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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명의 인권활동가들이 3달 동안 내란음모 사건 당사자 23명을 만났다. 구속자 가족과 압수수색 당사자, 5월 정세강연 참석자들이었다. 우리는 내란음모라는 비현실적인 죄명을 뒤집어쓰고 사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빨갱이' '종북'이라는 말에 갇힌 사람들. 그러한 비인격적인 말 뒤에 사람들의 고통이 어떤지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거친 현장에서 산전수전 겪은 사람들이니 괜찮겠지, 국가보안법 사건도 제법 겪었을 텐데, 큰 문제가 있겠나'라는 생각도 있었다. 만나보니 그들은 괜찮지 않았다. 그들은 오전 6시만 되면 눈이 번쩍 떠지고 낯선 이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싫어 더 이상 배달 음식을 시켜 먹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왜 그 문을 쉽게 열어 줬을까

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 모습이 역사적인 재판인 것을 고려해 시작전 10분가량 언론에 공개되었다.
▲ 언론에 공개된 '내란음모' 결심공판 3일 오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원천동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결심공판 모습이 역사적인 재판인 것을 고려해 시작전 10분가량 언론에 공개되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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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집은 변호사 오면 열어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왜 쉽게 열어줬을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우리 집에서 가져간 것이 증거가 되진 않았을까…."

말을 잇지 못하는 아내에게 그날 아침은 자신의 힘으로 닫을 수 없는 문이 강제로 열린 사건이었다. 자신이 문을 닫으려고 했을 때 문을 열려고 하는 완력과 그 사람 눈빛이 지금도 너무 또렷하다며 몸을 떨었다. 들이닥친 수십 명 수사관들은 집안을 잘 아는 사람처럼 방을 맡아 수색했다. 그들은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것만 보지 않았다. 일기장 같은 것을 집안에 늘어놓고 4, 5명이 같이 보았고 편지함이나 사적인 것을 두런거리며 이야기하면서 보았다. 그 이후로 삶이 바뀌었다. 누군가 자신 생활을 들여다보고 있다 생각하고 산다. 핸드폰도 바꾸고, 컴퓨터도 바꾸고, 청소하고, 정리하고… 일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어떤 사람들은 수첩을 아예 쓰지 않게 되었다. 컴퓨터를 전혀 안 쓰거나 기록을 모두 머리에 기억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삶을 모두 흔적 없이 지우고 있는 자신을 보면 하루에도 서너 번 눈물이 난다고 했다.

소위 통하진보당 내란음모 사건 관련자들에게  "아무도 우리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증언을 들을 때 가슴이 아팠다.

이아무개씨는 아파트 입주자대표 회장이어서 아는 사람도 많았다. 그날 이후 이웃들은 멀리서 그가 오는 것만 봐도 피해서 지나갔다. 직장에 전화한 정보과 형사는 그가 근무하는지 물어보았다. 겁이 난 사장은 따로 불러내 회사에 피해 오면 어떻게 해볼 수 없다고 말했다. 구속된 가족 차에는 누군가 빨간 글씨로 '빨갱이'라고 쓰기도 했다. 그걸 울면서 벅벅 지우던 날은 너무 서러웠다.

"미용실에 갔던 어머니는 종편 TV에서 이석기 내란음모, RO 어쩌구 이런 이야기가 나오니까, 미용실에 있는 손님들이 저것들은 다 죽여야 된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계속 했었나 봐요. 어머니가 그냥 기다리시다가 머리도 못하고 그냥 오셨더라구요."

어머니는 또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계속 우셨다고 한다.

"우린 뿔 달린 도깨비가 되었다"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 모르는 사람보다 더 야속했던 것은 같은 편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왜 걸렸냐? 아직도 그러고 사냐? 쟤들은 진보도 아니라는 말은 힘겹게 들렸다. 어버이연합이, 조중동이 그러는 건 상처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겨레>나 <경향>이 그러는 것, 진보언론에서 그러니까 견디기 어려웠다.

"소위 인권운동 하시는 분들조차도 외면하더라고요. 어쨌든 진보당이 말썽을 많이 피우잖아요. 그런 이미지들이 있어서 주변에 운동하시는 분들한테 도와달라고 했는데 주변에서 다 반대했다고 하더라고요. 왜 진보당의 방탄막이가 되려고 하냐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데요. 우리는 낙인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옛날에 노예, 역적들한테 그랬던 것처럼 진보당, 경기동부연합은 낙인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이번 과정을 통해서 더 이렇게 되니까 사람들이 "또 쟤네야?" 그런 시각을 가지는 거죠. 진보운동 하는 사람들조차 거리를 두는 것이 제일 힘든 거죠. 저희는 작년 올해 계속 그랬어요. 사람들은 많이 당하면 적응이 될 거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상처가 더 깊어지죠. 진보운동 안에서도 그렇고 한국 사회에서 우린 뿔 달린 도깨비 아닙니까?"라고 그는 물었다."

