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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빛...오오 눈부신 고립 속에 잠시라도 갇혔으면...
▲ 설국... 순결한 빛...오오 눈부신 고립 속에 잠시라도 갇혔으면...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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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이라도 내린다면...못 이기는 척 하룻밤 머물 수 있으련만...
▲ 덕유산... ...폭설이라도 내린다면...못 이기는 척 하룻밤 머물 수 있으련만...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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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면 특히 1,2월이면 사람들은 눈꽃산행을 계획하고 눈 소식에 귀 기울이며 눈과 만날 기대에 부풀어 오른다. 눈은 소리 없이 세상을 설국으로 만들지만 눈을 그리워한 사람들은 한바탕 소란스럽게 눈과 조우한다. 좋다 하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리라. 해서 시인(문정희)은 뜻밖의 폭설을 만나, '못 잊을 사람'과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고립되고 싶다고 눈에 갇히고 싶다고 했나보다. 뜻밖의 폭설을 만나 발이 묶이고 싶다고 했던 시인의 마음이 이해된다.

겨울산행의 묘미는 무엇보다 설국에 입성해 눈꽃나라에서 맘껏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보는 것이고 눈부신 고립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우리가 눈을 좋아하는 까닭에 어쩌면 잃어버린 동심, 잃어버린 낙원, 잃어버린 순수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 때문이 아닐까. 순백의 그 동화 나라 설국에서 잃어버린 낙원에의 귀향을 꿈꾸기 때문이 아닐까. 혹 무죄에의 소원 때문이 아닐까.

"함박눈이 내립니다.
함박눈이 내립니다. 모두 무죄입니다"(고은,'순간의 꽃'중)

설국, 동화의 나라에 입성하다

향적봉에서 중봉까지 걷다...
황홀한 동화 속으로...
▲ 덕유산... 향적봉에서 중봉까지 걷다... 황홀한 동화 속으로...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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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유산... ......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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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덕유산을 만나러 가는 날 아침은 의외로 맑고 포근한 날씨여서 덕유산도 따뜻하겠거니 생각하였다. 예전에 덕유산 겨울산행을 갔다가 추워서 많이 떨었던 기억 때문에 아무쪼록 옷을 여러 겹겹을 입고 단도리를 해서 나섰지만 포근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덕유산(1614m)은 전라북도 무주와 장수, 경상남도 거창과 함안군 등 2개의 도 4개 군에 걸쳐 솟아 있으며,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남한에서 네번째로 높은 산이다, '덕이 많고 너그러운 어머니 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덕유산은 해발 1614m의 향적봉을 정상으로 하여 백두대간의 한 줄기를 이루고 있다. 봄 여름이면 천상의 정원 같은 능선 길에 야생화들이 지천에 피어나서 좋고, 겨울이면 특히 12월에서 2월 사이에는 눈꽃이 아름답게 피어 설국이 된다. 이번에 눈의 나라 덕유산에서 상고대를 볼 수 있을까. 기대에 찬 맘 설렌다.

눈의 나라 입성...
▲ 덕유산... 눈의 나라 입성...
ⓒ 최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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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포근하고 맑아 좋다. 화명동에서 출발해 북부산 IC를 지나 문산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고 한참 가다가 덕유산휴게소에서 다시 휴식. 여기서부터는 맑았던 하늘이 흐려지고 진눈깨비가 날리기 시작했다. 치목터널을 통과하고 구천동터널을 지나자마자 잔뜩 흐리고 춥다. 부산 날씨와 확연히 달랐다.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았고 눈발은 날리고 차는 도로에 길게 줄을 섰고 심상치가 않다. 겨우 긴 차들의 행렬 끝에 길이 조금씩 열리고 3시간 25분 만에 무주리조트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어깨위에도 눈이 들러붙었다. 추위와 눈에 노출된 우리는 잔뜩 몸을 움츠리고 미끄러운 길을 걸어올라 곤돌라 승강장 앞에 도착했다.  어디서부터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을까. 덕유산 곤돌라 탑승장 주변은 흰 눈과 온통 사람들뿐이다. 곤돌라를 타기 위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긴 행렬이 이어졌고 우리도 그 속에 합류했다. 다행히 단체로 왔고 미리 저녁 먹을 식당에 부탁을 해서 곤돌라 표를 아침에 끊어놨기에 조금은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온통 희디흰 눈 뿐인 동화의 나라에서...
▲ 덕유산... 온통 희디흰 눈 뿐인 동화의 나라에서...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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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시간동안 곤돌라 승강장 앞에서 줄을 서 있다가 겨우 곤돌라에 올랐다. 15분 소요되는 곤돌라 타는 시간을 위해 한 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여덟 명을 태운 곤돌라는 금방 공중으로 떠올랐다. 무주리조트에서 설천봉까지는 15분밖에 안 걸리지만 이런 기계를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긴 시간으로 느껴졌다. 눈 질끈 감고 숨을 죽인 채 앉아 있었다. 곤돌라에서 내려다보는 숲은 눈으로 덮여있었다. 바람이 불어 휘청했다.

