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사람들의 말이 맞구나.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날랜 사냥개가 삶기고, 높이 나는 새가 사라지면 좋은 활도 감춰지며, 적국이 패망하면 모신도 당한다더니 이제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기는 것도 당연하다."우리가 흔히 말하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유래다(<고사성어 대사전> 참조). 그럼에도 한신처럼 버림받지 않고 70세 천수까지 누리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누린 이가 있다.
"아! 그날 교외에 나가 전송한 게 평생의 이별이 될 줄이야!"조선 시대 태종 이방원이 직접 애절한 조사(弔辭)를 지어 죽음을 애도한 하륜(河崙·1347~1416). 하륜의 묘는 경남 진주시 미천면 '진양오방산 조선조팔각형고분군(晋陽梧坊山朝鮮朝八角形古墳群)'에 있다. 이곳에는 하륜의 조부모부터 하륜의 묘까지 있다.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한다.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을 받아 옮기지 않아도 되는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된다. 불천지위가 된 대상은 사당에 계속 두면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다. 하륜도 불천지위가 되었다. 그렇지만 부조묘는 진주가 아닌 함양에 있다.
'천 년 숲'으로 유명한 함양읍 내 상림공원을 지나 위천 거슬러 조금만 더 올라가면 푸른 소나무 숲을 만난다. 이 숲은 옛날에 풍수지리상 "마을 앞이 틔어 함양읍이 보이므로 마을에 좋지 않다"고 해 마을 앞 물이 흘러가는 출구 공간을 막은 것으로 진주(진양) 하씨 문중에서 조성한 것이다. 한때 함양지역 각급 학교의 소풍지로 사랑받았다고 한다. 가족 나들이 장소로는 손색없지만, 지금은 위천변이 정비돼 비좁고 구불구불한 농로를 따라 접근하기 어려워 찾는 이가 더 물다. 접근성이 떨어져도 푸른 소나무의 싱그러움은 어쩌지 못한다.
푸른 숲에서 맑은 위천 물소리를 뒤로하고 들어갔던 길을 돌려 나왔다. 숲 건너편 마을은 아주 가깝지만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천마을. 병곡면과 백전면으로 가는 도로 옆으로 살짝 비켜선 마을 안쪽은 오가는 차 풍경과 딴판이다. 진주 하씨 집성촌인 이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상큼한 봄바람과 눈길을 끄는 돌담들이 반긴다. 비록 돌담은 온전히 옛 흙과 돌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시멘트도 있다. 이 또한 세월의 흔적이다.
졸졸거리며 흐르는 개울과 돌담 사이를 걸어 마을 중간으로 나가면 하륜부조묘인 '진산부원군부조묘'를 만날 수 있다. 하륜이 누구던가. 500년 조선의 근간이 될 각종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했던 이가 아닌가. 정도전과 곧잘 비교되기도 하는 하륜. 600년의 세월을 거슬러 만났다.
외삼문인 대문간채와 내삼문, 사당 그리고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는 안채를 겸한 관리사와 아래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은 단청에다 벽화가 그려져 있다. 강산이 두 번 바뀐다는 20여 년이 지나고 다시 찾은 하륜부조묘다. 당시에는 허물어져 가는 담장과 빛바랜 단청이 반겼다. 몇해 전 지원을 받아 담장은 굳건하고 단청은 아름답게 단장했다.
사당은 종손이 보존하며 조상을 봉사하는 곳이다. 부조묘도 그렇다. 그러나 여기 하륜 부조묘는 종손이 아니다. 하륜의 후사가 증손 하후 때 가서 끊어졌다. 영조 때 진주와 함양의 방손들이 의논, 하한통(河漢通)으로 정해 그의 후손들이 현재가지 하륜의 부조묘를 보존하고 봉사하고 있다.
부조묘를 구경하고 돌아 나와 마을 위로 10여 분을 더 걸었다. 용이 우물에서 나무를 올라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용천송(龍天松)이라 부르는 '함양 도천리 소나무'가 있다. 소나무 아래 샘물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 즐겨 떠 마신다. 떠 마실 바가지가 없어 아쉽게 입맛만 다시고 돌아 나왔다. 시원하게 하늘을 올라가는 형상의 소나무 덕분에 기분마저 하늘을 나는 듯 상쾌했다.
이 마을은 애국지사 권도용 선생과 하찬현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애국지사 권도용 선생은 1877년 태어나 병곡면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던 중 일본 순사에게 잡혀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렀다. <경남일보> 주필을 역임하면서 언론을 통한 항일 구국 운동을 전개한 분이다.
또한, 애국지사 하찬현(승현) 선생은 1895년 이 마을에서 태어나 1919년 4월 2일 조국의 독립을 위한 함양 만세 운동을 선두에서 주도하다 일본 헌병의 흉탄에 맞아 시위현장에서 스물 한 살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하셨다. 두 분의 묘도 이 마을에 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멀고 먼 여행지가 아니라 가까운 우리 고장의 숨은 역사 흔적을 찾아 게으르게 걸으며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덧붙이는 글 | 경상남도 인터넷신문 <경남이야기>http://news.gsn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