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저거 갖고 싶다. 돈 모아서 사야지'라는 말을 많이 하고 다녔다. 뭘 그렇게 많이 가지고 싶은 것인지 좋은 물건만 보면 연신 그 말을 해댔다. 한참을 그러다가 <상처받지 않을 권리>를 읽게 되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나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난 속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처음 이상과 짐멜을 만났다. 그들은 돈이 가진 위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상은 돈이 있다면 자신이 활개 칠 수 있는 날개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돈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만날 수 없다는 두려운 사실이 이상이라는 활시위를 떠나 날 꿰뚫었다. 짐멜은 나와 타자 사이에 돈이 침입해 직접 관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직접 사람과 사물을 만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돈이 없다면 나는 허영심에 가득 찬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람도 만날 수 없고, 사물도 얻을 수 없는 돈에 속박된 사람이었다. 돈이 신으로 여겨지다니, 무서웠다.
자본주의의 위력다음엔 보들레르와 벤야민을 만났다. 그는 돈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돈이 있다면 세상은 매춘부처럼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나도 돈이 있으면 보들레르처럼 느꼈다. 돈을 한 아름 안고 백화점(아케이드)를 누비는 상상은 나의 허영심을 채우기 충분했다. 하지만 벤야민은 나를 깨뜨렸다. 매춘부를 예로 들면서 자본주의의 무서움을 말했다.
파리의 여인들이 산업자본이 만든 제품을 사기위해 매춘을 행하기 시작했고, 매춘으로 번 돈이 다시 산업자본의 손으로 들어가는 그 악순환을 보았을 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뒤에 떠오른 것은 능력 여하에 따라 결혼하는 현대 여성들이었다. 돈, 돈, 돈. 지금은 보들레르의 시대보다 더 매춘이 횡행하고 자본주의가 사랑을 완전히 지배하는 시대라는 것이 피부에 와 닿았다. 나도 이런 사랑을 할 수 밖에 없다니, 오싹했다.
투르니에와 부르디외를 만났을 때는 절정이었다. '아비투스'에 갇혀있다니. 문학과 사학,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면서 넓은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나는 근대에 살면서 전근대적인 사람이었다. 자본주의로 인해 미래를 가능성의 장이라고 여기면서도 불합리한 이 사회의 미래가 여전히 같을 것이라고, 잠재성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본주의로 가득 찬 내 마음에 구멍을 뚫었다.
또한 투르니에와 부르디외는 나를 허영에 가득 찬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옳다. 나는 상류계층의 사람들을 우러르며 그들의 생활을 모방하려 애썼다. 그리고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며 멸시하는 사람이었다. 계속해서 그들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살고 있나?'라고 나에게 질문했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왜 상류계층의 사람들을 우러르고, 왜 유행하는 물건을 사고, 왜 돈을 갈구하는지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질책하지 않았다. 대신 '놀이의 아비투스'를 내게 보여줬다. 허영의 미래가 아니라 함께 현재와 내재적 삶을 살아보자고 손을 내밀었다. 아직 나는 그 손을 잡을 수 없었다.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려면마지막으로 나는 유하와 보드리야르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도 앞의 사람들과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네가 느끼는 자유는 반쪽짜리 자유일 뿐이라고, 넌 이미 산업자본의 노예가 되어버렸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들의 말이 맞았다. 나는 자본주의 속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뭘 만들지도 못하고 고치지도 못한다. 전문화라는 허울좋은 명분아래 나는 사육되고 있었다. 산업자본을 이루는 하나의 부속품이었던 것이다.
보드리야르는 나에게 도구와 상품, 상징, 그리고 기호 중에 어떤 사물의 측면을 고를 것인지 물었다. 지금 나는 대부분이 그렇듯 어떤 것보다 기호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상징을 선택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선뜻 그곳에 손을 내밀지 못했다. 과연 모든 이에게 상징으로 내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아직 자본주의에 매몰되어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만났던 이들을 모두 떠나보냈다. 그들은 내 생각을 열어 자본주의가 낸 상처를 보여줬다. 돈, 돈, 돈. 돈으로 내 생각은 난도질 당해있었다. 곳곳이 미래를 위한 금욕으로 멍들어있었다. 그리고 내 인생을 뒤돌아보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두가 장밋빛 미래를 향해있었다. 순간 나는 멍해졌다. 투르니에의 로빈슨크루소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나도 그처럼 '놀이의 아비투스'를 가지고 싶어졌다. 이제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사는 것이다. 반쪽짜리 소비의 자유가 아닌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 http://picturewriter.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