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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cc 경차 모닝
 1000cc 경차 모닝
ⓒ 최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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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앉았다고, 내가 앉을 거야~!"

한국전쟁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이날도 조수석에 서로 앉겠다고 100m 앞에서 전력 질주한 아이 셋. 그 중 큰애가 먼저 조수석 쪽 문을 열어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둘째와 막내가 자기가 앉을 차례라며 문을 잡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동차 문짝이 부서지도록 아웅다웅 하는 아이들. 모두가 아빠인 나를 무척 사랑하는 것일까? 엄마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서로 내 옆에 앉겠다니, 고맙다고 해야 할지 참. 나도 고함을 쳤다.

"오늘은 해찬이가 먼저다! 나중에 바꿔줄게."

나와 키가 같은 중학교 1학년 큰애 해찬이 승리. 해찬이한테 자리를 빼긴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인 둘째와 막내는 짜증 난 얼굴로 뒷좌석에 앉는다. 그마저 엄마를 둘 가운데 앉히고도 뾰로통한 막내가 형이 앉은 조수석을 발로 찬다.

"의자 앞으로 땡기라고~ 비좁다고~."

우리 가족 5명이 모두 차에 타고 가족 나들이 장소로 출발했다. 차 안에서도 둘째와 막내가 큰애한테 짜증이다. 결국 조수석에 앉은 큰애가 내게 한마디.

"그러게 우리도 삼촌 타는 차 사요. 아님 놀러갈 때 빌려요. 네에~?"

낚시 좋아하는, 혼자 사는 동생은 레저 승용차(RV)인 쏘렌토를 몰고 다닌다. 우리 가족이 탄 차에 비해 30~40%가 크다. 우리 가족이 탄 차는 경승용차인 모닝이다. 나와 같거나 엄마와 견줘 손색없는 아이들 덩치가 모닝을 더 비좁게 만든다.

"그래도 200cc 더 크잖아~."

나는 한 달에 많아야 3~4번 정도인 가족 나들이를 위해 소형은 물론이고 중형 승용차를 살 이유가 없었다. 경남 진주의 집에서 직장이 있는 산청까지 혼자 출퇴근하는 내겐 유지비가 적게 드는 차가 제일이었다. 더구나 이 차를 살 당시에는 가격도 더 싼 800cc 경차를 사려고 했다. 그런데도 무려(?) 1000cc나 되는 경차 모닝을 샀다. 200cc 차이가 얼마나 될까 싶지만 내게는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

"사람 살려요!"... 내 차 뒷자리에서 여자의 비명이?

지금으로부터 몇 해 전의 일이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여기 저를 강제로 끌고 가요~!"

나는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급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짧은 곱슬머리에 붉은 입술, 짙은 화장을 한 아가씨 같은 아줌마가 내 차 뒷좌석에 앉아 차 유리를 내리고 소리치고 있었다.

급하게 길 오른편에 차를 세웠다.

"당신 누구야? 당신 누구야~ 응?!"

나는 얼굴이 뻘게지도록 연거푸 두 번, 난생 처음 보는 여자에게 소리 질렀다. 그때 경찰 세 명이 후다닥 뛰어와 내 차를 둘러쌌다.

장진 감독의 영화 <바르게 살자>(2007) 한 장면
 장진 감독의 영화 <바르게 살자>(2007) 한 장면
ⓒ 필름있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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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여느 때처럼 직장 동료 여직원과 함께 업무 차량인 황금색 마티즈를 끌고 읍내로 나갔다. 나는 군청에서 볼일을 보고, 농협에 들어간 여직원을 기다리며 근처에서 차를 세웠다. 차를 세우자마자 뒤쪽 문이 열리더니 "빨리요~" 한다. 웬일로 조수석에 안 타고 뒷자리에 앉나 싶었다. 퇴근을 앞둔 시간이라 급하게 회사로 차를 몰았다. 불과 200미터쯤 갔을까. 마침 경찰들이 교통 단속 중인 곳을 지날 때, 내 뒤에서 갑자기 고함이 들린 것이다.

"살려주세요! 저, 저, 저 사람이 나를 납치해요!"

겁에 잔뜩 질린 여자는 부들부들 떨면서, 내 차를 에워싼 경찰들에게 사정했다. 나는 졸지에 납치범이 됐다. 경찰은 나를 차에서 내리게 하고는 신분증을 요구했다. 아가씨도 차에서 내려 경찰에게 연신 내가 자기를 차로 납치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나는 저 아가씨를 모른다고,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차, 아니 우리 회사 차에 타서 난리라고 설명했다. 경찰들은 내 험상궂은 얼굴과 무척이나 애처롭게 떨며 애원하는 여자를 번갈아 봤다.

연비 좋고 주차 쉬운 '내 사랑'... 경차는 죄가 없다

그때 마침 휴대전화가 울렸다. 같이 업무를 보러 나온 여직원의 전화였다. 전화를 그대로 내 옆에 있는 경찰에게 건넸다. 나를 기다리다 지쳐 전화한 여직원 덕분에 납치범이라는 오해는 풀렸다.

그 여자는 은행 근처에 차(茶) 배달을 왔다가 다방 배달용 차인 줄 알고 내 차를 탔고, 나는 그 사람이 동료 여직원인 줄 알고 타자마자 그냥 운전한 것이다. 다방에서 배달용으로 사용하는 차들이 경차 일색이니 오해를 살 만했다. 하지만 경차가 무슨 죄인가? 연료 적게 먹고 주차 쉬워 업무 보는 데 그만인데. 경차는 다방에서는 배달용으로, 회사에서는 업무용으로 애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 해 말, 나는 우리 가족의 첫 차를 뽑았다. 다만 마티즈에 대한 안 좋은 기억(?) 덕분에, 같은 경차지만 좀 더 큰 모닝으로. 내 차는 더구나 가스차(LPI)에 수동기어다. 공인연비는 리터당 16킬로미터. 집에서 직장까지 왕복 70여 킬로미터를 다니는 내가 출퇴근 한 달 기름 값(가스비)으로 쓰는 돈은 13만 원 정도다. 1리터에 1060원 정도하는 가스를 30리터 가득 채워도 3만 원 겨우 넘는다.

장거리 가족 나들이 때는 동생 차를 빌린다. 휘발유보다 더 싸다는 경유를 넣는 동생 차를 빌려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면 가격 칸의 숫자가 팡팡 올라간다. 벌써 내 경차를 가득 채울 만한 기름 값을 넘고도 숫자는 멈추지 않는다. 숫자는 내 눈을 의식하지 않은 채 10만 원을 넘긴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면 내 사랑하는 경차가 더 그립다.

"얘들아, 작다고, 비좁다고 짜증 내지 말고 좀 참으면 안 되겠니? 대신 저녁에 피자와 치킨 쏠게!"


태그:#경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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