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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 ⓒ 신수영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거나 그것을 돕는 자들이 종북으로 몰리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그것들은 인도적 차원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걸 차단하거나 비방의 모티브로 삼아선 안 된다. 북한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지난 6일(현지시각) 만난 피에트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은 한국 내 '종북' 문제에 대해 이같이 피력했다. 이날 진행된 한 시간여의 단독 인터뷰에서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은 "진보와 보수편 사제들은 서로 대화(소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 북부도시 비첸자(베네토 교구)에서 태어난 파롤린 국무원장은 14세에 신학원에 들어가 25세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일찍부터 그의 탁월함을 눈여겨 봐 온 베네토 교구 주교들은 그를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 보내 교황청 직속 전문 사무관 코스를 밟게 한다. 28세에 교황청 종교 아카데미(Pontificia Accademia Ecclesiatica)의 멤버가 된 그는 30세에 그레고리안의 학위를 따 본격적으로 교황청 외교관으로 활동하게 된다.

그는 나이지리아, 멕시코를 시작으로 2002년부터는 아시아지역 전문 교황청 외교관으로 베트남, 중국을 담당했고 2005~2007년에는 중국 베이징을 두 번이나 방문했다. 이외에도 로마에서 군종사역과 감옥 재소자들 및 병원들을 총괄하는 일선 사역을 경험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뒤 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그는 사회 여러 계층 사람들의 어려움을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었다.

2009년부터 베네수엘라 주재 교황청 외교대사로 근무했는데, 남미국가들과 교황청간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기도 했다. 또 우고 차베스(Hugo Chavez) 베네수엘라 대통령하의 베네수엘라에서 포기 없이 꾸준히 대화를 추진한 것은 모두에게 귀감으로 남아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뛰어난 경청가로 명성이 높은 그는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핵 확산에 반대한다는 명확한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교황청 국무원장 자리에 앉은 파롤린 추기경은...

그런 그가 지난해 8월 31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교황청의 새 국무원장으로 전격 발탁 되었을 때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은 그 즉시 축전을 띄워 크게 축하했다. 이어 지난 1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대주교에서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또 지난 1월 15일, 그는 교황이 특별히 신경을 써 쇄신하고 있는 바티칸은행에 대해 이사진들과 최고경영진들을 감독하는 '바티칸 은행감독 추기경 위원회' 5인에 임명되기도 했다.

사실 지난해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즉위 소식이 알려진 후 교황 다음 서열이라고 볼 수 있는 국무원장 자리를 누가 맡을 것인가가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교황의 신임을 받는 그 자리에 어떤 인물이 앉느냐가 곧 교황청의 비전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 파롤린 추기경을 임명한 건 교황청 내에 개혁의 새 바람을 불게 하겠다는 교황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관련기사 : 노숙인들과 생일파티 한 교황, 그 이유는...).

이날 기자와 이야기 나눴던 여러 화제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 한국 주교회의 측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언론들이 오는 8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8월 13일~17일 대전교구에서 열릴 6회 아시아청년대회를 찾는다는 내용인데, 사실인가.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 교황의 한국 방문에 대해 무척 긍정적으로 논하기는 했으나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 현재 어느 단계까지 진척된 것인지 확인해 봐야겠다. 또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실이 왜 확정된 것처럼 보도된 것인지 확인해야 겠다.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교황방문을 특정 단체, 세력을 위한 수단이나 방편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 교황의 방문은 '은혜 그 자체'로만 받아들여야 한다. 방편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

앞서 1984년 요한 바오로2세 교황이 한국 순교자 103인 시성식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이후 1989년 또다시 교황은 남북한 평화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찾았다. 이번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이뤄진다면 그것은 한국 천주교 역사상 세 번째인데, 큰 영광이나 다름없다. 이야기는 한국 시성식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파롤린 국무원장은 이번에 임명된 염수정 서울대교구장의 추기경 임명에 대한 한국 내 반응을 궁금해 하기도 했다.

- 분단국가인 한국에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걸로 안다. 지난 1984년에 이어 새롭게 추진 중인 124인 시복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은 귀한 순교의 역사를 가진 나라다. 천주교 신자율도 꾸준히 증가 추세인 것으로 안다. 이번에 임명된 새 추기경단에 한국(염수정)도 있었다. 한국의 반응은 어떤가? 주교들은 어떤가?"

