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1월 31일) 오전 9시 35분, 20년 전 씨프린스호 유류 누출사고의 악몽이 남아있는 전남 여수 앞바다. 여수산단 원유2부두에서 싱가포르 국적의 16만 톤급 유조선 우이산호가 여수 낙포동 GS칼텍스 원유2부두와 충돌하면서 대형 송유관이 파손돼 기름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여수해경의 중간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날 사고는 유조선이 부두에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무리하게 접안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시설소유 기업인 GS칼텍스 측의 초기 대응 미흡과 사고은폐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사고원인이 명확히 밝혀지고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 선박 접안 시 안전절차 운영 문제 ▲ 송유관 사이에 차단 밸브 설치 ▲ 접안 부두에 접근로만 열 수 있도록 하는 2중 오일펜스 의무화 등의 조치가 바로 그것이다.
덧붙여 사고 발생 후 1시간이 지나도록 지자체와 해경에 신고하지 않은 GS칼텍스의 늑장 신고 경위와 초기 유출량 발표(800리터)를 실제 유출량 16만4000리터에 비해 축소해 발표한 배경 등도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갑작스러운 구토와 두통... 주민 100명 가량 병원 찾아
사고 발생 경위와 시설업체의 대응도 중요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기름방제작업이 4일째 벌어지고 있던 지난 3일, 유출피해가 가장 심각한 여수시 신덕마을에서 해경·여수시 공무원·군인들이 해안가에서 바위와 돌·모래에 들러붙은 기름을 제거하는 '갯닦기 작업'을 하던 중 마을 주민 16명이 갑작스러운 구토 증상과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들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이는 더욱 늘어나 5일 현재 100여 명의 주민들이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한 1월 31일부터 마스크나 보호장비도 없이 기름 제거 작업에 나섰다. 이후 여수시와 여수해경에 의해 지급된 마스크 또한 제기능을 하지 못해 작업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주민들을 포함한 자원봉사자들은 유출된 원유 성분과 위험성을 명확히 알려줄 것과 안전한 보호구 지급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이 흘러나왔는지 공개하고 안전장비 지급해야이에 여수시와 해양수산부 등 관계당국은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아래와 같이 집행해야 한다.
첫째. 이번 사고로 유출된 원유성분과 현재 농도를 빠른 시일 안에 측정·분석해 지역주민들을 포함한 자원봉사자들에게 유출된 화학물질의 종류와 그로 인한 건강 영향을 공개해야 한다.
보통 원유는 1급 발암성 물질인 벤젠과 같은 방향족탄화수소가 포함돼 있다. 그 속에는 헥산·톨루엔·자일렌 등 급성독성·신경독성·생식독성 물질이 고루 들어 있어서 단기간 급성노출로 두통이나 구토 증상이 일어날 수 있다. 또한 PAH(다핵방향족탄화수소)의 경우 피부질환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유출성분에 포함돼 있다고 보도된 '납사'(나프타)다. 납사는 유독성물질 함량이 매우 높고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대한 노출 위험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기름 유출 사고로 발생 가능한 주민들의 건강장애를 막기 위해 여수시와 관계당국은 방제작업에 투입된 주민·자원봉사자 전원에게 방제복과 방독마스크를 신속히 지급해야 한다.
현재 지급되고 있는 방진 마스크나 일반 마스크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방진마스크는 유기용제(시너·솔벤트 등 어떤 물질을 녹일 수 있는 액체상태의 유기화학물질)를 전혀 거르지 못한다. 계속 방진마스크를 쓰게 한다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최소한 반면형 방독마스크가 지급돼 주민과 자원봉사자들이 착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수 기름유출 사고가 원유에 의한 복합누출임을 감안했을 때 방독마스크를 착용할 경우에는 반드시 카트리지를 부착해야 한다. 왜냐하면 카트리지가 유출된 유독성 물질이 호흡기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앞으로 방제작업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를 일이다. 여수 앞바다를 청정해역으로 되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건강과 생명이 등한시 될 수는 없다. 다시 한 번 여수시와 관계당국에 지역주민들의 알 권리 보장과 건강상의 장애를 막기 위한 조치를 하루라도 빨리 진행하기를 간곡히 바란다.
일과건강 '여수 건강과생명을지키는사람들'(준)은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함께 5일 신덕마을 현장에서 누출농도 측정과 방제작업에 투입된 분들의 소변검사를 포함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주민건강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유출농도와 주민들의 건강상태에 대한 분석결과가 나오는 대로 발표할 예정입니다. 본 기사는 '일과건강'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