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행운으로 시작부터 여행이 즐거워지다오랫동안 꿈꿔왔던 스페인이었다. 드디어 만나러 간다. 알함브라 궁전과 가우디를.
가슴이 설렌다. 지난 여름 딸이 얼리버드 프로모션으로 나온 항공권을 알려줘서 바로 예매하고 기다렸다. 그것이 6월 초였다. 지난번 인도 여행처럼 아무런 정보도 없이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갈에 대한 여행기를 구해서 읽었다. 영화도 여러편 구해서 보았다. 나름대로 각 나라에 대한 정보를 틈틈이 준비를 해가며 기다려온 나날이었다.
유럽은 정보도 많고 여행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을 테니 크게 준비할 게 있겠냐며 딸이나 나나 느긋하게 지내다가 막상 여행 한 달을 남기고 여행일정과 동선을 짜려 했더니 쉽지가 않았다. 출국일이 가까워지자 살짝 불안해졌다. 더욱이 모로코에 대한 가이드북은 한국어로 출판된 것이 없었다. 블로그에 나와 있는 것이 전부였다. 영문판 론리플래닛이 있지만, 주변 사람들은 5일-6일 정도의 일정때문에 론리플래닛까지 살 필요는 없다고 했다.
겨우 준비한 것이 입국하는 도시 마드리드에서 묵을 숙소와 꼭 보고 와야 할 관광지, 마드리드에서 포르투, 그라나다에서 바르셀로나에서까지의 저가항공 예약과 인원 제한이 있다는 알함브라 궁전 입장권 예매가 다였다. 유럽이니까 시스템도 잘돼 있고 숙소도 좋으니까 걱정없겠지 했다.
여행 당일인 1월 7일, 비행기 출발 3시간 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딸은 너무 일찍 도착했다며 투덜댔다. 3시간이나 뭐 할 거냐며. 난 딸에게 체크인이 일찍 되면 짐 부치고 편하게 놀자며 항공사를 찾아 체크인을 하려는데 직원이 물었다.
"지금 일찍 오신 몇 분에게만 진행하는 프로모션이 있는데요. 저렴하게 비즈니스석으로 업그레이드해드리고 있는데 하실 생각 있으세요?" 난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터라 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다 가격을 물었다.
"얼만데요?""1인당 30만원이요. 정상가로 비즈니스석 구입하실려면 이런 가격에 살 수 없어요. 좋은 기회예요.""이코노미석과 차이가 많이 나나요?""엄청 다르죠"잠시 고민했다. 두명이면 60만원인데... 여행 시작 전부터 오버하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지만 좀 있다가 "주세요" 했다. '언제 비즈니스석을 타볼 수 있으랴?' 질렀다. 옆에서 딸은 살짝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딴데서 아끼면 되지'
시간이 되어 탑승했다. 들어가는 문도 이코노미석과 다르고 좌석도 넓었다. 발을 뻗어도 앞 의자에 닿지 않았다. 심지어 담요도 두꺼웠다. 마치 이불처럼. 좌석 팔걸이 뒤 박스에 물 한병, 기내용 양말, 귀마개, 안대 등이 담겨 있었다. 의자에도 버튼이 많이 달려 있었다. 그림대로 눌러봤다. 발판이 올라가고, 의자는 거의 -자로 펴져 침대처럼 되었다. 안락했다. 옆좌석에 있는 사람은 벌써 누워서 편안히 자고 있었다.
앉자마자 웰컴 음료를 받았다. 와인도 주문했다. 각각 다른 와인을 시켜서 맛을 보았다. 둘다 상큼하고 맛있었다. 와인을 마시며 발을 뻗어 인증샷을 찍었다. 무엇보다 환상적인 건 기내식이 나올 때였다. 전채요리, 메인요리, 후식이 각각 따로 나왔다. 도시락 하나에 담겨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음료와 주류도 다양했다. 우리 둘은 촌스러울만큼 좋아하면서 사진을 찍는 등 맘껏 호사를 누렸다.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라 여기며. 기분은 계속 업되었다. 그렇게 10시간은 짧은 듯 흘러갔다.
