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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춘 전 검사(자료사진)
 남기춘 전 검사(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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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자살방조 부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상황에 대해 1991년 당시 강씨를 수사한 검사 중 한 명인 남기춘 변호사는 "당시의 잣대와 지금의 잣대가 달라서 나온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사건 당시 곽상도·윤석만·임철 검사 등과 함께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에서 가장 기수가 낮았던 남 검사(사법연수원 15기)는 13일 오후 이 사건 판결이 나온 직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나는 가장 말석 검사였고 잠깐 사건을 맡았던 것뿐이어서 당시의 판결 내용도 구체적인 건 잘 모른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당시 강력부장은 대법관을 지낸 강신욱 변호사고, 사건 주임검사는 사법연수원  11기 신상규 변호사다.

남 변호사는 "(1991년) 당시의 증거법칙은 정황에 의한 유죄가 가능했기 때문에 대법원까지 가서 유죄를 확정받은 것이고, 지금의 증거법칙은 정황만으로는 유죄가 가능하지 않으니 무죄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가 정치적인 의도로 사건을 조작한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느닷없이 공안부가 아니라 강력부에 배당이 된 사건이었다"며 "당시엔 공안부가 맡으면 정치적인 의도를 의심할 게 뻔하니까 강력부에서 맡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기훈씨는 원심 공판과정에서 검찰 조사 때 장시간 잠을 재우지 않았다고 진술했고, 출소 이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과정에서 검찰 수사가 잠 안재우기, 손찌검 등을 동반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남 검사는 "수사 당시 매일매일 몇 명씩 변호인 접견도 하고 그랬지만 당시엔 (강씨가) 강압수사 얘길 하질 않았다"며 "이제 와서 강압수사를 주장하는 건 어떤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남 변호사는 ""당시 밤샘수사는 늘상 있었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태그:#강기훈, #수사검사, #남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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