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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 모습이 역사적인 재판인 것을 고려해 시작 전 10분가량 언론에 공개됐다.
 지난 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 모습이 역사적인 재판인 것을 고려해 시작 전 10분가량 언론에 공개됐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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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검찰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피고인들에게 구형을 했다. 이 의원에게는 내란음모·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2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나머지 6명에 대해서도 징역 10~15년과 자격정지 10년을 각각 구형했다. 법원은 오는 17일 1심 선고를 할 예정이다. 나는 검찰의 중형 구형은 물론 기소 자체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형법상 내란의 죄는 폭동에 의해 국가 내부로부터 헌법적 기본질서를 침해해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범죄를 말한다. 내란죄의 핵심 요건은 '폭동'이다. 다수인이 결합해 폭행·협박을 하는 집단적 행동으로서 한 지방의 안녕과 질서를 해할 정도의 것이 폭동이다. '구체적 위험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에 따르면, 폭행 및 협박이 지방의 평온을 해할 정도여야 한다.

'내란예비'는 내란죄의 실행을 위한 준비행위다. 예를 들면 무기를 구입하는 행위를 꼽을 수 있다. 내란음모는 내란죄 실행을 위해서 2인 이상이 무기 구입 등을 구체적으로 통모·합의하는 행위다. '내란선동'은 다른 사람에게 자극을 줘 정당한 판단을 잃게 하고, 범죄 실행을 결의하게 하거나 이미 존재하는 결의를 촉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 범죄에서도 폭동과의 밀접한 연관성이 요청된다.

폭동 음모도 없고, 증거도 신빙성이 없는데...

반면 헌법은 폭력을 동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는 헌법 체제 자체까지도 비판할 수 있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내란죄를 처벌하는 까닭은 헌법 체제를 폭력으로써 변경하려 하기 때문이다. 다수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오로지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백하고 임박한 폭동'을 전제하지 않은 채 예비·음모·선전·선동 등을 포괄적으로 적용하게 되면,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질서가 되레 문란해진다.

먼저 내란음모가 성립하려면 '폭동 음모'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이 내란에 대한 실제 실행 능력과 준비가 있었음을 입증했는지 의문이다. 제보자의 진술, 녹취록, 압수물 외에 증거로 내놓은 것은 없다. 핵심 증거물은 지난해 5월 10일과 12일 두 차례 모임의 녹취록이다. 변호인단은 녹취록 내용이 700여 곳이나 고쳐졌다고 반박했다.

녹취록의 내용에는 '한 자루 총' '평택 유조창 탱크 폭파' '서울 혜화동 KT 지사 타격' 등의 말만 있었다. 그 현실성과 행동가능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내란음모의 회합 또한 "130명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건 지하조직 특성과 맞지 않"(검찰 증인)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 우는 소리까지 들렸다고 한다. 피고인 측은 통합진보당 경기도당이 정세 강연회를 연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북한 주체사상과 대남혁명론에 따라 사회주의혁명을 위해 국회에 진출, 신분을 악용해 RO 조직원들에게 폭동 등 군사준비를 지시해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구형 이유를 제시했다. 검찰이 폭동 등 군사 준비를 한 것을 입증하지 못했다면, 사상과 이론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형사처벌을 할 수는 없다. 국회의원에 대한 비판은 국민의 선거에 의한 심판으로 귀결될 것이다. 사상과 이론 그리고 말에 대한 형사처벌은 국민의 심판권을 빼앗는 일이다.

1957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나온 '예이츠 판결'에 주목해야 한다. 이 판결은 '추상적 독트린으로서 폭력적 사회주의혁명을 주장하거나 교육하는 경우'와 '구체적인 폭력행위를 선동해 행동이 임박한 경우'를 구별했다. 그리고는 전자는 처벌해서는 안 되고 후자만을 처벌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쿠데타 일으킨 전두환·노태우는 기소유예... 기울어진 구형 저울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이 열린 지난 96년 8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시작에 앞서 기립해 있다.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이 열린 지난 96년 8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시작에 앞서 기립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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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행위는 '어떤 조직이 단결성이 있는 충분한 규모로 행동을 할 정도로 조직돼 있어 폭력적으로 정부를 전복하는 행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판단이 충분히 성숙한 경우'다. 이번 사건에서 회합과 회합에서의 발언 등은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구체적 폭력적 행위로 직결될 수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는 음모 또는 예비 또는 선전·선동'이라고 보기 어렵다. 형법상 내란 관련 죄목을 적용하는 게 오히려 사상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들에 대한 관용은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헌법은 헌법 자체에 대한 비판에 대해 관용을 넘어 '기본권'으로 보장한다. 폭동을 준비했던 명백한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이들에 대한 처벌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포기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검찰은 심지어 대구지하철 방화사건을 예로 들면서 예방 차원에서라도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잊지 않고 있다. 과거 검찰은 군인 신분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내란 관련 죄를 저질렀던 전두환·노태우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것을 말이다.

그들에 대한 최종 선고는 다음과 같다. 전두환 무기징역, 노태우 징역 17년, 황영시·허화평·이학봉 각 징역 8년, 이희성·주영복·정호용 각 징역 7년, 유학성·허삼수 각 징역 6년, 최세창 징역 5년, 차규헌·장세동·박종규·신윤희 각 징역 3년 6개월이었다. 검찰의 구형 저울은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한편,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8월 녹취록을 공개함으로써 여론 재판의 효과를 선점했다. 공안탄압대책위원회는 "'절두산 성지'를 '결전성지'로, 반전평화 실현을 위한 '구체적 준비'를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로 둔갑시키는 등 국정원의 날조는 재판과정에서 450곳, 841단어, 1113자에 걸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헌법 보호의 비결

대선 개입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국정원이 위기돌파용으로 '종북몰이'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도 있다. 정보기관은 국가안보를 위해 존재하지만, 비밀주의 속성 때문에 인권 침해 가능성이 높다. 국가정보원의 무리수와 그로 인한 신뢰 하락은 인권은 물론 헌법과 국가안보 자체에 대한 위해가 된다.

칼 프리드리히는 헌법 보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정부에는 마치 마그나 카르타(Magna Charta)처럼 지속적이고 불변인 무언가 근본적인 것이 반드시 존재하여야 한다. (중략) 이러한 근본적인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의 자기 확신, 자기 믿음, 자기 신념에 대한 권리임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곳에 인간존엄성의 핵심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내적인 자아를 안전하게 하는 것은 어떠한 한계 혹은 어떠한 비결보다도 헌법질서의 안전 및 생존이다. 이것이 바로 입헌적 국가 이성의 핵심이다. 이것이 왜 입헌주의 국가를 설립해 유지하는지에 대한 이유다."

헌법을 위험에 빠트린 것은 이석기 의원 등이 아니라 국가정보원과 검찰이다. 대한민국 헌법 체제가 인권적이고 민주적인 헌법체제인지 아닌지 시험대에 올랐다. 법원이 국가정보원과 검찰에 대한 견제를 통해 인권적이고 민주적인 헌법 균형을 회복하길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오동석님은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태그:#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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