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0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빅토르 안(안현수)이 플라워세리머니 시상대에 올라서며 두팔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해안클러스터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빅토르 안(안현수)이 플라워세리머니 시상대에 올라서며 두팔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클래스'가 달랐다. 지난 13일 쇼트트랙 남자계주 5000m 준결승 2조에서 안현수는 범접할 수 없는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다. 중국·이탈리아·캐나다와 함께 뛴 러시아팀은 캐나다 선수가 넘어져 뒤로 밀려나기 전까지 4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경기는 그대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안현수가 뛸 때마다 한 팀씩 제치며 러시아가 앞으로 나섰다. 안현수가 뛰면서부터 2위에 올랐고, 그가 마지막 주자로 뛸 때는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빅토르 안'으로 불리며 이제는 러시아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한 안현수의 역주. 러시아에게 축복 같은 선수 빅토르 안은 결승전을 통과하며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가 보여준 5000m 계주에서의 활약은 지난 1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린 '2014 유럽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남자 3000m 슈퍼파이널에서 보여준 '폭풍 질주'에 비견될 수준이었다. 이 경기에서 빨간 모자를 쓴 안현수는 4위로 달리다가 마지막 세 바퀴를 앞둔 상황에서 순식간에 앞의 세 선수를 제치고 1위로 치고 나가는 '레전드 장면'을 연출했다.

"안현수 문제 바로잡아라"... 그럼 지금 한국대표팀은?

지난 13일 열린 2014년도 교육·문화 분야 업무보고에서 발언하는 박근혜 대통령
 지난 13일 열린 2014년도 교육·문화 분야 업무보고에서 발언하는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앞서 진행된 남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안현수는 세 번째로 골인 지점을 통과했다. 그는 새로운 조국 러시아에 사상 첫 쇼트트랙 메달을 선사했다. 푸틴 대통령은 축전을 보내며 기뻐했다. 함께 뛴 한국 선수는 메달을 따지 못했다. 지난 13일 남자 5000m 계주 준결승에서 안현수가 이끈 러시아팀은 1위로 결승에 진출했지만, 한국팀은 탈락했다. 한국 쇼트트랙 선수들의 부진에 반비례해 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증폭되는 상황이다. 

안현수에 대한 관심에서 박근혜 대통령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13일 오전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안 선수의 (귀화) 문제가 파벌주의와 줄세우기, 심판의 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려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토리노 동계올림픽 3관왕의 위업에 빛나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쇼트트랙 선수가 조국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한 채 다른 나라 국기를 달고 뛰는 것에 강력한 질타를 가한 것이다. 질타의 대상은 '체육계의 부조리와 비리'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체육비리 관련해서는 반드시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질타가 있은 뒤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안현수의 국가대표 탈락 과정을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안현수 발언'은 시기적으로나 방법적으로 대단히 잘못됐다. 4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들이 지금 소치에 가 있다. 박 대통령은 안현수를 부조리한 체육계의 희생양으로 표현함으로써 졸지에 한국 대표선수들이 부조리한 관행에 의해 선발된 대표팀의 일원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그렇지 않아도 쇼트트랙 선수들은 초반의 거듭된 부진에 몸과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이다. 왜, 무엇 때문에 굳이 이 시점에 대통령이 공개된 자리에서 그와 같은 발언을 해야 했는지 궁금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점이 대단히 잘못됐다.

안현수 선수의 귀화는 2011년도에 벌어진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체육계 관행에 심각한 경고를 보내고 싶었더라면 집권 초에 바로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집권한 지 1년이 지나는 시점까지 관련된 언급이 없다가 하필이면 올림픽 기간 중에 참지 못하고 문제제기를 한 셈이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동계올림픽이 끝난 이후에 할 수는 없었을까. 자신의 발언이 선수들 사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의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윤재명 쇼트트랙 남자대표팀 감독은 "(지금은) 훈련과 경기에만 집중할 때"라며 "대통령의 발언이 선수들에게 전해지지 않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대통령은 왜 '감독이 선수들에게 전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말'을 한 것일까.

'스포츠 정신 회복'이라더니... 사제들 목소리는 왜 외면하나

박 대통령이 언급한 한국 체육계의 문제는 파벌주의와 줄세우기 그리고 심판의 부정이다. 박 대통령은 이를 '부조리'라 부르며 개혁할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그와 같은 발언을 할 적임자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현재 전직 국가정보원장과 서울경찰청장 등이 지난 대선 당시 선거개입 의혹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문재인 의원은 지난 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특검으로 대선개입 문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뿐만 아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지속적으로 '박 대통령 퇴진 촉구 시국미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주말마다 거리에서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일부 국민들과 종교인들로부터 집권의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대통령이 '스포츠 정신 회복'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부조리'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 아니겠는가.

소치의 쇼트트랙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빅토르 안은 몇 차례 더 러시아 국기를 달고 한국 국민의 응원을 받으면서 정정당당하게 경기에 임할 것이다. 앞으로 클래스가 다른 경기를 몇 차례 선보일지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 그는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소치에 있는 한국대표팀 선수들에게도 아직 쇼트트랙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을 들었을지 안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마음을 다잡고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 국가대표 선발과정이 옳았음을 그대들이 입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결국 좋은 성적이기 때문이다.


태그:#소치, #안현수, #박근혜
댓글3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