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늦었네. 늦었어. 어머니 죄송해요. OO아 저녁 먹었냐?""저녁? 너희들이 이렇게 늦게 오는데 밥 먹었겠냐? 엄마랑 내가 음식 다했어!"그녀는 우리 부부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남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날은 결혼 후 처음 맞는 아버님 생신날이었다. 아버님이 지방에서 일을 하고 계셔서 가족들이 다 모일 수 있는 주말에 생일잔치를 하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주말에 당일치기 직원연수가 있었고, 남편도 피치 못할 사정으로 출근을 해야 했다.
최대한 업무를 빨리 마무리 했고, 저녁 7시께 남편과 함께 시댁에 들어섰다. 하지만 하루 종일 기름 냄새 맡아가며 음식을 만들어야 했던 '나의 그녀'는 이미 뿔이 잔뜩 치솟은 상태였다. 그렇다. 나의 그녀는 시누이, 주로 아가씨라고 불리는 남편의 하나 뿐인 여동생이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자신보다 한 살이나 어린 새언니다. 그날, 그렇게 시누이의 불평불만을 듣고 있자니, 뭔가 이상했다.
'아니, 며느리가 없었던 불과 1년 전 오늘만 해도 어머님과 시누가 이 음식을 다 했을 터인데... 새 식구인 내가 들어왔다 해서 더 힘들거나 자신이 음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건가? 여태껏 나 없이 잘 해오다가 왜 갑자기 부재중인 나 때문에 혼자 고생한 것처럼 저러지?'이렇게 생긴 시누이에 대한 내 궁금증의 답은 시부모님 생신뿐 아니라 절기마다 돌아오는 명절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명절 이외에 다른 집안 행사 때도 음식 만드는 것을 전혀 거들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그런 그녀에게 일을 시키지도, 나무라지도 않았다.
내가 설거지 할 동안, 시누는 대체 뭘 했지?
'명절'이란 단어만 들어도 스트레스를 받을 만큼, 대한민국 사회에 명절스트레스는 만연해 있다. 나도 명절만 되는 그 스트레스를 받는 며느리 중 한 명이고... 사실 내 경우 음식 만드는 스트레스만 있었다면, 잘 참고 견딜 수 있었을 텐데, 고작 한 살 많은 시누가 번번이 스트레스를 줘 더 괴로웠다.
첫 명절을 삭신이 쑤시게 보내고 난 후 나는 생각했다. '나는 큰 집 며느리도 아닌데, 왜 거기 가서 손가락 지문이 닳도록 찬물로 설거지를 했을까. 나는 큰 집 맏며느리도 아닌데, 허리가 굽도록 앉아서 전 부치고 지금 엎드려 꼬리뼈를 만지고 있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문득 문득 들다가, 무언가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근데 이 집 여자는 나뿐인가? 내가 손목에 파스까지 붙여가며 일할 때 아가씨는 뭐했지?' 어머님이 이거해라, 저거해라, 얘야, 쟤야 하는 통에 정신이 혼미해져 영혼 없이 음식을 하다가 집에 와서 영혼을 찾고 보니, 그제야 시누이 생각이 났다.
시간을 주섬주섬 주워 생각해보니 내가 동그랑땡을 꼭꼭 눌러 반죽하고 있을 때, 그녀는 소파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TV를 보았던 것 같고, 내가 모든 신경을 집중한 채 혹시 찢어질까봐 노심초사하며, 메밀전을 뒤집었을 때 그녀는 소파 위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잔 것 같고, 내가 이쑤시개에 채소와 고기 등을 색깔 맞춰 꽂을 때엔 낮에 먹은 게 소화가 안 된다며 저녁은 안 먹을 거니,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명절음식을 많이 안 해본 나는 용하게도 메밀전을 한 장도 찢어먹지 않았고, 산적꼬치는 가지런히 잘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으며, 갈비찜은 뼈가 쏙 빠질 정도로 부드럽게 익었다. 어머님과 큰집어머님은 "음식 많이 해봤구나, 손끝이 야무지다"며 칭찬하셨지만,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칭찬은 안 해주셔도 좋으니, 시누이를 불러 함께 일 좀 하라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절 아침, 아침식사 후 입이 심심하셨던 큰집아버님은 시누에게 과일을 깎아보라고 했다.
"엥? 제가요? 왜요? 새언니 있잖아요.""이런... 언니 어제오늘 바쁜 거 못 봤냐. 지금도 설거지 막하고 앉았구만! 얼른 사과 깎아 내와."하지만 시누는 큰아버지의 말에도 미동도 않은 채 TV 앞을 지켰다. 같이 앉아있던 내 얼굴이 불화산처럼 타오르는 것 같아 냉큼 일어나 주방에서 사과를 가져왔다. 묘한 긴장감이 불러온 무거운 공기가 가슴을 꾹꾹 눌렀고, 숨이 턱턱 막혔다. 나는 사과 한 쪽이 큰집아버님의 입에 들어가야 내 숨통이 트일 것 같아서 빠른 속도로 사과 돌려 깎기를 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사과를 깎고 있는 나를 보면서도 시누는 꿈쩍도 안 했고, 결국 큰집아버님은 시누에게 또 한소리를 하셨다.
