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이 사라졌다.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2~3%가량의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음에도 그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야권의 압승으로 평가받는 4년 전 지방선거에서 전신인 민주노동당으로 야권연대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야권연대를 논하면서 누구도 진보당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이석기 의원이 연루된 내란음모 사건과 정부의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거치면서 진보당은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됐다.
진보당은 보이지는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정당이다. 지난해 10월 치러진 화성갑 보궐선거에서 홍성규 진보당 후보는 8.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정부의 정당해산심판 청구 전이라는 점과 투표율이 낮은 보궐선거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결코 적은 득표라고 할 수 없다. 진보당을 확실히 지지하는 조직된 표를 확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정희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800명 이상의 후보를 이번 선거에 출마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지난 대선에서 한국사회는 52 대 48, 거의 절반으로 나뉘었다. 거기에 중간지대를 표방하는 '안철수 신당'(새정치신당)이라는 새로운 세력도 등장했다. 승자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승부가 결정된다면, 진보당 후보들이 가져갈 소수의 조직된 표는 누군가에게 절실해질 수 있다.
10일 진보당의 지방선거 전략을 묻기 위해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안동섭 사무총장을 만났다. 안 총장은 오는 17일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소위 RO(혁명조직)의 내란음모 선고를 앞두고 이날부터 이순신 동상 앞에서 1000배를 하며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애초 <오마이뉴스>는 신년 기자회견 이후 이정희 대표 인터뷰를 줄곧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 대표는 건강문제로 대외 활동에 거의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야권의 단결, 반 박근혜 공동투쟁 통해 만들어야" 안 총장은 이 자리에서 "무엇보다 당을 사수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투쟁으로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한다"라며 "그런 점에서 선거를 준비하는 데 과거와 다를 수 있다, 지역별로 정책이나 후보자들의 성과를 부각하는 것보다 박근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국민적 의지를 모아 갈 것"이라고 말했다. 내란음모 재판과 정당해산심판 청구로 인해 직면한 당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선거운동 과정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안 총장은 또 민주당과 새정치신당을 중심으로 거론되는 야권연대와 관련해 "박근혜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와 일방독주 정책에 국민적 분노를 모으기 위해서는 야권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연대에서 진보당이 거론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야권의 단결은 반 박근혜 공동투쟁을 통해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라며 "정권과 새누리당이 (진보당에) 덧씌운 종북프레임에서 (야권이) 벗어나지 않으면 어떤 단결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안 총장은 지난 2010년 민주노동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섰지만 당시 유시민 국민참여당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해 후보단일화를 이뤘다. 이후 2012년 총선에서도 수원 장안 후보로 나섰다가 당시 이찬열 민주통합당 후보와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패한 경험이 있다.
다음은 안 총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헌법재판소에서 정당해산심판 심리가 시작됐고, 곧 이석기 의원 등 내란음모 사건의 선고공판이 예정돼 있다. 진보당은 결과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헌재에서 정당해산심판 공개변론을 하기까지는 (내란음모 재판 결과를) 조금 낙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 대표로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직접 나오는 것을 보고 당을 말살하기 위해 박근혜 정권이 총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내란음모 사건의 재판부가 정치적 외압에서 자유롭게 선고하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변호인단과 여러 정보를 수집해봤는데, 재판결과가 별로 안 좋을 것 같다. 내란음모죄가 인정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법리적으로는 (내란음모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 자명하지만, 최근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이나 김용판 사례처럼 사법부의 흐름이 정치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 재판 준비도 해야 하고, 동시에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재판결과에 따라서 선거 전략도 달라질 수 있는데."지난해 9월 중앙위원회에서 선거기획단을 구성하면서 지방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다 11월 5일 정당해산심판청구가 들어오면서 지방선거 준비를 전면 중단했다. 선거 준비를 하다보면 당력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의 민주주의 말살에 맞서는 투쟁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기조였다. 무엇보다 당을 사수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투쟁으로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과거와 다를 수 있겠다. 지역별로 정책이나 후보자들의 성과를 부각하기보다 박근혜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국민의 의지를 모아 갈 것이다."
-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재 민주당과 새정치신당의 야권연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연대의 한 축을 담당했던 진보정당들은 사실상 배제돼 있는 상태다. 진보당은 야권연대에 대해 어떤 의견인가?"이정희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말한 것처럼, 박근혜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와 일방독주 정책에 국민의 분노를 모으기 위해서는 야권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과거 민주노동당 때부터 일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견해다. 2010년 이후 야권연대는 정치공학적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정치공학적 차원의 야권연대는 예전에도 반대했고 지금도 그렇다. 선거에 닥쳐서 후보단일화 차원으로 연대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야권의 단결은 반 박근혜 공동투쟁을 통해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일차적으로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이 (진보당에) 덧씌운 종북 프레임에서 (야권이) 벗어나지 않으면 어떤 단결도 어려울 것이다."
