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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받은 김용판 활짝 웃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은폐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밝은표정으로 법원을 나오고 있다.
▲ '무죄' 받은 김용판 활짝 웃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은폐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6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밝은표정으로 법원을 나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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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1심에서 무죄가 나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도 한치 앞을 바라볼 수 없게 됐다.

두 사건은 뿌리가 같은 쌍둥이 사건이다. 이런 사건에서 하나가 무죄가 나왔으니 다른 하나도 보나마나라는 전망이 나오는 게 사실이다. 이런 전망은 특히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는 신중한 편이다.

쌍둥이 사건의 같은 점과 다른 점

두 사건은 모두 지난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 11일 밤 서울 역삼동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오피스텔에서 시작됐다. 수사한 검찰 수사팀도 같고(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1심 재판부도 같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1부). 나란히 같은 날인 지난해 6월 14일 기소됐다. 두 피고인은 국회 청문회에도 같이 섰다.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라도 성격이 다 다르듯이, 두 사건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우선 혐의 자체가 다르다. 하나는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개입 사건을 축소·은폐한 혐의(공직선거법위반, 경찰공무원법위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고, 다른 하나는 국가정보원의 대선·정치개입 혐의(공직선거법위반, 국가정보원법위반)다. 논리적으로 몸통 사건을 축소·은폐한 혐의가 무죄라고 해서 그 몸통 사건까지 당연히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공판 도중 공소장이 변경된 것도 두 사건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다.

김 전 청장 사건에서 검찰은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이 수서경찰서 수사팀에 반환했던 하드디스크에 김하영씨의 노트북에서 발견된 아이디와 닉네임 40개 목록이 없었다고 첫 공소장에 적었다. 하지만 공판 증거조사 과정에서 하드디스크에 담겨있던 것으로 드러나자, 이후 주긴 줬는데 찾기 힘든 상태로 넘겨서 수사를 방해했다고 공소장을 변경했다.

반면 원 전 원장 사건에서는 두차례에 걸친 공소장 변경을 통해 혐의 대상 게시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김용판은 공소사실이 축소된 반면, 원세훈은 계속 강화된 것이다.

이번 판결로 확실해진 한가지

김 전 청장 1심 판결로 확실하게 확인된 것은 재판부가 유죄 판단에 있어서 매우 엄격하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엄격한 증거주의와 무죄추정주의 입장을 취했다. 이범균 부장판사를 비롯한 형사합의 21부는 "수서서 보도자료 발표 시기와 내용이 최선이었는지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다고 해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와 다른 간접사실만으로 피고인에게 (범행) 의도가 있었다거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여러차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입증'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확신을 갖게 검사가 입증을 못했다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헌법이 정한 형사사법절차의 대원칙"이라며 "검사의 논증이 의혹과 추측을 넘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유죄 확신이 드는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게 재판부 결론"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재판부의 입장은 다른 사건 판결에서도 일관되게 확인된다. 형사합의 21부는 지난해 8월 22일 소위 '화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에서도 국가보안법 혐의 부분을 증거 부족으로 무죄 판결했다. 당시에도 재판부는 판결 이유로 "진술 가운데 일부는 객관적 증거와 명백히 모순되고 일관성과 합리성이 없는 진술도 있다"며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합리적 의심 없이 유죄를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힌 바 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작년 8월 1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작년 8월 1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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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초기부터 관여해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 박주민 변호사는 "검찰이 확실한 것을 가져오지 않는 한 재판부는 부담이 적은 쪽을 선택하는 것 같다"면서 "현재 원세훈 공판이 트위터에 막혀서 꼬인 상황인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용판에게는 없지만 원세훈에게는 있는 것

하지만 오히려 재판부의 이런 성향 때문에 원 전 국정원장 재판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김 전 청장 사건과 달리 원 전 원장 사건에는 움직일 수 없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조직의 정점인 국정원장이 내린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과, 조직의 맨 마지막 하부인 심리전단 요원들이 온라인 공간에 남긴 수많은 게시물과 추천·반대 클릭 내역이다. 해석이 다를 뿐, 국정원도 이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증거가 있을 경우 재판부는 단호한 판결을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공교롭게도 원 전 원장 개인 비리 사건도 같은 재판부인 형사합의 21부가 맡았는데, 지난달 22일 징역 2년 실형에 추징금 1억 6275만 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는 반성의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범행을 극구 부인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책임 회피를 위한 변명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 과연 개전의 정이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재판의 검찰 구형은 징역 3년에 추징금 1억6000여만 원이었다.

이번 사건에 깊숙이 개입해온 한 변호사는 "김용판 사건과 원세훈 사건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직접 증거도 부족했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라는 혐의가 입증도 쉽지 않은 법리였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공직선거법 위반은 목적범인데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정도면 충분히 선거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석 가능하고, 현재까지 나온 수많은 게시물 정도면 조직적으로 실행됐다는 증거가 된다"고 말했다.

물러설 곳이 없는 검찰

이번 판결로 검찰은 상처를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원세훈 전 원장마저 무죄가 난다면? 검찰총장과 수사팀장이 날아가면서까지 끌고왔던 수사다. 이제 원 전 원장 사건은 검찰 조직 전체의 명예가 걸린 사건이 됐다.

검찰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이날 오전 검찰은 기존 트위터 계정 2653개를 1100여개로, 게시글(RT 포함) 121만 건을 78만 건으로 축소했다고 밝혔다. 국정원 계정 입증에 난항을 겪고 있던 터라 어느 정도 예정됐던 축소다.

수사팀 관계자는 "트위터 계정 중 좀 다퉈볼 만한 것들도 있었지만, 불필요한 논란의 여지를 안생기게 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버린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용적으로 확실하고 활동이 명확히 눈에 보이는 것들만 추렸다"고 말했다. 전열을 가다듬었다는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쌍둥이 동생은 1심 무죄를 받았지만, 쌍둥이 형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는 10일 다시 공판'준비'기일이다.


#원세훈#김용판#국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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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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