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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학생인권조례가 오는 1월 26일로 공포 2년을 맞는 가운데,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 학생인권조례 개정에 반대하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글을 받아 싣는다. [편집자말]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시교육청은 서울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참여단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기존 조례 규정에 따라 학생참여단과 즉석 안건 형식으로 논의 절차를 거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참여단의 이야기는 달랐다. 학생참여단 한 학생은 "서울시교육청은 우리와 학생인권조례 개정에 대해 전혀 얘기한 바 없다, 안건으로 나온 바도 없다"고 밝혔다.

사실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학교 현장 방문 중에도 마음만 있다면 학생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언젠가 우리 학교에도 교육감이 온 적이 있었다. 우리는 수업을 하는 중이었고,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교육감께서 방문하실 테니 졸지 말고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라"라고 명령했다. 학생인 나는 의견을 내기는커녕 창문 밖으로 언뜻 스쳐지나가는 교육감의 뒷모습만 얼핏 봤을 뿐이었다.

문용린 교육감은 대체 어떤 학생의 의견을 들었다는 것일까? 대체 어떤 학생이, 자신의 동의 없이 소지품 검사를 해도 좋다고, 학교장 마음대로 자신의 복장과 두발에 대해 규제해도 된다고 이야기했단 말일까? 이번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은 학교장의 권한으로 학생을 대상으로 한 소지품 검사와 두발 및 복장 규제 등의 인권침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 놓았다. 불시에 행해지는 소지품검사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너 담배 피지? 어디에 숨겼어!"라며 이미 다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가방을 마구잡이로 뒤지고 서랍 속을 확인하고 심지어는 벗을 수 있는 것은 다 벗게 하고 검사를 한다. 두발과 복장 규제를 할 때면 자를 가져와서 머리길이를 재고, 파마를 한 것 같은 학생의 머리에 물을 뿌려서 검사를 한다. 과연 이런 것들이 학생인권유린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대체 어떤 학생이, 자신의 인권을 유린해도 좋다고 문용린 교육감에게 이야기했단 말인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교를 떠나는 이유

이번 개정안은 인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습니다. 조례에서 규정한 권리를 학칙으로 제한하다니요...
 이번 개정안은 인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습니다. 조례에서 규정한 권리를 학칙으로 제한하다니요...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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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번 개정안에선 원래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되어 있던 차별금지 사유 중 성적지향과 성정체성, 그리고 성소수자 학생 인권보호 조항들이 삭제되었다. 원래의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을 명시한 조항은 다음과 같다.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제1절/제5조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제4절/제14조
학생은 가족, 교우관계, 성적, 병력, 징계기록, 교육비 미납사실, 상담기록, 성적지향 등의 개인 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10절/제28조
교육감, 학교의 설립자·경영자,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빈곤 학생, 장애 학생, 한부모가정 학생, 다문화가정 학생, 외국인 학생, 운동선수, 성소수자, 근로 학생 등 소수자 학생이 그 특성에 따라 요청되는 권리를 적정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원래 있던 조항을 사회적 논란이 된다는 이유로 없애버린다니, 서울시교육청은 성소수자 학생은 차별받아도 된다고, 성소수자 학생들이 괴롭힘과 혐오를 당해도 묵인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인가?

나는 지금 서울의 한 고등학교를 다니는 성소수자 학생이다. 동성친구와 연애를 했고, 내가 끌리고 좋아하는 사람은 동성인 여자들이고, 나는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동성애자로 살아갈 것이다. 바뀌어야 할 것은 내가 아니라 이 사회와, 서울시교육청의 편견과 무지다.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괴롭힘에 대한 학교의 미온적, 혹은 오히려 적대적인 대처에 지쳐 학교를 떠나고 있다. 아직 학교 안에 있더라도 자신의 성정체성이 알려지게 되면 따돌림과 폭력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교사와 학교가 '그러기에 왜 성소수자라는 걸 밝혔니' '우리 학교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두고 볼 수 없으니 네가 학교를 떠나라' 등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학생인권이 보장되는, 난 그런 학교를 꿈꾼다

일부 교사들은 수업 시간에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성소수자 학생을 소외시키는데 합세하기도 한다. 성소수자 학생의 인권이 학교에서 지켜지려면 학생과 교사가 제대로 된 인권교육을 받아야할 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가 비폭력적이고 인권적인 분위기로 바뀌어야 한다. 학교 내의 인권은 단지 학생들이 좀 더 착해지면 되는 문제라거나, 교사가 좀 더 너그러워지면 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된 지난 2년 동안,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인권 실태가 급격히 좋아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교육청의 의지 부족으로 학생인권조례 시행이 전체적으로 미흡했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 부작용을 운운하며 이제 갓 발을 뗀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대폭 수정하는 것은 문제다.

아직 학교에서 성소수자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당당하게 두려움 없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는 건 너무나 낯선 풍경이다. 하지만 서울 학생인권조례의 이 작은 조항들을 딛고 제대로 된 인권교육과 성교육의 시작, 실질적인 괴롭힘 구제, 학생인권의 보장이 점차 시작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그런 학교를 꿈꾼다. 서울시교육청은 당장 학생인권조례 개악 시도를 중단하길 바란다.


태그:#서울학생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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