곤돌라에서 내려 설천봉에 도착. 밑에 날씨와 또 다르게 눈보라가 몰아치고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모든 사물이 일시에 지워졌다. 어쩐다. 계속해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오는 회원들과 함께 레스토랑 안으로 파고들었다. 급히 아이젠을 착용하고 만약을 위해 배낭 속에 넣어 온 우의를 꺼내 두껍게 입고 온 겉옷 위에 껴입었다.

향적봉 대피소 앞에서...
▲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 앞에서...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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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천봉(1470m) 곤돌라 정류소에서 30분 약 600미터 걸어올라 가면 향적봉이다. 하지만 눈과 바람이 손을 맞잡고 눈보라를 일으키니 눈앞은 흐리고 아무것도 조망되지 않았다. 다행히 향적봉 정상까지 가는 길은 그다지 길지 않고 정상까지 데크 계단도 깔려 있어 걷기에 험하지 않았다. 지금이 가장 많은 눈을 볼 수 있는 시기인데다 마침 주말이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 까닭에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 가는 눈길에도 사람 띠를 길게 만들었다.

지금 막 내린 눈이 만든 눈꽃이 나무 가지마다 환상적으로 피어났다. 마치 우리가 온 것을 환영하듯 눈꽃 퍼퍼먼스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끝없는 행렬 속에서 지칠 법도 한데 몰아친 눈이 만들어준 상고대를 보면서 모두들 황홀해 했다. 힘든 것도 추운 것도 긴 행렬의 짜증도 사라졌다. 막 피어난 상고대를 보며 눈꽃 터널을 지났다.

언젠가 본 영화 c.s.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 보면 옷장 안에 들어가자마자 뜻밖의 새로운 모험의 세계가 열리던 장면이 있는데, 마치 지금 우리 모습이 그런 새로운 세상으로의 입성이요 모험이 있는 동화의 나라에 갑자기 옮겨진 듯 했다.

눈꽃이 피어나는 황홀한 시간...
동화의 나라에서...
▲ 덕유산... 눈꽃이 피어나는 황홀한 시간... 동화의 나라에서...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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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봉 일대 역시 사람 사람들...일단 눈보라치는 향적봉에서 피하고 보자싶어 향적봉대피소로 내려갔다. 밑으로 내려가면서부터 거친 바람의 숨결이 잦아들어 포근하게 느껴졌다. 설국에 온 사람들은 동화의 나라에 색깔을 입혀 알록달록 물들었다. 지금, 내리는 눈으로 피어난 상고대는 황홀 그 자체다. 모두들 추위에 떨며 모여앉아 눈밭에 도시락을 놓고 먹었다. 대피소 안팎에서 눈꽃 핀 나무들 아래서 아이처럼 좋아하며 사진을 찍고 중봉으로 향한다.

중봉까지 걷는 하늘 능선 길. 설국에 입성해 동화나라의 주인공이 된 듯한 신비와 호젓함을 향유하며 걸었다. 미처 덕유산의 맹추위를 예상치 못해 준비가 부실했던 몇몇 사람들은 설천봉에서 올라올 엄두도 못 낸 사람도 있고 향적봉까지 왔다가 내려 간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우린 추위도 잊은 채 황홀한 순백의 눈꽃나라에 반해 아이들처럼 좋아하며 홀린 듯 걸었다.

