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5kg이라고 썼으면 사과를 5kg 줘야죠. 상식적으로 포장재 무게가 거기 왜 들어가요?"
서울시 서대문구에 사는 김아무개(32)씨는 17일 사과 구매를 위해 찾은 소셜커머스 '위메프' 사이트에서 이색적인 글을 보았다. 한 판매업자가 택배 거래로 사과를 팔면서 상품 중량 5kg에 택배용 사과 박스 무게를 버젓이 포함한 것.
그는 "택배상자 무게가 포함됐다는 내용이 한참 스크롤을 내려야 나와서 처음에는 포함된 무게인지도 몰랐다"면서 "속았다는 기분이 들어 물건을 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위메프 측은 "소비자들은 표기된 무게가 실중량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과일은 통상 80% 정도는 포장상태의 박스 상태로 무게를 잰다"고 해명했다.
"사과 5kg이면 누구나 사과 무게가 5kg인줄 알지"김씨는 "괜찮다 싶어 사려다가 구매평을 살펴보니 판매자가 중량을 속이고 있다는 내용이 있어 확인해 봤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본 글은 그에 앞서 사과를 구입한 한 구매자가 올린 환불 요청이었다. 이 구매자는 이날 오전 'Q&A'란에 "무게 미달로 환불을 요청한다"는 글을 올렸다. 상품정보는 5kg인데 도착한 사과의 무게를 달아보니 4.15kg 이었다는 것.
판매자는 이 환불 요청에 대해 "포장재 포함 무게라고 표기해놨다"면서 "사과 가격도 4kg 가격으로 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왕복 택배비를 입금해야 환불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자신은 정확한 상품 정보 제공을 했으니 이 고객의 요청은 '단순 변심에 의한 환불'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판매자가 말한 '표기'는 구매 페이지 최하단에 있다. 상품설명을 끝까지 꼼꼼히 읽지 않으면 구매자가 파악하기 어렵다. 김씨는 "상품 설명 윗부분에 무게에 대한 설명 없이 '5kg, 14500원'이라고 적어놓으면 누구나 사과가 5kg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판매자가 '꼼수'를 썼다는 지적이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구매자들이 인식하는 중량은 당연히 제품만의 무게"라면서 "무게 관련 문구를 하단에 배치한 것은 소비자 기만행위"라고 비판했다. 가정에서 구매한 과일의 무게를 직접 확인해보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한 일종의 속임수에 가깝다는 얘기다.
위메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앞으로는 '포장재 포함 중량'이라는 문구를 좀 더 분명하게 표기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쇼핑몰마다 보통 80% 정도는 박스로 완전 밀봉 포장한 상태에서 무게를 잰다"면서 "'5kg 사과'라고 하면 소비자들도 그게 박스 포함 무게라고 알고 사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판매자들도 별도 표기를 안 했다 뿐이지 다들 포장재 포함된 무게로 판매한다는 얘기다.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 역시 일부 페이지에서 비슷한 방법을 쓰고 있었다. 구매 링크 주변에는 큰 글씨로 '5kg'이라고 표기하고 '상품정보' 란에는 그보다 작은 글씨로 '실 상품 중량 4.0kg 이상/ 박스 중량 1.0kg' 이라는 문구를 넣는 수법이다.
티켓몬스터 관계자는 "소비자를 속일 의도는 전혀 없으며 오히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넣은 것"이라면서 "공정위의 상품정보 제공고시는 물론 식약처 가이드라인도 모두 준수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는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물론 오픈마켓들도 실판매자들이 겹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업체가 같은 사정이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쿠팡' 관계자는 이같은 설명을 부인했다. 그는 "업체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쿠팡은 산지 농협이나 농업법인과 직거래를 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실중량으로 과일을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벤더(중간 상인)가 상품을 제공하는 경우에 중량 속이기가 더러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모호한 상품정보 제공고시... 적발 및 조치사례 '0'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식품 판매량은 최근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G마켓'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2년에는 전년 대비 13%, 작년에는 전년 대비 17%가 증가했다. 온라인 식품 구매가 점점 일상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도 '5kg 사과를 샀다'는 구매자와 '4kg 사과를 판 것'이라는 판매자 간 '동상이몽'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온라인 거래 상품 중량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12년 11월부터 온라인 거래 소비자에게 상품 관련 상세 정보를 제공토록 하는 '전자상거래 상품정보 제공고시'를 운용중이지만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고시에 따르면 식품은 수량과 크기, 원산지, 유통기한, 보관방법, 소비자상담 관련 연락처 등의 핵심 정보를 반드시 제공해야 한다. 중량은 '포장단위 별 용량(중량)'으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문구만으로는 포장재 포함 무게인지 식품 자체만의 무게인지 판단하기가 명확하지 않은 셈이다.
소비자에 대한 상품 설명 의무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알아보기 쉽도록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역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실상 상품 설명 페이지 안에 내용을 넣기만 하면 고시 위반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상품 페이지 최하단에만 '포장재 포함' 표기를 넣은 것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고시 위반 사항인지는 따로 판단해 봐야 한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온라인 상품 판매자가 상품정보 제공고시를 위반할 경우 '거래조건 미제공' 명목으로 시정조치를 내릴 수 있지만 아직 그렇게 조치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