한참 사진 찍으며 즐거워하던 딸이 갑자기 진지하게 말했다. 여행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여행이나 다니고 여유있게 살래"라고 말했던 딸이었다. 말이 달라졌다. "엄마 돈 벌어야 할 것 같아." 비즈니스석 하나로 딸의 인생관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경유지인 뮌헨에서 환승했을 때는 이코노미석이었다. 기내식으로는 파스타 도시락이 하나 나왔는데 짜서 먹을 수가 없었다. 한두 젓가락 뜨다가 너무 짜서 남겼다. 비즈니스석의 후폭풍이 너무 컸다. 좌석 간격이 좁은 데다 난 안쪽에 앉았던지라 통로쪽에 앉은 남자가 자고 있어서 화장실 간다고 깨우기가 난감했다. 결국 난 화장실 가기를 포기하고 그냥 목적지까지 갔다.
마드리드 공항에 내렸다. 준비해간 정보로는 아토차역에 내려서 전철로 Tirso de Morina 역까지 가는 거였다. 그런데 짐 찾느라 시간이 많이 흘러 전철이 끊어졌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아토차역까지 가는 공항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는 시벨레스 광장에 내렸다. 버스 기사에게 물었더니 길 건너가서 10번 버스를 타면 된다고 했다. 이곳저곳 봐도 10번 버스는 보이지 않아 다시 물어보았다. 영어는 안 통하고 스페인어로 손짓까지 해가며 가르쳐주지만, 알아듣지 못했다. 답답하고 애타는 가운데 시간은 점점 흘러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딸이 버스 노선도를 훑어보고 지도를 살펴봤지만 별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시간만 흘러갔다. 우리가 늦은 밤에도 택시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했던 이유는 대중교통을 익혀놓아야 여행이 자유로울 뿐더러, 여자 둘이 늦은 밤에 택시를 타는 것은 불안해서였다. 치안이 안전하다고 할 지라도 내가 확인한 안전은 아니니까.
그러나 지친 우리는 결국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다. 택시는 2.9유로가 기본요금이었는데 8.4유로가 나왔다. 거기에 3유로의 추가요금을 더 받았는데 스페인어로 말해서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냥 내렸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주말 10시 이후에는 추가요금을 더 받는다고 한다.)
Tirso de Morina 역에서 내려 숙소를 찾는데 보이질 않는다. 여러 갈래길에 골목길이 많아 이리저리 다녀봐도 숙소 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도 발음이 달라 잘 못 알아들어선지 모른단다. 지치고 멘탈 붕괴까지. 딸은 조급한 마음에 데이터로밍을 해서 지도를 찾는다. 시간이 많이 걸리자 답답해하며 지도를 다운받았다. 로밍하는 동안 나는 눈앞에 있는 바에 들어가서 숙소를 물었다. 다행히 숙소를 아는 사람이 있었고 밖으로 나와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동시에 딸도 위치를 찾았다고 외쳤다.
알고 보니 바로 지하철역 근처에 두고 못찾은 것이다. 딸은 폰 로밍비를 찾아보더니 경악을 한다. 5분에 5만원...
우린 왜 이런 미술교육을 못 받았을까?다음날 컨디션 조절도 할겸 많은 곳을 돌아보기 보다는 미술관을 자세히 보기로 하고 숙소에서 가까운 프라도미술관을 찾았다. 미술에 대해서 무지하다 해도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프라도 미술관 정도는 관람해야 할 것 같았다. 스페인 가기 전에 미술에 관한 서적을 조금 읽은 것으로 이해가 될리는 없지만 나름 예의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미술관에 입장하니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었다. 대여했더니 한국어 설명이 되는 작품이 표시된 지도를 함께 주었다. 반가운 마음에 책에서 본 작품들을 찾아 해설을 생각해가며 보니 나름 재미있었다. 알고 보는 그림과 모르고 보는 그림은 백지 한 장이 아닌 천지차이였다.
