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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매체 <딴지일보>의 온라인에디터를 겨쳐 시사·정치 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낸 '젊은 논객' 노정태.
인터넷 매체 <딴지일보>의 온라인에디터를 겨쳐 시사·정치 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낸 '젊은 논객' 노정태. ⓒ 권우성

1년이 지났다. 그리고 4년이 남았다.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년을 맞아 많은 매체들이 여러 가지 평가를 내놓았다. 노인기초연금 20만 원 지급,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등 대선 당시 제시했던 공약을 폐기했다는 비판과 외교분야 만큼은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이 60%가 넘었다. 1년 동안 아주 잠깐 50% 이하로 떨어졌을 뿐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공약폐기, 철도 민영화 논란, 개인정보 유출 사태 등 민심을 흔들 만한 악재가 있었지만 별 영향을 받지 않은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 '젊은 논객' 노정태(32)씨는 견고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놓고 "어차피 공약은 지킬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깔려 있으니, 공약을 폐기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박 대통령 취임 1년 평가를 묻는 질문에 "강력한 정치권력으로 기업과 관료를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박근혜가 해도 안 된다는 것만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국민의 이익보다는 여전히 관료와 기업의 이익이 우선되고 있다는 뜻이다.

노씨는 최근 강준만, 진중권, 유시민, 김어준 등 '선배 논객'들의 역사를 다룬 책 <논객시대>를 내놓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상대적으로 젊은 논객이다. 단문의 메시지가 홍수를 이루는 모바일 시대에서 여전히 긴 호흡의 글로 담론을 만들어 내려는 흔치 않은 논객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인터넷 매체 <딴지일보>의 온라인에디터를 겨쳐 시사·정치 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냈다. 지난 26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노씨와의 대담으로 박근혜 정부 1년을 되돌아봤다.

 <논객시대> 노정태 저.
<논객시대> 노정태 저. ⓒ 출판사 반비

- 그동안 쓴 글을 보면 정치적인 내용이 많지 않다. 현실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는 말의 의미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지지하는 정당이 있었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투사해 정치를 바라봤다면, 지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본다. 진보를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런 심정일 거다.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제시대에 사는 기분일 거고, 정의당은 존재감이 사라진 충격이 있을 것이다. 민주당도 여전히 두 패로 나뉘어 서로의 가슴에 박힌 대못을 흔든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구도 정치에 자신을 적극 투사하는 예전 같은 방식의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년이 됐다. 무엇을 평가하는 것에 앞서 먼저 1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박 대통령의 취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취임식은 기억 안 난다. 선거날을 떠올려 보면 독립잡지 <도미노>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결과를 지켜봤다. 오후에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출구조사를 보고 모두가 '푸왁'하고 뿜었다.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충격을 해학으로 승화시켰다. 역사적인 순간을 직접 보고자 광화문으로 나갔다. 고령층 지지자들이 정말 많이 모여 있었다. 그렇게 행복해 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생전 처음 봤다. 해장국집에 갔는데, 거기서도 난리가 났더라. 그때 분위기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본다. 노인들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확실히 (박 대통령 당선 이후) 고령의 남성층들이 기세등등해진 것을 느낀다."

"기업과 관료, 박근혜도 통제 못한다"

- '박근혜 1년', 무엇이 떠오르나? 공약파기 논란이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자영업자들의 '갑을' 문제, 철도노조 파업과 의료영리화 논란, 또 대학가에서 번진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현상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취임 1년을 맞아 언론에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이행을 많이 평가했는데, 후퇴하거나 폐기됐다는 평이 많았다.
"공약 후퇴는 당연한 결과다. 정치라는 게임의 법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망가졌다고 본다. 본래 법칙은, 어떤 정치세력이든 방향은 다르지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약을 제시하고 이를 지켜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가 어떤 자리와 권력을 차지하는 걸 최우선 과제로 두니까, 공약은 지킬 수 없는 게 돼버렸다. 그래서 '왜 지킬 수 없는 공약을 제시했느냐' 따져물으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자들이나 보수언론은 '문재인이 됐으면 지킬 수 있겠냐'고 되물을 거다.

어차피 공약은 지킬 수 없는 거 아니냐는 인식이 깔려 있으니 공약을 폐기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민주당도 선거 때 자신들이 내세웠던 이념방향과 정권을 가졌을 때 실천방향이 달랐다. 대표적인 게 한미FTA 같은 일이다. 납득할 근거를 설명하지 않고 또 다시 선거를 치렀다. 문재인 후보가 당선이 돼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야권의 지지자들은 지금과 같은 강도로 비판했을까?"