"800명 이상의 후보 낼 수 있다"
- 진보당 정당지지율은 2~3%가량이다. 화성지역 보궐선거에서도 홍성규 후보가 8%가량을 득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당이 800명 이상의 후보를 내겠다고 선언한 것은 오히려 야권의 단결을 해치고 새누리당에 이익을 주는 행위라는 지적이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이전처럼 후보를 중심으로 한 단일화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지적이 나온다. 800명 이상의 역대 최다 후보를 내겠다는 것은 박근혜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 흐름을 일차적으로 막아내고, 국민들과 저항의 등불을 함께 만들기 위한 실천적 역량의 후보를 최대한 내세우겠다는 뜻이다. 상층에서의 후보 단일화가 아니라 광장에서 공동투쟁을 만들어가야 야권이 승리할 수 있다. 야권이 국정원 대선개입에 맞서는 촛불을 들고 현장에서 한목소리로 함께 행동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 지금 당의 상황에서 800명 이상의 후보를 낼 수 있나?"국가권력이 총동원된 탄압이 진행되고 있어 사실 쉽지 않다. 이 시기에 진보당의 후보를 결의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결정이겠나. 하지만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당을 지켜야 한다는 당원들의 의지가 강하게 형성돼 있어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다양한 후보의 상이 있을 수 있다. 우리 당의 후보들에게는 재정 문제가 가장 크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후보, 직장을 다니는 후보가 나올 수 있다. 젊은 청년후보와 학생후보도 준비 중이다."
- 지금까지 지방선거의 상징적인 목표만을 제시한 것 같다. 실질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선거이기 때문에 당연히 많이 당선되는 게 목표다. 아무래도 노동자와 농민 등 기층의 지지 기반이 있는 곳에서 당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독주를 막아야 하는 선거이기 때문에 정치적 의미가 큰 수도권에서도 전략적으로 한 곳을 (당선 목표로) 잡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가 가장 고민이 된다. 당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투쟁을 형성하는데 후보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 안 사무총장의 경기도지사 출마가 거론되고 있는데 확정됐나?"출마하는 방향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다른 분이 출마 의사를 밝히셔서 다음 주 초에 결정이 될 것 같다."
"평화통일에 도움이 되느냐가 유일한 기준"
- 진보당은 민주노동당 때부터 복지확대를 선거의 주요전략으로 삼아 왔다. 이번 선거의 핵심전략은 무엇인가?"박근혜 정권은 지난 1년 동안 경제민주화와 각종 민생 공약을 스스로 파기했다. 이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약속을 파기한 비민주적 행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이것을 바로 잡지 않으면 민생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민주주의 문제가 민생문제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박근혜 정권의 핵심 카드가 바로 종북몰이다. 정권에 반대하면 곧 종북이 되는 프레임을 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방선거 전략 역시 종북프레임을 깨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민생을 살리는 것도,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도 이 프레임을 깨는 것에서 시작된다. 가장 중요한 고리다. 박근혜 정권의 공약파기로 어려움에 처한 농민과 노동자, 시민이 함께 저항의 전선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래야 그저 종북프레임을 피해가려고만 하는 다른 정당들도 민심에 귀 기울이고 진정한 야권연대로 가는 동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진보당의 의지와 상관없이 종북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북의 인권이나 핵 문제에 견해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어떻게 생각하나?"우리 당은 진정한 평화통일을 해야 한다는 명확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남북문제에 있어 유일한 기조는 평화통일에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다. 다른 게 있을 수 없다. 인권, 핵, 경제 등 (북과 관련한)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평화통일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가지고 판단한다.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고 단지 정치 공세 수준으로 접근해 질문하거나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다 보니 우리가 북과 관련해 어떤 의견도 갖지 않는 것처럼 매도당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표현하면서 통일이 사회적 관심사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이 단순한 레토릭(미사여구) 수준에 그치지 않으려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평화적 통일에 진일보한 프로세스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건축경기나 경제상황이 악화되다 보니까 그것을 해소할 목적으로 통일을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시장의 확장 정도로 '통일은 대박'이라고 한다면 통일의 대상인 북에게 그 진정성이 전달될 수 없다. 그런 표현은 남북 간의 신뢰를 쌓아 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게 필요하다."
- 진보정당이 여러 개로 갈라져 있다. 일각에서는 진보정당의 재구성과 통합을 논의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진보당은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정당 사이의 통합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바닥에서부터 민중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전처럼 상층에서 그림을 그리듯이 재구성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결과적으로 정치세력들 간의 지분 논의로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는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원칙적으로 통합해야 하지만 기층에서 신뢰를 쌓아가는 방식의 통합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