초중고 학창시절의 미술시간하면 떠오르는 것이 수채화, 정물화, 데생이다. 미술시간이 되면 하얀 석고상을 교탁에 올려놓고 그리라거나, 때로는 꽃병에 꽂힌 꽃,혹은 과일 몇개 쟁반에 담아서 정물화를 그리라거나 하는 것이 다였던 것 같다. 보이는 대로 그리라는데 어떻게 그리라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명암은 어떻게 주는 것인지, 비율은 어떻게 재야 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쯤은 학교밖에서 이루어지는 사생대회가 있었는데 대체로 고궁이나 릉으로 가서 건물이나 나무를 그리는 수채화였다. 색채를 어떻게 써야 하는 지도 몰라서 물감에 물을 대중없이 섞었다가 캔트지가 젖어서 찢어지거나, 나무 몇그루 후다닥 그려서 내곤 했었다. 미술시간은 재미가 아닌 고역이었고 그 이후로 미술은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 되어 그림을 봐도 무엇을 봐야 하는지 모르고 살았다.
그런데 스페인은 온통 미술관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미술관 중에 몇 개를 골라서 이번 여행에서 보기로 했는데 그중 하나가 유럽에서도 대표적이라는 프라도 미술관이다. 비싼 돈(14유로-한화 약 2만원 정도)내고 보는 만큼 예비 지식은 가지고 봐야 겠다는 생각에 <스페인미술관산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수많은 작품중에 마음에 와닿는 것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이었다. 이 작품의 원제는 <시녀들>이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펠리페 4세의 가족초상화>라고 불리다가 19세기에 작성된 프라도 미술관 작품집에서 <Las Menias> 즉 <시녀들>이라고 불린 것이 현재의 제목으로 남은 것이다.
그림엔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가운데에 공주가 있고 공주의 양옆으로 시중드는 여자아이 둘이 있고, 어릿광대인 난장이가 있다. 개도 등장하고, 뒤에서 대화하는 두 사람도 보인다. 뒤편 가운데쯤에는 문턱에 한 발을 걸치고 서있는 사람도 있다. 왼쪽에는 한 손엔 붓을 다른 한손엔 파레트를 들고 있는 화가 자신도 그려 넣었다. 뒤편으로 희미하게 왕과 왕비의 모습이 비친 거울도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의 주안점은 이들이 모두 화면밖을 바라보고 있어서 마치 관람객을 보고 있는 듯하다는 점이다. 즉 왕과 왕비의 초상화를 그리다가 잠시 멈추고 모델을 응시하는 순간을 그렸다는 것이다. 벨라스케스를 순간 포착의 대가라고 한다는 말에 충분히 수긍이 간다.
어쩌면 이 그림의 주인공은 왕도 왕비도 공주도 시녀도 아닌 화가 자신을 그리는 이 유쾌한 발상이 참으로 신선하고 놀라왔다. 그림을 모르는 나지만 이 점만큼은 감동이었다. 기막힌 반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그린 왕과 왕비의 초상화는 없다고 한다. 즉 벨라스케스는 처음부터 왕과 왕비를 그리려 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장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해서 그려낸 것, 즉 벨라스케스의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장면이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림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보다가 다리도 아프고 힘들면 곳곳에 마련된 의자에서 쉬었다가 다시 보곤 했다. 딸은 아침으로 먹은 츄로스가 얹혔는지 얼굴이 노래지며 힘들어한다. 비싼 입장료 내고 들어왔는데 바로 나가기는 아쉽고. 가지고 있는 노란 고무줄로 손가락을 동며매고 작은 옷핀으로 우선 손을 땄다. 등을 두드려주고 보온병의 따뜻한 물을 마시게 하고 의자에 앉아 좀 쉬라 했다. 그리고 마저 보고 나오는데 5시간이 걸렸다. 허리는 좀 아팠지만 뿌듯했다. 완전 프라도 미술관을 정복이라도 한 듯!
이외에도 스페인에는 수많은 미술관이 있었다. 왜 스페인엔 이렇게 미술관이 많은 걸까?
덧붙이는 글 | 2014년 1월 7일부터 29일까지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를 다녀온 모녀의 좌충우돌 여행기를 몇차례에 걸쳐 실을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