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모스크는 내게 나쁜 기억을 남겨 주었다. 이집트에서, 무슬림들은 달갑지 않은 친절을 베풀며 '박시시'란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다. 사원 입구에서 덧신을 파는 정도는 그래도 공식적인(?) 바가지에 속한다. 모스크에 예의를 갖추는 셈치고 대가를 지불해도 좋지만, 그마저 아깝다면 신발을 벗어 들고 다니면 그만이다.
이집트의 이븐 틀룬 모스크에서는 호되게 당했다. 책상까지 버젓이 놓고 앉아 돈을 받으니, 입장료를 내라는 건줄 알고 순순히 응했다. 하지만 무료입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무척 불쾌했었다.
그 기억을 바꿔줄 기회가 인도에서 찾아왔다. 입구에서 덧신을 팔거나, 미나렛에 올라갈 때 신발을 맡아준다는 핑계로 돈을 요구하는 일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타지마할을 건설한 샤 자한의 최후 걸작품인 자마 마스지드의 미나렛에서 올드델리를 한눈에 담고 내려왔을 때였다. 이제 어디로 갈까, 가이드북을 꺼내려 가방을 여는 순간, 저쪽에서부터 새처럼 포르릉 날아온 두 소녀, 가이드북을 건네준다. 앗, 그러고 보니 가방 속에는 가이드북이 없다! 잃어버린 줄도 모른 채 사원을 돌아다녔다.
모스크 안을 기웃기웃 미나렛을 오르락내리락 족히 30분은 걸렸을 텐데, 소녀들은 우리 가족이 나타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 거다. 기다렸다가 가이드북을 찾는 순간에 짠! 하고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추어 나타났다, 마술처럼. 사랑스러운 것들, 가진 거라곤 간식거리 바나나밖에 없어, 사이좋게 갈라 주었다.
인디언들은 중국인처럼 무관심하지도 이집션처럼 황당한 바가지를 씌우지도 않았다. 한 달 동안 돌아다니면서 바라나시나 아그라에서 릭샤왈라(인력거꾼)들과 두세번의 실랑이가 있었을 뿐인데, 그때마다 인디언들이 나타나 도와주었다. 그들은 적당히 간섭하기 좋아하고, 다소 정의롭기도 하다. 자초지종을 듣고 여행자들의 편을 들어주기도 릭샤왈라들을 호통치기도 했다.
여행한 나라들에 바가지 별점을 매겨 본다면, 눈 감고 다녀도 코 베어갈 염려 전혀 없는 일본은 별 다섯 개 중 0개, 잔돈 없다고 우기기 둘째가라면 서러울 베트남은 별 네 개, 잔돈 있다고 큰소리 뻥뻥 쳤다가도 택시에서 내릴 때면 길 막혔다는 핑계로 꿀꺽 삼켜버리는 이집트는 별 다섯 개 중 여섯 개도 모자랄 판.
그렇다면 인도는......한 개. 하지만 우리 가족이 돌아다닌 인도는 그 넓은 땅의 반도 안 되니 감안한다고 해도 한 개 반이나 두 개 정도. (이건 순전히 내 경험에 의존한 개인적인 평가이긴 하다.) 또 그 이상이 된다 해도 친절한 인디언들이 나서서 도와주는 걸로 상쇄될 테니, 세 개는 넘지 못할 듯싶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행의 재미는 바가지 별점과 꼭 반비례하지는 않는다. 바가지 별점과 스트레스는 비례하겠지만, 바가지에 적응해 가는 과정과 극복은 때로 여행의 묘미를 더해 준다. 또 바가지는 바가지일 뿐 여행의 전부는 아니다. 바가지 때문에 시불시불대며 여행을 망치는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
나 역시 모스크에 대한 인상이 어린 두 소녀에 의해 바뀌지 않았나. 모스크하면 터무니없는 바가지와 비닐 덧신만 떠올랐던 기억, 이제 종달새처럼 날아오던 두 소녀의 기억으로, 덮어쓰기 할까요? 예. 클릭.
덧붙이는 글 | 2013년 1월 한달 동안 인도를 여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