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불을 뗀 뜨끈뜨근한 아궁이 방에서 잠을 자니,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새벽 목탁소리에 살짝 잠이 깨긴 했었지만, 새벽 예불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모든 일정이 자유롭기에 좀더 자기로 선택했지만, 참가해도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았다. 아침에 본 도각사는 어젯밤에 느낀 신비한 모습과는 다르게 웅장하고 경이로웠다.
이른 아침 7시 종소리를 들으며 밥먹으러 간 곳에서는 가지런히 놓여진 콩나물, 무생체, 김치, 파래무침, 버섯볶음, 된장 아웃국, 사과, 배, 밥이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아이들에게 음식을 남기면 안 되는 곳이라며 먹을 만큼만 담으라고 하였다. 하지만 결국 아이들은 김치를 남겼고, 그 몫은 나에게 돌아왔다.
그래도 참가비 4만 원에 1박 2일 머물며 스님과의 대화도 하고 좋은 강의를 듣는 것에 비하며 남은 김치를 좀 더 먹어야 하는 수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도 식사 예절과 음식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채소과 과일로 된 식단의 사찰음식을 먹어보게 하는 것도 좋은 교육이 될 것 같았다.
드디어 기대하던 월출산 산행이 있었다. 사찰에서의 산행은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목표보다는 천천히 걸으며 자연과 대화하며 자신을 성찰하며 걷기를 실천한다. 얼마나 자연스럽고 멋스러운가. 진짜 기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것 같았다.
산으로 바로 이어진 길은 평지여서 걷기가 쉬웠고, 나무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어 나무의 이름을 알 수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나무의 이름을 알려주고 물소리, 새소리를 듣다보니 자연의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길에 떨어진 도토리도 주워보며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연에 젖어들었고, 오감을 깨우는 교육이 저절로 되는 듯 하였다.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은 너무나 아름다웠고 생명력이 넘쳐났다. 길을 오르다 보니 이끼에 대한 설명글이 눈에 들어왔다. 글을 읽으며 하찮은 이끼가 주는 선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절로 시 한구절이 떠올랐다.
재주 많은 이끼 - 공응경딱딱한 바위위에 부드러운 이끼야
넌 어쩜 그렇게 재주가 많니?회색 빛깔을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미술쟁이 이끼야넌 어쩜 그렇게 재주가 많니?딱딱한 곳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마술연금술사 이끼야넌 어쩜 그렇게 재주가 많니?마른곳을 촉촉하게 만들어 주는 꿀광피부쟁이 이끼야넌 어쩜 그렇게 재주가 많니?집없는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살곳을 마련해 주는 건축쟁이 이끼야 넌 어쩜 그렇게 재주가 많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