"OO야, 너 언니처럼 음식 할 줄 알아? 사과 한 쪽이라도 깎을 수 있어?""결혼하면 다 해요.""결혼한다고 다 해? 지금부터 보고 배워야하지!""새언니도 결혼하고부터 하게 된 거예요. 맞죠? 새언니?"결코 내 귀에 좋게 들리지 않는 저런 말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는 시누가 미웠으나, 나는 '아닌데, 나는 두발로 걷기 시작할 때부터 쟁반을 들고 내 밥그릇을 날랐고 연필 쥐던 날부터 과도 들고 우리 부모님에게 과일 깎아드렸는데...'라는 말을 속으로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집안 행사 때마다... 시누이는 '부재중'
그해 명절 난 아침 차례를 지내고 설거지를 한 뒤, 점심상을 차리고 늦은 오후에 주전부리까지 챙겨드린 후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틀 내내 일하느라 척추가 휠 지경이었는데, 이틀 내내 먹고 눕고를 반복하던 남편은 뭐가 피곤하다는 건지 한숨 자고 친정으로 가자고 했다. 그 말인 즉, '오늘 친정에 가지 말고 내일 가자' 아님 '결혼 후 첫 명절인 올해엔 친정에 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의미였다.
명절에 시댁에서 음식 만드는 것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명절연휴 내내 바쁘게 일하는 여인들을 나 몰라라 하는 시누의 태도와 친정 내려가는 것을 암묵적으로 포기하라는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났다.
"여보, 일어나봐. 할 얘기 있어.""뭐야 무슨 할 얘기... 아... 나...기름진 음식 너무 먹었나, 배탈난 거 같아.""아니... 아가씨, 사람이 왜 그래?""왜 또 무슨 일 있었어? 내가 보니 별 일 없던데, 평소랑 다를 것 없이...""그게 별일이지... 명절이라고 모든 여자들이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면서 손이 부르트도록 음식을 하는데, 아가씨는 왜 소파 위에서 떠나질 않는 건데?""아... 걔 원래 그래. 집에서도 어머니가 시집가면 일 많이 한다고 안 시키기도 하고.. 할 줄 아는 게 없기도 하고... 그렇잖아. 나중에 시집가면 하기 싫어도 많이, 그리고 계속 해야 할 텐데... 뭐 벌써부터 살림노동을 시키냐. 안 그래? 당신도 그렇지 않았어?""하! 그럼 나는 결혼한 여자라서 손이고 눈이고 부르트게 이틀 밤낮을 일해야 돼? 평소엔 안 하더라도 명절같이 바쁜 날엔 좀 눈치껏 알아서 좀 거들면 누가 잡아먹어?""나이는 많아도 어머니가 그렇게 키웠으니 모를 수도 있지. 그 나이엔 살림도 잘하고 명절에 음식 거들 줄 아는 눈치가 기본으로 있어야해? 그건 누가 정해놨는데? 어머니가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으니 네가 좀 이해해. 걔도 이제 곧 시집갈 텐데 시집가서 고생하다보면 당신 마음 알아주겠지. 응?"이날 남편은 남편이 아니라 남편의 탈을 쓴 어머님이 분명했다. 그 후로도 연중행사, 가령 김장하는 날, 부모님생신, 큰할머니 생신, 제사 때만 되면 시누이는 여행을 가서 부재중이거나, 저녁약속을 잡아 부재중이거나, 어쩌다 집에 있더라도 TV 앞을 지켰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전주 종갓집 장남 만나서 매달 제사지내다 손가락 마디 관절염 걸려라!', '고추장도 집고추장 담가 먹고 한 달에 한번 커튼 빨래하는 집으로 시집이나 가라고!'
얄밉고, 얄미웠던 시누이가 변한 이유... 뭘까?그런데 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나의 소리 없는 폭언이 나 스스로를 위로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출산 이후에 내 이해의 폭이 대단히 넓어진 걸까. 그렇게 얄미운 소리만 하던 시누이가 어느 날, 변했다.
"아, 새언니 나는 결혼하면 새언니처럼 못할 것 같아요." "새언니 결혼하기 전에 어디서 요리 배웠어요? 부럽다." "새언니 우리 쇼핑 가요. 이 옷 어때요?"'새언니'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전에는 없었던 부드러움과 진심이 담겨 있었고, 나도 아무 오해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나에게 인간관계에 대해서 상담하기 시작했고 거리낌 없이 같이 쇼핑을 하자고도 했다.
자신보다 나이 어린 새언니를 받아들여야 했던 시누는 분명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나도 그 부분을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며느리로서의 본분에만 충실했다. 물론 난 아무리 노력해도 시어머니의 딸이 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했다. 아마도 시누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날 인정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또 다시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어미를 목숨처럼 아는 딸자식 때문에 딸자식을 등에 업고 음식을 해야 하지만, 나는 올해도 변함없이 나의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 '시월드'에서 사랑받기 충분한 며느리로, 새언니로, 새아가로, 내조하는 아내로 반듯하게 서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명절을 앞두고 나의 '그녀'에게 이렇게 이야기해 볼 작정이다.
"아가씨, 올해도 큰댁 아주버님들 장가 안 가려나? 그 집에 며느리가 들어와야 어머님도, 아가씨도 나도 음식 안 하고 편할 텐데. 그죠? 우리 이번 명절엔 같이 음식 만들고 영화 보러 가요. 내가 영화는 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