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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마을 주민들은 두통과 구토 그리고 어지럼증으로 병원에 다녀왔는데 측정기는 반응이 없습니다. 심지어 마이너스 값이 나옵니다.
▲ 불검출 신덕마을 주민들은 두통과 구토 그리고 어지럼증으로 병원에 다녀왔는데 측정기는 반응이 없습니다. 심지어 마이너스 값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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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비는 뭔가요?"
"VOC 측정기입니다."
"VOC가 측정되나요?"
"불검출로 나옵니다."

지난 1일,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전남 여수 기름유출 사고 현장인 신덕마을을 찾았습니다. 윤 장관은 신덕마을에서 '코막음' 사진이 찍혀 구설에 올랐습니다. 같은 날 GS칼텍스 협력업체 직원 두 명은 'VOC(휘발성유기화합물) 측정기'를 메고 신덕마을을 누비며 VOC를 측정했습니다.

반면형 방독마스크를 목에 걸치고 마을 앞 해변을 다니는 두 사람을 붙잡고 측정 결과를 물었습니다. 이들은 처음엔 대답을 피했습니다. 나중에야 '불검출'이라고 답했습니다. 기름 냄새가 심해 신덕마을 주민들이 두통과 구토, 어지럼증으로 병원에 다녀왔는데 측정기는 반응이 없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방제작업에 동원된 사람들 대부분은 방진 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심지어 수건만 두른 사람도 있습니다. 방진 마스크 등은 유기용제를 거르지 못해 방독 마스크와 비교했을 때 성능의 차이가 확연합니다. 이에, GS칼텍스의 답변을 듣고 싶어 5일 전화통화를 시도했습니다. GS칼텍스 홍보팀 박아무개 과장은 "VOC와 관련해서 GS칼텍스가 공식 발표한 내용은 없다"는 간단한 말로 회사 측 견해를 밝혔습니다.

반면형 방독마스크를 목에 걸치고 마을 앞 해변을 쏘다니는 두 사람을 붙잡고 측정결과 물었습니다.
▲ 측정 반면형 방독마스크를 목에 걸치고 마을 앞 해변을 쏘다니는 두 사람을 붙잡고 측정결과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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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마을 주민들은 역한 기름 냄새와 가스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간밤에 한 숨도 못잤는데 VOC 측정기는 묵묵부답입니다.
▲ 신덕마을 신덕마을 주민들은 역한 기름 냄새와 가스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간밤에 한 숨도 못잤는데 VOC 측정기는 묵묵부답입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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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일, 여수 시내도 역한 기름 냄새

지난달 31일 오전, 전남 여수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수분 후, 사고지점 인근인 신덕마을뿐 아니라 구 여수시가지(사고지점에서 약 15Km 떨어짐)도 역겨운 기름 냄새로 뒤덮였습니다. 냄새 맡은 시민들은 인근 주유소에서 기름이 흘렀거나 이웃이 보일러에 기름 넣는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과연, 기름 냄새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일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29년 전 미국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엑손 발데즈'호 기름유출 사고에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다음은 엑손 발데즈호 기름유출 사고 이후 자연환경 변화와 인간의 건강 문제를 집요하게 추적한 리키 오트 박사(Riki Ott, PhD 해양독성학자)가 'GS칼텍스 시프린스호 해양유류오염사고 10주년 국제심포지움' 자료집에 적은 글입니다.

"1992년, 기름 제거 작업에 참여했던 노동자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건강이 쇠약해지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며 나를 찾아왔을 때야 비로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중략) 노동자들은 기름안개를 마시고 난 후 발생한 감기와 비슷한 증상, 호흡기 질환, 두통, 어지럼증, 기타 신경계 질환 등이 화학 중독 증상임을 깨닫지 못했다."

이번 사고를 굳이 '원유유출'이라 칭하지 않고 '기름유출'이라고 표현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번 사고는 원유뿐 아니라 납사도 함께 유출됐습니다. 원유와 납사가 뒤섞여 유출된 점이 다른 사고와 다릅니다. 해경은 원유 69KL, 납사 70KL, 유성혼합물 25KL가 흘렀다고 발표했습니다.

