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일부러 유자빵 안 먹었는데 누가 터서 먹고 있냐?"아내의 닦달하는 불만 섞인 음성이 귀를 때렸습니다. 범인은 저였습니다. 저녁 먹기 전 배가 고파 요깃거리를 찾던 중, 지난 주말 거제도 지인이 준 유자빵이 떠올라 그걸 먹었는데 아내의 원망을 들은 것입니다. 모른 척 했다가는 아이들에게 불똥 튈 염려가 있어 이실직고 했지요.
"내가 배고파 간식으로 먹었네. 왜, 난 유자빵 먹으면 안 돼?""그건 아니고. 나는 먹고 싶어도, 설 때 어머님 아버님 드리려고 안 먹고 놔둔 건데…."어쭈구리, 눈치 없는 남편이 아내의 깊은 뜻을 몰랐습니다. 이럴 땐 타박을 받아도 흐뭇합니다. 그렇다고 고마움을 그대로 표현했다간 훗날을 기약하지 못합니다. 한번쯤 애교 섞인(?) 강한 반발이 필요합니다.
"뭐라. 신랑이 그것 좀 먹었다고 난리칠 일인가?""그게 아니라, 잘 먹었어요.""그렇지. 그리 나와야지. 신랑이 먹은 게, 뭐 그리 아까울꼬.""부모님들은 제가 다시 사서 드릴게요."말은 툭 쏴댔어도, 꼬리 내리며 부모님 챙기는 아내가 예뻐 죽겠더군요. 이 정도에서 멈춰야지, 조금 더 나갔다간 본전도 못 찾습니다. 진작 '부부의 도'를 알았다면 엄청 사랑 받았을 겁니다, 아마. 이쯤에서 칭찬 분위기로 바꾸었습니다.
"와~, 우리 각시 짱!"유자빵 코로 먹은 아내, 알뜰함에 반하다
아내는 그게 뭐라고 먹고 싶은 걸 참았을까. 참 인색한 남편입니다. 뒤늦게 좀 더 사올 걸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아내가 유자빵을 좋아할 줄 생각도 못했습니다. 저도 지난 주말 찾은 거제도에서 거제 처음 알았으니, 이게 아내 입맛에 맞을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나는 먹고 싶어도 유자빵을 향이 좋아 코로만 먹고 있었는데, 당신은 먹고 싶다고 바로 먹었구만."함께 남은 빵을 먹으면서 아내는 아쉬움을 토해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 드리려고 눈에 뻔히 보이는 빵을 향이 진한 탓에 코로만 먹었다는 아내였습니다. 허허~, 참나. 아내의 말에서 자린고비 부자를 떠올렸습니다.
"방 천장에 조기를 매달아 식사 때마다 조기 한 번 보고, 밥 한 술 먹고, 또 보고 밥 한 숟가락 먹으니 반찬 걱정이 없다."그러고 보니, 자린고비는 눈으로 조기를 먹었고, 아내는 코로 유자 빵을 먹은 셈입니다. 주문해서 먹으면 될 것을…. 역시 알뜰살뜰한 아내였습니다.
어쨌든, 빵 속에는 '소'뿐 아니라 '추억'까지 가득합니다. 학창시절 껌 좀 씹고, 다리 흔들었다는 지인들 보면 빵집과 얽힌 '미팅' 에피소드가 많더군요. 여기서 연애와 먹을거리(빵)의 상관관계가 엿보였습니다. 이는 아무래도 달달한 연애를 꿈꾸기 때문 아닐까, 싶네요. 이로 보면, 저도 참 멋대가리 없는 남편입니다.
남편들의 현명한 명절나기 준비가 필요할 때요즘 추세더군요. 지역마다 그 지역을 알리는 특색 있는 빵이 하나씩 있는 거. 예를 들면, 경주 '황남빵', 통영 '꿀빵' 안흥 '찐빵', 설악산 '단풍빵', 진해 '벚꽃빵' 등…. 빵이 지역 알리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거죠. 이는 지역과 함께하는 경제 공동체 정신이 깃든 것 같아 아주 대환영입니다.
거제도도 이 대열에 합류했더군요. 이름 하여, 거제 '햇살 긴 유자빵'. 특이한 건, 그냥 '유자빵'이라 부르면 될 텐데 '햇살 긴'이란 수식어를 붙였더군요. 왜 그랬을까? 따뜻한 남쪽 거제도의 해풍 속 긴 햇살을 마음껏 받은 유자로 만든 빵임을 강조하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유자빵을 출시하는 거제농산물수출영농조합법인의 남기봉 대표는 "거제시의 마을 활력화 사업으로 개발한 '거제 햇살 긴 유자빵'은 거제산 유자를 원료로 향긋한 향과 부드러운 카스테라의 식감이 일품이란 평가가 많다"고 자랑스러워하더군요. 하여튼, 지역만의 특색이 강조되는 산업들이 많이 개발되길 바랍니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하겠습니다. 다음 주, 민족의 대명절 '설날'입니다. 조상께 차례도 지내고, 부모 형제 얼굴도 봐야합니다. 이 때 필수적인 게 음식이지요. 하여, 아내들의 명절증후군 하소연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내도 살고, 집안도 사는 그런 명절나기 비법을 고민해야 하겠지요. 남편들의 현명한 명절나기 준비가 필요할 때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