"인도적 차원의 북한 지원 '종북'으로 몰아선 안 돼"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 EPA-연합뉴스

염수정 추기경에 대한 한국 내 반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지만, 대화는 자연스레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것으로 옮겨갔다. 파롤린 국무원장은 기자와 ▲김수환 추기경이 왜 모든 한국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는지 ▲그의 어떤 면이 지금까지도 귀감으로 거론되는지 ▲한국인들이 염원하는 사제상은 무엇인지 ▲한국인들이 처한 현실적 상황과 어려움은 무엇인지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는 복합적이고 특수한 상황에서 한국 사제들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일지 등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외에도 분단국가로서의 어려움, 통일에 대한 이야기, 북한에 대한 지원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울러 보수적 사제들과 진보적 사제들의 입장과 견해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기도 했으며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조언을 하기도 했다. 파롤린 국무원장은 최근 사회 현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한 한국 내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 한국 내에선 북한 이슈 등에 옹호적인 입장을 취하면 '종북'으로 몰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거나 그것을 돕는 자들이 종북으로 몰리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그것들은 인도적 차원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걸 차단하거나 비방의 모티브로 삼아선 안 된다. 북한에도 우리와 같은 한 사람,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지원마저 그런 문제들로 끊긴다는 건 심히 염려스러운 일이다."

- 보수와 진보로 나뉜 한국 사제들의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진보나 보수 사제들은 서로 '대화'소통을 해야 한다. 보수측은 진보 사제들이 주장하는 그것이 사회정의와 약자를 위해 필요한 것이고 또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누군가는 나서야하는 상황임을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보측도 무언가를 주장함에 있어서 그것을 분별하는 지혜와 통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그것은 무엇보다도 '복음'에 근거한 정신이어야 한다. 그것(복음) 없이 단지 이슈만으로 옳음을 주장하면, 그것은 아무리 옳은 것일지라도 나 자신의 주장이나 내 스스로의 의로움을 위한 것으로 둔갑될 수 있다. 서로 대립하지 않는,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한 꾸준한 대화가 필요하다. 나 자신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모든 사제들과 그 측근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복음과 진리, 그 모든 것은 나(자신)를 통로로 흘러가고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것을 항변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통로의 역할을 할 뿐이다. 내가 옳은 사람이고 의인이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교들과 주교회의 및 전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옳고 내가 의인이라는 의식으로 어떤 특정 분위기를 형성해선 안 된다. 복음정신에 입각해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그런 시도의 대화가 필요하다."

"한국사회가 서로 화합과 일치를 모색하길 바란다"

인터뷰 말미, 그는 한국 천주교도들과 사제들에게 이 말을 꼭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Una chiamata a tutti pastori e fedeli, di cercare l'annuncio più efficace del Vangelo
nella società Coreana e comprendere la predicazione della dottrina della sua Chiesa."
"복음의 보다 효과적인 선포를 추구하는 그런 대화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서로 화합, 일치를 모색키를, 모든 사제들과 신도들은 그런 대화에 불리움을 받았다. 그리고 교회측 입장과 원칙에 근거한 강론을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파롤린 추기경을 만난 후 필자가 처음 하게 된 감탄사는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이다!'였다. 파롤린 추기경은 모든 이가 바라는 교황청 국무원장직 이상형에 꼭 맞는 최적격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인터뷰는 매우 허심탄회하고 진솔하게 진행됐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그의 뛰어난 집중력과 경청 태도, 확실한 복음주의에 기반 한 균형과 안정감, 거기서 우러나오는 융통성이었으며 인간 본연에 대한 깊은 이해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온유함이었다. 온유의 그리스 원어가 Prays, '통제된 힘'이란 의미를 갖고 있음을 생각할 때, 그는 진정한 강인함에서 비롯한 온유로움을 갖춘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상황과 여건에 상관없이 늘 평강을 누릴 줄 아는, 즉 '진리'안에서 그는 두려움이 없는 자유인임을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한국에 대해, 남한과 북한의 인권과 통일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것과 똑같은 염원을 품고 있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대담이 끝난 뒤 파롤린 국무원장에게 2월 말 열리는 베네치아 사육제 하이라이트 날에 한국가수 김장훈씨가 무대에 올라 '아리랑'과 함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로 시작하는, '미제레레' 노래(관련기사 : 이탈리아 최대 축제서 '아리랑' 울려 퍼진다)를 부른다고 하자, 농담이 가득 담긴 멘트를 남겼다.

"앗, 근데 그 곡은 고행을 의미하는데... 사육제 때는 다들 신나하고 싶어 할 텐데... 저런, 고행을 좀 일찌감치들 당겨오셨네요.(웃음)"

파롤린 국무원장과 대담 뒤 문득 떠오르는 성서구절이 있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는 다시 있지 않더라... 보라, ... 하느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는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 요한계시록 21장,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한편, 지난 8일 오전 교황청은 한국 순교자 124인의 복자(성인 전 단계)를 확정해 발표했다.


#피에트로 파롤린#교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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