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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새로운 정치를 위한 국민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김효석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의 주제발표를 들은 뒤 박수를 치고 있다.
▲ '국민이 주인되는 정치'에 박수치는 안철수 의원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새로운 정치를 위한 국민과의 대화'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김효석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의 주제발표를 들은 뒤 박수를 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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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는 없다. 11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추진위원회'(이하 새정추)가 발표한 '새정치 플랜'을 보고 내린 결론이다(관련기사: 안철수 "새정치가 불분명하다고 하는데...").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새정추의 '새로운 정치를 위한 국민과의 대화'가 끝난 후 현장의 반응은 극명하게 두 가지로 갈렸다. 평일 낮 시간인데도 강당을 가득 채운 500여 명의 지지자들은 대체로 만족스러운 반응이었다. "준비를 철저히 한 것 같다", "새정치의 비전이 보였다"는 평가였다. "새정치를 비난했던 다른 정당들이 할 말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효석 새정추 공동위원장의 발제 이후 진행된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 역시 이날 발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비판보다 조언을 보탰다.

하지만 기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혹시나 했던 것이 역시나 하는 분위기였다. '새정치는 무엇이냐'는 의문에 답을 기대하고 왔지만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모습이다. 애초 이날 발표할 것으로 예상한 정치혁신안마저 빠져 있었다. 그나마 '국민투표 요건 완화'가 새로운 내용이었지만 구체적이지 않았고, 국회의원 소환제, 선거구제 개편, 결선투표와 같은 개혁안은 정치권에서 수차례 언급된 내용이었다. 결국 이날 발표 역시도 '안철수 의원이 말하는 새정치가 과연 무엇인가'라는 궁금증만 증폭했다.

예전에 한번쯤은 본 안철수의 새정치

'새롭다'는 것은 '기존에 없던 무엇' 또는 '지금까지와 다른 무엇'을 말한다. 결론적으로 이날 발표에 '기존에 없던 정치'라는 의미의 새정치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새정추가 내세운 '정의로운 사회', '사회적 통합', '한반도 평화'라는 새정치의 3대 가치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라고 할 수 있을까? '노동시장 정상화'시키고 '중산층을 복원'해 '인간중심의 사회발전 패러다임'을 추구하는 정당이 그동안 없었던가? 당장 기존 정당들의 홈페이지에서 클릭 몇 번이면 위 내용이 모두 포함된 각 정당의 강령을 찾아볼 수 있다.

새누리당은 강령에서 "공정한 시장경제를 추구"하며 "조화와 통합을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다. 민주당은 "정의와 연대의 가치를 추구"하며 "서민과 중산층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정당을 지향한다"라고 제시했다. 진보정당들은 "노동의 가치를 추구"하며 "노동존중 사회"를 추구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는 모든 정당이 공히 지향하는 바다. 모두 새정추 발표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새정추의 발표에는 기존 정당들이 표방한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 이념 지향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그동안 안 의원의 새정치가 '박근혜의 창조경제', '김정은의 속마음'과 더불어 3대 미스터리로 불려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새정치는 이것'이라고 제시해 주길 원한다. 그러나 시대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지 않다면 완전히 새로운 무엇이 나오기 어렵다. 새정추는 극복해야 할 한국사회의 시대 과제를 저성장, 양극화, 일자리 창출, 분단 체제로 규정했는데 이는 기성정당들도 마찬가지다. 정책의 좌우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는 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새정추가 제시한 '사람 중심 경제', '민주적 시장 경제', '성장친화적 복지'라는 새정치 목표는 모두 한번쯤 들어본 이야기들이다. "노동소득 분배율을 높여 자본과 노동의 균형을 이루고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추구하는 '사람 중심 경제'는 지난 2007년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가 제시한 개념이다. 가깝게는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적 시장경제' 역시 대선에서 모든 후보가 얘기했던 경제민주화와 같은 이야기다. '성장 친화형 복지'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손학규 후보가 제시했던 내용과 일치한다.

안철수 의원만 놓고 봐도 새정치의 내용은 이미 한 번 노출된 것들이다. 안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 출마 당시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사회 양극화 심화', '고용 없는 성장'을 한국사회 문제점으로 지적했고, 경제분야 공약으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제시했다. '중부담 중복지' 역시 대선 공약이었다. 모두 이번 발표와 겹친다. 대선 때는 다소 방만하고 급조된 공약이었다면, 이번에는 비교적 정리되고 일관성을 갖췄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좋게 보면 '변화발전'이고 나쁘게 보면 '재탕'이다.

이러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안철수의 정치를 새정치라고 부를 수 없다. 안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의사를 밝히면서 정치행보를 시작한 것이 2년이 넘었다. 그동안 새정치가 무엇인지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질문이 잘못됐거나 답이 없다고 봐야 한다. 새로운 것은 없다. 안 의원이 하겠다는 정치는 새누리당, 민주당, 진보정당들이 하겠다고 선언해 온 것과 같다. 새롭다면 그것을 '안철수'라는 새로운 인물이 하겠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새정치가 아니라 '안철수의 정치'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미뤄지는 정치혁신안 발표... 정치제도 개혁 국민 설득해야

'새로운 정치를 위한 국민과의 대화'에 토론 패널로 참석한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새정치의 실체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에 "새정치가 뭐냐를 집요할 정도로 질문하고, 또 일일이 그것에 (대응해) 설명하는 건 우문우답일 수 있다"라며 "새정치는 설명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치행위를 통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새정치가 무엇이냐'는 집요한 질문을 멈출 수는 없다. 그렇게 말로 설명 안 되는 새정치를 안 의원이 끊임없이 말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안 의원은 현재 새정치라는 말을 기성정치와 거리를 두고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한 수사로 사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기존 정치를 혐오하는 것을 활용해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구태정치로 만들어 둘 사이 중간지대에 서서 정치세력화를 꾀한다. 실질적인 정치지형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정치혁신과제 발표는 차일피일 미루고 정당의 강령에나 들어갈 만한 청사진을 보여주는 데 급급하다. 앞서 본 것처럼 그 청사진은 어느 당이나 비슷하고 그럴 듯하다.

안 의원이 진정성 있게 새정치를 얘기하려면 정치제도의 변화를 무엇보다 먼저 제시했어야 한다. 과거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처럼 "국회의원을 100명 줄이겠다"고 한 것처럼 말이다. 제도가 바뀌어야 사람을 바꿀 수 있고, 안 의원이 그렇게 비판하는 양당제를 깰 수 있다. 물론 안 의원은 더 이상 국회의원을 줄이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국회의원을 줄이는 게 결코 정치혁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고, 이 제안은 사실상 철회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비례대표 확대, 국민투표 요건 완화 등 대의정치에서 민의를 실질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도 전에 없던 새로운 방안은 아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의회 비례대표를 확대하면서 전체적인 민의가 반영될 수 있는 정치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또 한국사회는 지역구 의원 중심의 현행 소선거구제는 필히 양당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정치이론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 다당제로 가기 위해 비례대표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진보정당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안 의원이 제시하려는 정치혁신안도 이 범주를 넘어서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진보정당이 그동안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 이 방안을 안 의원이 설득해 낼 수 있느냐이다.

안철수 신당은 오는 17일 발기인 대회를 열고 당의 실체를 본격적으로 갖춰갈 예정이다. 안 의원은 가칭 새정치신당 창당준비위원회의 최고의결기구인 중앙운영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는 '새정치'가 아닌 '안철수의 정치'를 볼 수 있길 기대한다. 


태그:#안철수, #새정치, #새정추, #새정치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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