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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판화박물관은 어떤 곳인가?  

고판화박물관
 고판화박물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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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판화박물관은 고판화 자료를 수집․보관하고 전시하며 연구․교육하는 판화 전문 박물관이다. 고판화는 말 그대로 오래된 옛 판화다. 고판화박물관의 소장품은 목판 원판 1,800점, 고판화를 찍은 판화 작품 300점, 목판본 서적 200점, 판화와 관련된 자료 200점 등 모두 3,500점이나 된다. 이들 소장품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중국, 티베트, 몽골 등지에서 수집된 것이다. 고판화박물관은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에 명주사와 함께 있다.

고판화박물관은 명주사 주지로 박물관 교육학을 공부한 한선학 관장이 2004년 세웠다. 개관 기념전으로 2004년 10월부터 12월까지 '한국 고판화의 세계. 나무, 붓, 칼, 종이의 만남'을 열었다. 그 후 '중국 고판화의 세계. 판화의 원류를 찾아', '티벳 몽골 고판화의 세계', '일본 고판화의 세계. 불교 판화, 삽화 판화, 풍속 판화'전을 열었다. 2009년부터는 연화(年畵) 또는 세화(歲畵) 형식으로 간지(干支) 관련 전시회를 열었고, 고판화 축제를 4회나 열었다.

판화로 보는 아시아 말의 세계
 판화로 보는 아시아 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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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26일부터는 '판화로 보는 아시아 말의 세계' 전시회를 열고 있다. 개막실 날 이곳을 찾으니 한선학 관장이 직접 전시내용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는 목판 원판 40점, 인출 판화 30점, 판화 관련 자료 및 서책 40점 등 100점의 콘텐츠가 전시되고 있다. 한 관장에 의하면 말은 행복의 전령사로, 동양 삼국의 풍속 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의 소재가 되어 왔다. 특히 올해는 갑오년 청마의 해여서 이러한 주제를 선택했다고 한다.        

말의 해에 만나는 말 판화

선화복수 목판
 선화복수 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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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판화 중 아무래도 채색판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화려하게 치장한 말이 선화복수(善火福水)라는 복주머니를 들고 내려온다. 중국 산서지방의 대표적인 목판으로, 섣달 그믐날 조왕신의 사자로 이 세상에 내려와 선과 복이 가득한 불(火)과 물(水)을 내려준다. 일반적으로 조왕신은 부엌의 불을 담당하는 신으로 가운(家運)의 융성을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조왕신을 그린 목판도 있다. 일산(日傘)을 쓴 조왕신이 말을 타고 내려온다. 동주(東廚), 사명(司命), 복(福)이라는 글씨를 통해, 부엌을 주관하는 신이 인간에게 복을 내려주기 위해 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나중에 이 목판으로 직접 판화를 찍어보기도 했다.

군마도 세화
 군마도 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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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일직사자와 월직사자 판화도 눈에 띈다. 이것은 청나라 후기 목판을 찍은 그림이다. 진공갑마(進貢甲馬)라고 쓰인 판화, 염라대왕의 모습을 표현한 판화도 인상적이다. 진공갑마는 최고의 말을 진상해 바친다는 뜻이고, 염라대왕은 망자를 천당으로 보낼지 지옥으로 보낼지를 심판하는 왕이다.

중국 명나라 때 신년을 맞아 복을 기원하면서 내린 군마도(群馬圖) 세화(歲畵)도 전시되고 있다. 이 세화의 경우 원본인 목판과 판화가 나란히 걸려있다. 판화를 보니 말을 탄 채 칼과 창을 들고 달리는 무사, 이를 따라가는 풍물패 등이 보인다. 다른 그림에 비해 역동성이 느껴진다.

호쿠사이의 말 판화
 호쿠사이의 말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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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나온 목판화로는 <삼국지>, <석가도> 등이 눈에 띈다. 이들은 책으로 되어 있어 삽화가 굉장히 많다. <삼국지> 삽화 중 '관우오관파도(關羽五關破圖)'는 채색판화로 따로 전시되고 있다. 관우가 적토마를 타고 다섯 개 성문을 돌파해 조조와 만나 비단선물을 받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석가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다.
 
일본의 판화 중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우키요에(浮世繪)다.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1760-1849)의 부악 36경(富嶽三十六景) 중 13번째 그림 '스미다가와 세키야 마을(隅田川関屋の里)'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그림을 보니 삿갓을 쓰고 칼을 찬 세 명의 사무라이가 말을 타고 에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길가의 소나무 사이로 후지산이 작게 보인다. 

