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말 스페인 집권 정당인 국민당(PP)은 실질적으로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새 '낙태 금지 법안'을 상정했다.
 지난해 말 스페인 집권 정당인 국민당(PP)은 실질적으로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새 '낙태 금지 법안'을 상정했다.
ⓒ sxc

관련사진보기


스페인이 '낙태 금지 법안'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 23일(현지시각) 문화와 교육, 예술 등 각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 1150명은 '여성의 자유'라는 타이틀로 '낙태 금지 법안'에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제출했다.

지난해 말 집권 정당인 국민당(PP)은 실질적으로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새 '낙태 금지 법안'을 상정했다. 법안 상정 소식이 전해진 이후 스페인 여성들은 두 명 이상 모이면 언제 어디서나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3년 전 스페인에선 대폭 완화된 '낙태 허용 법안'이 통과됐었다. 2009년 집권당인 사회당(PSOE)은 "여성들이 스스로 어머니가 되고, 안 되고를 결정하는 데 법이 잣대를 댈 수 없다"며 "여성들에게 전면적으로 낙태 권리를 주겠다"고 밝혔다.

이는 '임신 14주 안에는 여성의 결정에 의해 자유롭게 낙태할 수 있으며, 미성년자라도 부모의 동의 없이 낙태할 수 있다'는 기존 낙태법에 비해 상당히 완화된 것이었다. 당시 낙태에 찬성하는 이들은 환호를, 종교계 등 낙태를 반대하는 단체들은 우려를 표했다.

사회적으로 많은 진통을 겪었지만, 2010년 법안은 통과됐고,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국민당은 법안 통과 이후에 헌법재판소에 법안에 대한 항소를 제출했고, 아직 그 판결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그 사이 집권 정당이 바뀌었고 이에 따라 지난해 말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이 정식으로 상정된 것이다.

완화 3년 만에 낙태 금지법 상정한 스페인 정부

불과 3년 만에 정반대의 법안이 상정되면서, 정부에 대한 스페인 국민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당이 이번에 상정한 낙태 금지 법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새로 상정된 낙태관련 법안에 의하면, 낙태가 허용되는 범위는 두 경우로 제한된다. 하나는 성폭력에 의한 임신인 경우 12주 내에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산부의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위험이 있을 시 의사 두 명의 소견과 함께 22주 내에 허용하는 것이다. 미성년자가 임신했을 경우 낙태를 위해서는 부모의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조항도 다시 부활했다. 또 태아 기형의 경우, 어떠한 경우라도 낙태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법안에 반대하는 단체와 개인들은 이 법안이 1985년으로 회귀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오히려 그 때보다도 훨씬 규제가 강화돼 사실상 낙태를 범죄로 보는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2011년 기준 스페인 낙태 사례 11만8359건 중 89.6%가 14주 전 낙태라며 현실적으로 지금 스페인의 상황에 맞지 않는 법률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보다 합리적인 논의를 통한 법안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낙태 금지 법안에 전반적으로 반대하는 스페인 분위기와 달리, 프랑스에선 최근 낙태법 완화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 시위에선 스페인의 낙태 반대 법안을 반기고 지지하는 구호가 나오기도 했다. 특히 시위 참여자들은 스페인 낙태 반대 법안이 유럽 낙태법을 재고하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이 때문에 두 나라의 전혀 다른 낙태법 행보를 조명하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어차피 정권이 바뀌면 또 법이 바뀌지 않겠냐?"

이번 낙태 금지 법안에 대해 여성학 전문서점에서 일하는 로시오는 "낙태를 좋아서 하는 여성은 없다, 그만큼 자기결정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를 법적으로 더 엄격히 규제한다고 하여 도덕적 판단의 수준이 높아지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라고 말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현재 임신 4개월이 된 수사나 역시 "낙태문제는 찬성과 반대 이분법으로 규정될 부분은 아니다, 수많은 이유와 문제와 예외 상황이라는 것이 있다"면서 "단지 어머니가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본인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라고 피력했다. 하지만 "어차피 정권이 바뀌면 또 법이 바뀌지 않겠냐?"는 그의 말에선 정부에 대한 불신이 느껴졌다.

스페인 정부는 새 법안을 상정한 이유에 대해 "지금까지 항상 여성의 결정에만 맡겨졌던,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생명과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며 임산부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누군가의 권리를 어떻게, 어떤 절차를 통해 결정할 것인지, 권리와 의무 안에서 적합한 잣대를 찾고 만들어 내는 일이 언제나 그렇듯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덩달아 바뀌는 연례행사가 되어선 안 된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한 번쯤은 더 깊이 고민하고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정책을 이끌어갔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한동안 스페인은 '낙태'란 진통 속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태그:#낙태법, #스페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흙, 예술치료, 스페인 문화&언어, 글쓰기로 삶의 형태를 만들어갑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