지방선거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울산시장 자리다. 공과를 떠나 '태화강 신드롬'으로 3선을 하는 동안 높은 지지율을 쌓았던 박맹우 시장이 물러나면서 여권 내 공천 경쟁이 치열한 것과 비례해 야권에서도 '한번 해볼 만 하다'는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
인구 118만여 명, 한 해 1000억 달러 수출, 지역내총생산(GRDP)과 시민 소득수준 전국 최고 등으로 우리나라 산업수도로 불리는 울산의 수장 자리는 정치인이라면 누구가 한번쯤 도전장을 내밀고 싶은 자리로 여겨진다.
통합진보당, 울산시장 도전을 명예회복 기회로 삼아
야권에서 울산시장 선거에 가장 먼저 불을 지피고 있는 쪽은 통합진보당이다.
통합진보당은 이미 지난 12월 17일 울산 북구청 대강당에서 내년 지방선거 후보선출대회를 열고 울산시장 후보에 이영순 전 의원을 선출했다.
울산에서는 지방의석 30%가량을 차지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의 진보당 정당 해산 청구 등으로 현재 고통을 겪고 있는 통합진보당은 이번 지방선거를 최대의 반격으로 삼아 명예회복을 한다는 구상이다.
이영순 전 의원은 남편 김창현 전 동구청장과 함께 학생운동을 한 전력이 있고 지난 1998년 초대 민선 동구청장에 당선된 남편 김창현씨가 영남위 사건으로 낙마하자 보궐선거에나서 한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저력이 있다. 이후 그는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영순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17일 시장 후보 선출 소감에서 "(남편 김창현씨가 동구청장에 낙마할 당시) 공안세력이 우리를 빨갱이라 했지만, 주민들은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진보구청장을 다시 구출했다"며 공안상태에서도 자신이 동구청장에 당선됐던 것을 상기했다.
이같은 결의는 당시와 같이 지금도 통합진보당이 총체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주민들이 자신의 진심을 알고 선택할 것이라는 믿음을 표출한 것이다.
시장후보 선출 이후 그는 활발한 민심훓기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월 16일에는 민주노총 울산건설기계지부와 함께 울산시의회 프레스센터에서 '설맞이 노동자 임금체불 해결촉구' 기자회견을 열면서 노동자들을 다독이기도 했다.
또 한 사람의 전직 국회의원으로 이번 울산시장 선거에 도전하는 사람은 정의당 조승수 전 의원. 그는 북구에서만 두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된 다크호스다. 그동안 각종 언론에 울산시장 후보군으로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그는 지난 1월 14일 정의당 울산시당 운영위원회에서 울산시장 후보로 확정됐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리면서 본격적인 행보에 들어갔다.
단지 정의당 울산시당이 오는 1월 22일 공식 창당할 예정이라 기자회견을 통한 울산시장 출마선언은 그 이후인 1월 말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승수 전 의원은 "울산은 특정 정당이 지방자치를 장기독점해왔다"며 "시민들의 삶을 제대로 챙기는 새로운 행정이 필요하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당시 진보신당 소속이던 조승수 전 의원은 2009년 4.29 울산 북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노동당 김창현 울산시당위원장과 피를 말리는 야권연대 후보단일화를 벌인 뒤 승리해 새누리당과 본선을 벌여 자신이 넘겨줬던 북구 국회의원직을 되찾기도 했다.
만일 이번 6.4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가 성사돼 후보단일화를 한다면 이제 김창현씨의 부인인 이영순 전 의원과 다시 한번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울산에서 무관의 제왕인 민주당, '변호인' 호조에 용기
집권당을 거쳐 제1 야당인 민주당은 그동안 유독 울산지역에서만 제대로 힘을 발휘 못했다. 울산에서는 진보정당이 약진하면서 보수세력인 새누리당과의 사이에 낀 어중충한 상태가 지속돼 왔던 것.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열리우리당 노무현 후보가 자신의 고향인 김해시의 득표율 39.70%를 훨씬 앞서는 47.90%의 높은 득표율을 울산 동구에서 얻는 등(울산 전체 득표율 35.27%) 무시할 수 없는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심규명 울산시당위원장과 송철호 전 국민고충처리위원장, 그리고 과거 민주노동당으로 북구청장을 지낸 후 2007년 대선 때 민주당 손학규 후보를 지지하며 민주당으로 옮긴 이상범 전 북구청장이 울산시장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
심규명 시당위원장은 진보-보수의 이분화가 한창이던 지난 2006년 울산시장 선거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했다. 그는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와 민주노동당 노옥희 후보가 각축을 벌이는 와중에도 11.5%를 득표하며 3위를 차지했다.
특히 2012년 총선 때는 울산 남구 갑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서 야권단일 후보 경선을 벌였고, 현역이던 조승수 의원을 누르고 야권단일 후보로 선출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민주당 내에서 관심을 모으는 송철호 변호사의 경우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1980년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줄곧 지역에서 악습으로 자리잡았던 보수세력의 '지역 색깔론'에 희생된 측면이 강하다.
송철호 변호사는 지난 1992년, 1996년, 2000년, 2012년 총선과 2002년 지방선거 때 울산시장에 도전했으나 보수층의 지역색깔론에 영향을 받아 번번히 실패했었다. 일례로 한 지역 일간지는 선거를 앞두고 1면 톱기사로 "송철호 호남출신" "송철호 철새 정치인 확인" 식의 음해성 보도를 가하기도 했다.
그의 잇따른 선거 도전 실패를 두고 부산에서 연이어 선거에 패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 때문인지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를 장관급인 국민고충처리위원장에 임명해 지역차별을 없애주기를 당부하기 했다.
그동안 보수-진보 이분 프레임에 눌려 위축됐던 민주당 울산시당이 지난해 대선을 기점으로 점차 자신감을 얻으면서 지역에서 민심을 향한 광폭행보를 보이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특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묘사한 영화 <변호인>이 곧 1000만 관객을 돌파할 예정인 가운데 울산지역 극장가 곳곳에서도 <변호인>을 보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