눈 덮인 향적봉 대피소...
▲ 덕유산... 눈 덮인 향적봉 대피소...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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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봉까지 걸어가는 은백색 빛 길 걸으며 황홀감에 빠졌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걷고 싶은 길. 신묘막측 기기묘묘하여라. 마치 우리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눈이 내리고 바람을 몰아와서 눈보라치며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눈꽃들이 기적처럼 피어나더니 중봉까지 가는 눈길에서 흐린 하늘이 열리며 설국의 다채로운 표정을 연출하였다.

그리고 하늘이 환하게 열리며 설국은 빛의 나라가 되었다. 눈부신 설국의 광경에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으로 뒤덮인 덕유산 일대는 빛을 입어 눈이 시리도록 더욱 희게 빛났고 오묘한 바람과 눈의 손길로 빚어진 눈꽃들은 순결하게 빛났다.

황홀하여라. 이 겨울, 동화의 세계가 펼쳐지는 설국이여. 능선 길에 살아 천 년 죽어 천년 이라는 주목과 구상나무들이 하얗게 눈을 덮어 쓴 채 도사처럼 위엄 있는 표정으로 서 있다. 누가 이토록 아름답고 순결하고 황홀한 풍경을 만들 수 있을까.

바람을 부르고 눈을 부르고 구름과 햇볕을 부르고 불러서...황홀한 눈꽃 세레머니를, 설국나라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연출해 주시는 그 분의 세밀한 손길을 마음껏 느끼며 감동하며 걸었다. 향적봉에서 중봉까지 능선 길 따라 1km의 거리지만 홀린 듯 발이 땅에 붙지 않는 듯 가볍게 걸었다. 남 덕유산까지 이어지는 눈 덮인 능선 길을 눈앞에 두고 아쉽지만 돌아서야 한다.

중봉에서 바라 본 남덕유산줄기...
▲ 덕유산... 중봉에서 바라 본 남덕유산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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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빛 동화나라...그 황홀한 능선길...
▲ 덕유산... 백색빛 동화나라...그 황홀한 능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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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락눈으로 속삭여 봐야 알아듣지도 못하니까
진눈깨비로 질척여봐야 고샅길도 못 막으니까
저렇게 주먹을 부르쥐고 온몸을 떨며 오는 거다
국밥에 덤벼봐야 표도 안 나니까
하우스를 덮고 양조장 트럭을 덮는 거다
.......(생략).......
점점...으론 어림도 없으니까 삽시에, 일순에!
때로 몰려와 그리운 이름 소리쳐 부르는 거다
어른 아이 모다 눈길에 굴리고 자빠뜨리며
그리운 이의 발목을 잡는 거다
전화를 끊고 우체국을 파묻는 거다
철길을 끊고 정거장을 파묻는 거다
다른 세상으로 비행기 한 대 못 뜨게 하는 거다" ('폭설'/윤제림 시)

폭설에라도 갇힌다면...못 이기는 척 하룻밤이라도 이 동화의 나라에 머물다 가겠지만...짧은 동화의 나라 여행 아쉽고,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하룻밤쯤 발이 묶였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돌아선다. 비록 추위에 손과 발이 깨질 듯 시리기도 했지만, 오래 기다린 시간에 비해 짧은 설국의 입성이었지만 오늘 같은 눈 나라 동화의 나라 여행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최고였다.  짧은 눈꽃나라, 동화나라 입성, 그리고 긴 여운...오래 오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산행수첩
1. 일시: 2014년 1월 18일(토)흐린 뒤 차츰 맑음
2. 산행: 포도원교회 등산선교회 73명
3. 산행시간: 2시간 25분
4. 진행: 설천봉(오후1:35)-향적봉(2:05)-향적봉대피소(2:15)-점심식사 후 출발(2:55)-중봉(3:20)-향적봉대피소(3:40)-향적봉(3:45)-설천봉(4:10)

5. 특징: 왕복 곤돌라 탑승: 편도 9,000원 왕복 13,000원 (단체할인: 30명이상 11,000원/펼도 할인 없음)
6. 교통: 부산 화명동 포도원교회에서 출발(8:35)-북부산IC(8:45)-문산휴게소(9:40~9:50)-덕유산 휴게소(11:00~11:10)-덕유산 IC(11:15)-치목터널-구천동터널(11:35)-눈 내리기 시작 정체됨-무주리조트(12:00): 3시간 25분 소요됨

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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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태그:#덕유산, #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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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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