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순 강원도지사가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강원도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특별위원회)'는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최 지사가 9년 이상 심각한 갈등을 빚어온 홍천군 '구만리 골프장'의 직권취소 의견을 전격 수용했다"고 밝혔다.
강원도지사가 도내에 건설을 추진 중인 골프장을 대상으로, 골프장 인허가를 직권취소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별위원회에 따르면, "최문순 도지사는 고심 끝에 특별위원회의 의견을 수용"했다. 직권취소 절차는 17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특별위원회가 도지사에게 직권취소 의견을 제시하게 된 것은 구만리 골프장 사업자가 골프장 인허가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일부 부실하거나 거짓으로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서를 제출하는 등 여러 가지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 사실이 확인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별위원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구만리 골프장의 경우) 2011년 11월 15일부터 2012년 1월 5일까지 50일간 실시한 현장조사 등을 토대로 작성한 생태환경조사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사업자의 환경영향평가서에 심각한 부실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특별위원회에 따르면, 구만리 골프장 사업자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에는 포유류의 경우 멸종위기종 조사가 누락되고 일부 식생군락은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조사자 명단에는 "실제 조사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을 조사자로 등재"하기도 했다.
산림조사에서는 "산림조사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심대한 부실 내지 부정한 조사"가 있었다. 특별위원회는 또 "표준지 설치에 있어서 경사도 미반영과 상수리(나무)와 신갈(나무)의 수종 구분 미실행에 대해서는 잘못된 조사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산지 전용 협의를 위한 산림조사에서는 "간벌, 숲 가꾸기가 전체 사업부지 면적의 39%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실시되는 등 골프장 개발을 앞두고 입목 축적을 줄이기 위한 편법이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 결과, 특별위원회는 "구만리 골프장 사업에 대한 기존 사업계획 승인이 허위 부실하게 작성된 환경영향평가서에 의하여 위법하게 내려진 것으로 결론짓고, 강원도의 환경 및 지역경제 등 공익을 감안해 위 사업계획승인의 취소가 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특별위원회는 구만리 골프장과 관련해 환경영향평가법을 위반한 사례 등을 면밀히 검토한 뒤, 지난해 12월 11일 최문순 강원도지사에게 '구만리 골프장 사업계획 승인 위법성 검토' 보고서를 제출하고 구만리 골프장에 대한 직권취소 의견을 제시했다.
특별위원회는 직권취소를 결정하는 근거법률로,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등을 제시했다. 이들 법률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에 의하여 인허가를 받은 경우 인허가 등을 취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골프장 난립, 줄도산 위기에 처해 있는 국내 골프장들
최문순 도지사가 직권취소 결정을 수용한 데는 국내에 골프장이 난립하면서 기존 골프장들의 경영 실적이 악화되고 있는 현실도 한몫했다. 특별위원회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회원제 골프장은 2002년을 정점으로 영업이익이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골프 수요도 감소 추세다. 그러면서 골프장 업계의 도산 우려도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말 법정관리 중인 골프장이 20여 곳에 달했다. 법정관리를 신청 중인 골프장은 10여 곳이고, 경영 상태가 어려워 공매나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한 골프장이 15곳이었다.
홍천군에서만 2013년 9월 기준으로,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는 골프장과, 현재 운영 중이거나 공사가 진행 중인 골프장 등을 모두 포함해 16개의 골프장이 난립해 있는 상태다. 강원도 내 골프장들 역시 공급 과잉 현상을 보이고 있다.
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에서 "현재 도내에서 운영 중인 골프장은 58개소로 급격하게 증가했으나, 단위 골프장당 내방객 수의 감소, 회원권 분양률 저조 등의 사유로 지방세를 체납하는 사태와 부도 위기로 직면한 골프장이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구만리 골프장은 '마운트나인 리조트 회원제 골프장'이라는 이름으로, 강원도 홍천군 북방면 구만리 1번지 일원에 27홀 규모로 건설될 예정이었다. 이 골프장의 실제 소유주는 새누리당 박덕흠 국회의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만리 골프장은 건설 허가가 난 이후로 줄곧 일부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왔다. 그 외 강원도에서 크게 문제가 돼 온 골프장은 홍천의 '갈마곡리 골프장', '월운리 골프장'과 강릉의 '구정리 골프장', 원주의 '여산 골프장' 등이 있다.
최문순 도지사는 지난 2011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도내 골프장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선 직후인 2011년 9월, 도지사 직속으로 '강원도골프장 민관협의회'를 조직하고, 2013년 2월에는 이 조직을 확대 개편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특별위원회는 이후 도내 골프장 사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면서 지역 내 골프장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해 왔다. 갈마곡리 골프장의 경우 골프장 사업에 대한 실시계획인가 변경(폐지) 고시를 내게 됐고, 월운리 골프장은 아예 골프장 조성사업을 입안하지 않기로 했으며, 구정리 골프장은 골프장이 아닌 다른 대안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이영기 강원도골프장문제해결을위한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최재홍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위원회 위원, 배영근 녹색법률센터 부소장, 유정배 강원도지사 특별보좌관, 장정구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 등이 특별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한편, 구만리 골프장 사업자인 ㈜원하레저는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구만리 골프장은) 법적인 판단을 받아 당사의 사업이 정당하고 합법적인 사업임을 인정받은 상황"으로, "특별위원회의 기자회견 내용은 모두 억지와 비방"이라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