당사자들의 아픔이 전이된 인권 활동가들은 보고서를 작성하는 동안 힘겨워했다. 국정원이 쓸고 간 파괴된 삶의 터전과 깨진 인간관계, 사회적 배제가 모두 고통으로 남았음을 확인했다. 고립된 섬에 갇힌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를 통해 다시 되짚고 싶었다. 상처는 현시대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자녀들을 통해 미래로 이어질 것이기에 서두르고 싶었다.

내란음모의 주어는 국정원이었다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7명에 대한 6차 공판이 열린 지난 11월 21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 수감 중인 가족들이 모여 검찰이 프락치 공작을 펼치고 있다며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 내란음모 구속자 가족 "내란음모 조작이다"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7명에 대한 6차 공판이 열린 지난 11월 21일 오후 경기도 수원 영통구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 수감 중인 가족들이 모여 검찰이 프락치 공작을 펼치고 있다며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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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은 인권의 보편적 기준과 헌법을 위시한 법률체계, 공무원이 지켜야 할 의무 등 무엇도 지키지 않았다. 내란음모 유무죄를 떠나 해서 안 되는 일들을 했다. 부인과 결혼한 것도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거 아니냐고 물었다. 조사 중에 중증장애를 앓고 있는 자녀를 언급하기도 했다.

 "중증장애를 앓고 있는 애가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다는 거냐?"

묵비권을 행사하니 변호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니 다시 나갔다 오겠다"며 위협하기도 했다. 내란음모의 실제 행위가 아니라 생각과 사상을 집요하게 물었다. SNS의 모든 게시물을 복사해서 증거라고 보여주었고 MP3에 담긴 노래 가사를 들려주며 "이게 이적성이 있는 것 같은데 동의하냐? 안하냐?"라고 물었다.

"두 번째 조사는 여덟 시간을 받았는데 녹취록을 한 줄씩 읽어줬어요. <한국일보>에 나온 녹취록이었는데, "이건 이런 뜻이다. 기억이 나냐. 들어본 바가 있냐?"고 자기 식으로 해석해서 물어봤어요. "이건 내란을 모의한 거고, 총 이야기가 나온 거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너무 답답했어요. 차라리 말싸움으로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참았죠. 억지를 많이 썼어요. 그리고 제가 했던 발언에서 사용한 용어를 가지고 네이버 사전을 찾아와서 죽 읽고는 "이게 어디서 나온 이야기다 알고 있냐. 그 단어는 이런 의미로 쓰는 거다."라고 했어요."

그렇게 그들은 그날 이후로 숨 쉬는 것조차 범죄가 되었다.

강기훈의 23년

"나이가 들어가면서 드는 느낌이 있습니다. 아무리 험한 상황이라고 해도 예의를 지키고 상대의 의견이 혹시 나와 달라도 참고 듣는다는 점입니다. 임계점은 물론 있겠지만 대개는 그렇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법정을 존중하고 최대한 예의를 지키겠지만 어떤 수준을 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원심법정에서 검찰이 제게 했던 논고 중에서 "피고는 공산주의자 십대신조를 맹신하고 부모도 죽일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이기에 자살을 도와주는 정도는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는 식의 이야기는 삼가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예단으로 제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실체적 진실을 찾으려는 이 자리를 모독하는 행위이기에 원심 때처럼 인내하면서 듣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재판은 제게 매우 큰 의미입니다. 부디 과거시대의 어두웠던 기억을 접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3일 무죄 선고 받은 강기훈씨가 재심에서 읽었던 모두 진술의 일부다. 글을 읽으면서 그를 괴롭히는 악성 세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인권보고회가 있었던 날 인의협은 내란음모 사건 당사자들의 건강 상태를 걱정했다. 그리고 당사자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진실 규명과 사건 책임자의 사과와 처벌이라고 말했다. 광주 민주항쟁으로 트라우마가 생긴 이들도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거나 여전히 떵떵거리고 사는 상황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강기훈씨에게도 필요한 것은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를 괴롭힌 23년의 아픔역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가해자 처벌이다. 내란음모 사건 당사자들에게 그럴 것이다.

이제 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이 사건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인간의 삶과 존엄을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인간을 수단으로 삼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죄악이다. 인권 탄압의 방편이 사람의 생각, 나아가 정치적 의견의 차이라 한다면 우리 사회는 영원히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내란음모라는 위험한 사건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자유와 권리, 그리고 연대'라는 인권의 보편적 메시지일지 모른다. 적어도 우리는 당사자들을 통해 그것을 분명히 배웠다. 우리들의 보고가 뒤늦지 않았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지난 2월 12일(수) 오후1시 정동 프란치스코회관 212호에서 있었던 소위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인권침해 보고회의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태그:#내란음모, #통합진보당, #이석기, #인권침해, #인권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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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www.righ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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