히로시게의 말 판화
 히로시게의 말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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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廣重: 1797-1858)의 동해도 53차(東海道 五十三次) 숙박 시리즈 중 '미야(宮)'도 전시되어 있다. 부제를 보니 붉은 말의 축제(赤馬之祭)다. 두 무리의 사람들이 말을 앞세우고 뭔가 경주를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말 그림이다. 그 외 마경(馬經)이 있다. 마경은 말 그림의 경전이라는 뜻으로, 말의 다양한 모습을 32가지로 표현했다. 그리고 중국 청나라 화상석(畵像石) 탁본 중 말 그림도 보인다. 화상석은 묘의 둘레석에 표현된 조각을 말한다.  

티베트의 목판화 룽따(風馬) 이야기

이곳에는 또한 티베트에서 만든 목판화 룽따도 20여점 있다. 룽따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바람의 말이 된다. 바람이 많은 티베트 고원에 사는 사람들은, 바람을 신의 전령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전령이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소식을 전하려면 말이 필요했다. 그 말은 천상과 지상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날개 달린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룽따의 말은 천마(天馬)다.

목판화 룽따
 목판화 룽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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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있는 목판화 룽따를 보면 중앙에 말이 있고 그 위 말안장에 불꽃이 실려 있다. 여기서 불꽃은 빛과 영혼을 의미한다. 불꽃 안에는 8개의 연꽃잎이 있고, 그 안에 기원 또는 벽사를 뜻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므로 룽따 다르촉은 인간의 소망 불꽃을 말에 실려 하늘나라로 보내는 의미가 있다. 다르촉은 바람의 말을 그려 넣은 깃발을 말한다.

티베트 사람들이 룽따 깃발을 만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가 속계와 선계를 구분 짓고 또 연결하는 장소에 설치한 이정표였다. 그러므로 룽따가 있는 곳은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다. 둘째는 여기에 민간신앙이 연결되어 벽사(辟邪)의 의미가 추가되었다. 그리고 극락이나 내세로 가기를 원하는 기원이 더해져 룽따는 소원을 말하고 복을 비는 부적 또는 그림으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목판
 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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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전통판화학교에서 목판체험을 할 때 이 룽따 목판을 찍어 타르초를 만든다. 타르초는 각자 가지고 가 집에 걸 수도 있고, 이곳 명주사 탑에 타르초를 걸어 소원성취를 기원할 수도 있다. 실제로 4월 30일까지 계속되는 전시기간 동안 여러 번 룽따 타르초 달기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룽따 주변에는 불교적인 상징, 이승에 사는 동물 문양이 그려져 있고, 티베트어로 글귀가 빽빽하게 쓰여 있다. 티베트를 몰라 내용을 알 수 없는 게 안타깝다.

전통판화학교와 명주사

나는 박물관에서 이제 목판 원본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본다. 그런데 목판의 문양과 글씨의 좌우 방향이 반대로 새겨져 있어 눈에 금방 들어오지 않는다. 또 판을 찍는 과정에서 검은 잉크가 여러 번 칠해져 목판이 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목판을 눈여겨봐야만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판화와 탁본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들 둘은 엄연히 다르다.

한선학 관장의 지도로 목판 체험하기
 한선학 관장의 지도로 목판 체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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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는 우선 다량 생산을 위해 인위적으로 목판을 만든다. 그리고 인출용 목판은 처음부터 좌우가 바뀌어 판각된다. 이에 비해 탁본은 기존에 존재하는 비석이나 조각을 좀 더 분명하게 보기 위해 소량만 찍어낸다. 그리고 탁본을 통해 원판을 똑같이 복제해 내는 것이다. 이곳 박물관에 있는 목판 원판은 책장 형태의 선반에 세워 전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펼쳐져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내용을 알 수 없다. 

박물관을 방문한 사람은 이곳 박물관 체험장이나 전통판화학교에서 판화체험을 할 수 있다. 또 판화학교에서 진행하는 좀 더 전문적인 체험에 참가할 수도 있다. 체험은 세 가지인데, 1일 코스, 1박2일 코스, 2박3일 코스가 있다. 이 과정에 참가하는 수강생은 목판제작, 전통책 만들기, 능화판 문양 찍기 등 체험을 할 수 있다. 나는 박물관 옆에 있는 전통판화학교 건물에 가서 판화체험을 하고 점심공양을 함께 한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명주사
 명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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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화학교를 나와서는 잠시 명주사를 둘러본다. 명주사 역시 여늬 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민가 형식의 절집에 목조 부처님을 주존으로 모셨다. 탱화나 마니차로 보아 티베트 불교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명주사는 외형적인 면에서 북방불교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그것은 한 관장의 삶의 역정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취향일 수도 있다. 절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새겨진 '걸림 없는 삶' 석판이 그의 인생관을 보여준다. '잡보장경'에 나오는 문구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같이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태그:#고판화박물관, #한선학 관장, #말 판화, #룽따, #우키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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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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