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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아그라로 가는 기차 안에서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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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기차의 공포 세 가지, 연착과 추위 그리고 생쥐.
미리 확인하는 걸 깜빡하고, 조드뿌르 역에 닿았을 때의 그 황당함이란.
9시간이나 연착한다는 소식.
이미 체크아웃하고 나온 호텔로 다시 들어가는 일은 왠지 내키지 않아 역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그럭저럭 긴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플랫폼으로 나가 막 도착할 기차를 기다리지만 여전히 기차는 오지 않는다. 그렇게 또 두 시간 연착. 이제 아예 안내도 하지 않는다. 한 두 시간 연착은 연착에 끼지도 않는다는 듯이. 

아그라까지 11시간 동안 달리는 기차를 11시간을 기다려 탔다.
고장난 창문 사이를 비집고 들이치는 밤바람과 시간이 흐를수록 더러워지는 기차칸의 화장실은 여행의 추억쯤으로 위로를 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활개를 치는 생쥐들은 견디기 힘들었다. 발밑을 날렵하게 날아다니는가 하면 간식거리를 매달고 있는 가방 위까지 기어오르려 했다.
침낭 속으로 기어 들어가 얼굴을 파묻고 그저 견디는 수밖에.

밤기차가 작은 역에 도착할 즈음, 설풋 잠이 깼다.
맞은 편 2층 침대 좌석을 찾아온 인도 청년의 실루엣이 희미한 불빛을 타고 흔들렸다.
호기심에, 침낭 밖으로 두 눈을 빼꼼히 내밀었다.

청년은 입김을 훅 불어 매트의 먼지를 확인해 보고는, 맨손바닥으로 매트 전체를 꼼꼼하게 닦아낸다. 버슬거리는 먼지가 내가 다 느껴질 정도이다.

손을 탁탁 턴 청년은 가방에서 담요를 꺼내어 기차 침대에 단정하게 깐다. 담요 네 귀가 잘 펴졌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키가 크고 마른 청년은 봉을 잡고 요령 있게 지그재그로 발을 디뎌 2층 침대에 가볍게 올라앉는다. 신발을 벗은 그의 발은 거무튀튀한 맨발이다. 담요 속으로 기어 들어간 그는 네 귀를 다시 한 번 정리하고는 얼굴까지 푹 뒤집어 쓴 채 그대로 잠이 든다.

그 모습이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어찌나 익숙하고 진지한지 경건해 보일 지경이다.
그렇지, 모든 기본은 위대하고 일상은 거룩한 법.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기차에서의 하룻밤이지만 하루 종일 움직였던 고단한 몸을 온전히 쉬게 하는 달콤한 시간인 것을.

어쩌면 청년은 주말을 맞아 고향 마을로 돌아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밤기차의 잠자리는 객지에서의 잠자리보다 더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 안락한 잠자리를 잠시 유보시켰을 뿐인 여행자들처럼 툴툴거릴 새도 없이 잠들어 버린 것인지도.

덧붙이는 글 | 2013년 1월 한달 간 인도를 여행했습니다.



태그:#인도, #인도여행, #인도의 기차, #침대 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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