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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척사대회가 끝나면 농부들은 농한기를 끝내고 들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제 이 척사대회가 끝나면 농부들은 농한기를 끝내고 들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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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을 담은 윷판

어릴적 고향의 기억을 반추할 때 먼저 생각나는 것이 음력 정월 대보름날의 다양한 어울림이었습니다. 설날이 차례를 지내고 집안 어른들께 인사드리는, 집안 행사로 바빴다면 대보름날에는 동민들이 함께하는 행사들로 바빴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것은 가마니나 멍석을 깔고 편을 갈라 즐겼던 척사대회와 마을 앞산 꼭대기에서 청솔가지로 달집을 만들어 달이 떠오를 때 불을 붙여 태우던 달집태우기입니다. 옛 기억으로만 간직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풍경들입니다.

정월대보름날에 개최된 '2014년 탄현면 풍년맞이 한마음 척사대회'. 이런 마을공동체행사도 언제 자취를 감추게 될지 의문입니다.
 정월대보름날에 개최된 '2014년 탄현면 풍년맞이 한마음 척사대회'. 이런 마을공동체행사도 언제 자취를 감추게 될지 의문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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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을 앞둔 며칠 전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2014년 탄현면 풍년맞이 한마음 척사대회'였습니다.

2월 14일 대보름날, 파주시 탄현면의 각 기관들과 사회단체가 연합으로 주최하는 이 윷놀이 대회에 탄현면 22개 마을 이웃으로서 헤이리의 한상구 이장님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행사가 열리는 탄현농협 농기계수리센터 마당 가운데에는 야무지게 행사를 준비한 모습이 가득했습니다. 부직포 매트와 윷판이 여러 조 깔리고 관내 개인과 단체에서 기부한 상품이 한가득 쌓였습니다.

관내의 개인과 기관이 기증한 상품들. 탄현농협에서는 비료 100포의 통 큰 기증을 했습니다.
 관내의 개인과 기관이 기증한 상품들. 탄현농협에서는 비료 100포의 통 큰 기증을 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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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장작불이 피어졌고 고기를 굽는 불판도 만들어졌고 박완재 면장님과 단체장님들, 그리고 각 동네 어르신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술과 음식을 나누어 함께 먹는 일은 밥상공동체에서 중요한 유대의 의미를 갖습니다.
 술과 음식을 나누어 함께 먹는 일은 밥상공동체에서 중요한 유대의 의미를 갖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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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는 두 명, 혹은 네 명이 대국해서 이기는 사람이 다시 대전하는 토너먼트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편을 갈라 팀을 짜고 윷가락을 던져 선후를 정하는 쟁두(爭頭)로 누가 선을 잡을 지를 정한 다음 놀이를 시작합니다.

이 척사대회의 목적을 '화합과 풍년'이라고 했듯 함께하는 윷놀이 만으로 동민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협동심을 고취하는 효과는 물론,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습니다. 

윷판 바깥의 둥근 모양을 하늘을, 안의 모난 것을 땅을 본뜬 것이라고 한다. 29개의 밭을 찍은 윷판(馬田)의 정중앙 점을 북극성으로 나머지 28개 자리는 사계절에 따른 칠성의 변화를 나타낸 북두칠성을 난타 낸다고 합니다. 또한 지방에 따라 농사의 흉풍(凶豊)을 점치기도 했습니다. 들패와 산패로 나눈 마을사람들이 시합을 해서 산패가 이기면 밭농사가, 들패가 이기면 논농사가 잘된다고 여겼습니다.

윷놀이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어떻게 말을 쓸 것인가 하는 행마법입니다.
 윷놀이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어떻게 말을 쓸 것인가 하는 행마법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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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역전, 인생사 닮은 윷판위의 승부

윷가락을 던져 나오는 끗수를 나타내는 '도·개·걸·윷·모'는 부여(夫餘)의 관직명과 가축의 이름에서 취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도'는 돼지를, '개'는 개를 '걸'은 양을, '윷'은 소를, 그리고 '모'는 말을 의미한다는 것이지요. 끗수는 각 가축의 덩치와 걸음걸이 속도를 반영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윷놀이의 승패가 끗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길이와 한번 더 던지기, 잡기와 업기, 뒷도, 무효 등의 규칙과 말판을 어떻게 놓을 것인가 하는 전략적 선택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존재합니다. 이 변수들이 바로 게임을 재미를 더하지요.

뒷도(일명, 빽도)는 승패의 반전에 중요한 변수입니다.
 뒷도(일명, 빽도)는 승패의 반전에 중요한 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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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도 수많은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윷말 석 동이 모두 나고 상대는 겨우 말 하나가 쨀밭(윷판의 앞밭으로부터 꺾여 여섯째 밭)을 출발한 상황이 역전되어 최종 승자가 바뀌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이날 다반사로 일어났습니다.

무슨 도전이던지 완전히 끝을 내보지 않고는 결과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윷판위의 말처럼 세상사 또한 새옹마(塞翁馬)이기는 마찬가지임이 자명합니다. 

인생의 도전에서 중도 포기는 바로 그 고비 너머에서 기다리고 성공의 차례를 포기하는 것일 수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윷판위의 윷말이나 인생사의 새옹마가 한가지인 것은 경기가 끝난 뒤에야 만이 결과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오쯤에 진행된 개회식을 기다리면서 이웃동네 어르신들이 권하는 소주 두어잔을 받았습니다. 윷마당도 술잔이 두어 순배 돌고 나자 더욱 활기를 띠었습니다.

개회식이 끝나고 각 마을 부녀회가 준비한 '사탱이(경기도 돼지등뼈사투리) 해장국'으로 점심을 했습니다.

돼지등뼈에 동태를 넣어 끓인 '사탱이해장국'
 돼지등뼈에 동태를 넣어 끓인 '사탱이해장국'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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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 건 솥에 끓인 해장국으로 동민들 모두가 점심을 나누는 것은 50년 전 제가 어렸을 적 고향에서의 모습과 다름없었지만 그 국을 준비하고 퍼주시는 분들이 새댁 대신에 모두 할머니들이라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대처로 떠났기 때문이지요.

시골에서는 궂은 공동일을 맡는 이도 젊은 새댁이 없으니 이제는 할머님들이 나서야합니다.
 시골에서는 궂은 공동일을 맡는 이도 젊은 새댁이 없으니 이제는 할머님들이 나서야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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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사대회가 끝날 때까지 임석하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등 뒤로 다시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윷판에 다시 반전이 일어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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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척사대회, #탄현면, #파주시, #윷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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