PAHs는 환경에 오래 남고 인체와 생태계에 해로울 정도로 먹이 사슬 내에 축적되며, 신경계 질환과 생식 및 발달 장애, 암, 유전적 영향 등을 유발합니다.
▲ 회의 PAHs는 환경에 오래 남고 인체와 생태계에 해로울 정도로 먹이 사슬 내에 축적되며, 신경계 질환과 생식 및 발달 장애, 암, 유전적 영향 등을 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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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증으로부터 순간적인 피폭을 막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때문에 신덕마을 사람들을 재빨리 대피시키고 사고 현장에 일반인 접근을 막은 뒤 방제 전문 업체와 기관들이 초기 방제를 해야 합니다.
▲ 유증 유증으로부터 순간적인 피폭을 막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때문에 신덕마을 사람들을 재빨리 대피시키고 사고 현장에 일반인 접근을 막은 뒤 방제 전문 업체와 기관들이 초기 방제를 해야 합니다.
ⓒ 황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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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사 속 BTEX, 호흡하면 불행한 일 벌어질 수 있어

원유가 인체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무섭지만 납사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납사는 휘발성이 강합니다. 때문에 납사에 포함된 유독성 물질들이 기체로 변해 공기 중에 쉽게 퍼져나갑니다. 구 여수시가지에서 시민들이 맡은 역한 기름 냄새는 납사에서 발생한 기체상 물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납사에는 BTEX(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크실렌)라는 강한 휘발성 물질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물질로 사람이 사용하는 많은 제품을 만듭니다. 하지만 이 물질들이 사람 호흡기나 피부와 직접 만나면 매우 불행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암이 생길 수 있습니다. 유전자를 변형시키기도 합니다. 납사와 함께 흐른 원유도 문제입니다. 다시 리키오트 박사의 글을 옮깁니다.

"많은 기름 제거 작업 노동자들이 겪은 증상들의 원인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름 수증기뿐만 아니라, 해변 청소에 이용된 압축된 온수가 만들어낸 기름안개와 연무질은 대기 중에 원유 속 유해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 : PAH)를 방출한다.(중략) 노동자들은 호흡기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고 더운 날씨에는 비옷을 벗고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대기 중의 PAH가 폐와 피부에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미국 환경보전청(EPA)은 1995년 원유에서 22종류의 PAH를 발견하고 이 물질들을 '영속적이고 생체 축적적이며 유독한 오염물질'로 규정했습니다. 다시, 리키오트 박사의 글입니다.

"PAH는 환경에 오래 남고 인체와 생태계에 해로울 정도로 먹이 사슬 내에 축적되며, 신경계 질환과 생식 및 발달 장애, 암, 유전적 영향 등을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중략) 걸프전 참전군인 등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발생한 신종 질병 발생 사례를 유독물질로 인한 내성 상실(Toxican-Induced Loss of Tolerance)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엑손 발데즈호 기름 제거작업이나 걸프전과 같이 대량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경우나, 매일 출퇴근길에서처럼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내성상실이란 향수의 향기에도 현기증이 나고 주유소에만 가도 두통을 느끼는 사례들처럼 체내 화학물질 분해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주승용 국회의원이 두통을 호소합니다.
▲ 두통 주승용 국회의원이 두통을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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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마을 주민들 대피 시킬 계획 없었다"

사고 다음날인 1일 오전, 신덕마을에서 만난 김민철(청년회장)씨는 "간밤에 한숨도 못 잤다"며 "역한 기름 냄새와 가스 때문에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유독한 기름 수증기'(이하 '유증'이라 칭합니다)에 피폭되는 상황을 피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때문에 대형 기름유출 사고가 나면 사고 현장 인근 주민들을 대피 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부분은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5일 오후, 주민 대피와 관련해서 여수시 산단지원과 이정남 팀장과 통화했습니다.

그는 통화에서 "주민대피령은 자치단체장이 내린다. 이번 사고로 유출된 기름은 원유와 납사다. 이 물질은 위험물로 분류된다. 독성물질이 유출되거나 누출됐을 때 시장이 주민대피령을 내리게끔 매뉴얼이 마련돼 있다. 독성물질이 아닌 위험물이기 때문에 이번 사고로 신덕마을 주민들 대피시킬 계획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신덕마을 사람들은 밤새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집에 머물렀습니다. 행정기관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대형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발 빠르게 자원봉사 하러 현장에 달려갑니다. 하지만 이는 자신에게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방제작업에 동원된 사람들 대부분은 방진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심지어 수건만 두른 사람도 있습니다.
▲ 마스크 방제작업에 동원된 사람들 대부분은 방진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심지어 수건만 두른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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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증으로부터 순간적인 피폭을 막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때문에 신덕마을 사람들을 재빨리 대피시키고 사고 현장에 일반인 접근을 막은 뒤 방제 전문 업체와 기관들이 초기 방제를 했어야 합니다. 그 후, 자원봉사자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유독물질이 인체에 침투하지 않도록 방독 마스크와 작업복을 지급해야 합니다. 방진 마스크로 될 일이 아닙니다.

자원봉사자들은 지금도 열심히 갯가에서 기름을 닦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기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관계기관과 업체 측에서 방진 마스크와 방진복을 입고 땀 흘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깊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엑손 발데즈 호, #씨프린스호 사고, #호남 사파이어호 사고, #GS칼텍스, #여수 기름유출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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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 커가는 모습이 신기합니다. 애들 자라는 모습 사진에 담아 기사를 씁니다. 훗날 아이들에게 딴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세 아들,아빠와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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