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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일 열린 제3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일 열린 제3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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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에 대한 높임말이 도를 넘고 있다. 정부 인사와 정치인은 대통령에게 극존칭을 사용한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대중매체에서 "대통령께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대통령께서…말씀하셨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도 "대통령께서 말씀하셔야 한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압권은 최근에 있었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해임에 대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이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잠시 전 정홍원 국무총리의 해임 건의를 받으시고 윤진숙 장관을 해임 조치하셨습니다."

과연 국민을 상대로 하는 발언에서, 대통령에 대한 극존칭이 민주주의에 부합할까? 그렇지 않다.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의 유산일 뿐이다.

존칭이라 일컫는 높임 말씨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통상적으로 높임 말씨라고 부르는 형태이다. 나이, 위계, 항렬 등에서 자신보다 상위에 있는 사람에게 사용한다. 중간에 '시' '세' '셔'가 들어간다. "하시었다", "하세요", "하셨다"와 같은 말이다.

다른 하나는 사무적 내지 군대식 말씨이다. 보통 직장이나 병영에서 상급자에게 사용한다. 말의 끝이 '다','까'로 끝난다. "했습니까?" "했습니다"와 같은 말이다. 높임말 사용에는 주의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문장의 주체와 청자의 관계이다. 문장의 주체가 청자보다 낮은 지위이면 높임말을 사용할 수 없고, 반대이면 높임말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바로 압존법(壓尊法)이다 .

전통적 압존법은 과도하게 경직되어 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에 대해 말할 때, "아버지 왔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직장에서 사장에게 부장에 대해 말할 때, "부장님 왔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2011년 국립국어원에서 발표한 '표준언어예절'을 보면, 주체가 청자보다 낮더라도 높임말을 사용하는 어투를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을 과도하게 높이는 것은 예절에 어긋나기 때문에 적절한 구사가 필요하다. 즉 "아버지 오셨습니다", "부장님 오셨습니다" 정도가 적절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오셨습니다" "부장님께서 오셨습니다"와 같은 표현은 지위가 높은 청자에 대한 무례가 된다.

그렇다면 정부 구성원과 정치인은 대통령에게 어떤 어법을 사용해야 할까? 공무원에게 대통령은 직속상관이다. 정치인에게는 최고로 소망하는 지위로서, 그들의 상위에 있는 사람과 다름없다. 따라서 그들끼리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 하셨습니다"처럼 극존칭을 사용하는 것이 표준 화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므로, 국민 개개인이 서로에게 대통령을 언급할 때 당연히 극존칭을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대중매체를 통한 인터뷰, 대국민 브리핑, 성명서, 혹은 대중매체 출연은 상황이 다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②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은 대통령보다 낮은 존재가 아니라, 국가의 주인으로서 대통령의 상위에 있다.

전통적 압존법을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 하였습니다"와 같이 표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적 압존법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이 … 하셨습니다"도 표준어법을 벗어나지 않는다. 국립국어원에서 주체가 청자보다 낮더라도 높임말을 사용하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께서 … 하셨습니다"와 같이, 객체까지 높이는 어법은 국민에 대한 예의를 벗어난 상태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국가(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에게 권력을 완전하게 영구적으로 양도한 상태가 아니다. 부분적으로 일정기간, 권력을 위임한 정치체제이다.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부를 통할하지만, 대통령의 권력은 여전히 국민에게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대통령을 지칭할 때는 전통적 압존법은 아니더라도, 현대적 압존법을 사용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뿐만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인이 국민 앞에서 대통령에게 극존칭을 사용한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②항,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말씨예절, #극존칭, #압존법, #높임말씨, #표준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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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학교 대학원 졸업(정치학박사) 전,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현, [비영리민간단체] 나시민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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