 "지금의 청와대에 한국 사회정도의 산업국가를 이끌어 갈만한 지적베이스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경제개혁 3개년 계획'이나 '474' 같은 게 나오는 거다."
"지금의 청와대에 한국 사회정도의 산업국가를 이끌어 갈만한 지적베이스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경제개혁 3개년 계획'이나 '474' 같은 게 나오는 거다." ⓒ 권우성


- 결국 공약이행이 지지를 결정하는 데 판단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박 대통령이 계속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도 그런 차원의 결과로 봐도 될 듯하다. 공약 폐기 논란 이외에 또 우리가 얘기해 봐야 할 '박근혜 1년'은 무엇이 있을까? 기자로서 지난해 연말에 있었던 철도민영화 논란과 철도노조의 파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박근혜 정부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남아있는 공공분야를 민간에 넘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전부터 계속 시도됐던 것으로, 박근혜 정권의 의지라기보다는 정권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경제관료들의 의지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나 역시 철도민영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전에 우선 하나의 사건을 꼽는 게 아니라, 선출된 권력과 관료, 기업의 관계를 봐야 한다. 그런 부분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기대감이 있었다. 이 사람은 기업에 빚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재산을 가지고 있고, 또 과거에 '로얄패밀리'의 일원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이니까 관료들도 주물러서 어느 정도 자기가 원하는 정책방향을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국의 대통령제가 5년 만에 '왕'을 뽑는 거라면, 제대로 '왕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게 낫겠다는 종류의 기대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현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통제력이 있는지를 떠나서, 지금의 청와대에 한국 사회 정도의 산업국가를 이끌어 갈 만한 지적 베이스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경제개혁 3개년 계획'이나 '474' 같은 게 나오는 거다. 그런 헛소리를 어느 부처와 상의도 없이 청와대가 단독으로 던졌다. 신년 기자회견에 처음 이야기하고 두 달 만에 만들어낸 경제개혁 3개년 계획이 박근혜 청와대의 현재를 정확히 보여준다. 관료조직을 이끌어야 할 정치가 죽어 있다는 거다. 심지어 박근혜가 해도 안 된다는 얘기다."

- 비슷한 사례로 박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떠오른다. 당시에 고용율 70%를 국정의 최대 과제로 제시했는데, 그건 대선 당시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은 얘기였다. 물론 고용율 70%는 중요한 과제지만, 그 전에 선거에서 이야기했던 재벌개혁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차별대우에 징벌적 과징금 제도 같은 공약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오히려 비정규직 확산 우려가 있는 '시간 선택제 일자리'가 핵심 사업이 됐다. 이 역시 기존 관료들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정치가 사회의 가장 큰 세력인 기업과 관료를 통제할 힘이 없다는 거다. 정치인들은 자기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기업과 관료들에게 끌려 다니면서 '국민을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계속 그렇게 거짓말을 하다 보면 자기도 그 거짓말에 속게 된다."

- 앞서 이야기가 나온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돌아가 보자. 박근혜 정권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탄압했다. 그럼에도 유난히 파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컸다. 대학생들의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도 이를 계기로 나왔고, 이후에는 노동자들의 손해배상가압류 문제를 해결하자는 '손잡고'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명박 정부 당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로 시작된 '희망버스'의 모습과도 겹친다. '노동'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연결할 수도 있지만 개별 사건의 맥락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손잡고'의 경우는 한참 전에 시도됐어야 했는데 상당히 늦었다. '안녕들하십니까'와 '철도파업'의 맥락도 다르다. 우선 철도파업에 지지가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 경찰이 크게 물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울시민들이 가지는 경찰에 반감이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촛불에 나왔던 사람들은 경찰의 폭력을 학습했고 그런 경찰이 민주노총을 침탈했다가 오히려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서울의 지하철이 서지 않았다는 것도 파업 지지여론이 유지된 요인 중에 하나다. 비슷한 시기에 파업에 들어가려고 했던 서울지하철이 협상타결을 못하고 지하철이 운영이 안 됐다면 지지여론은 유지되기 어려웠을 거다."

- '안녕들하십니까'는 사회에 20대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흐름이 생겼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어떤가? 앞서 이야기 한 '촛불을 경험한 세대'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뜨거운 사건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20대가 무언가 하기만 하면, 그 세대가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은데, 결국 과거 386들이 자기들의 대학생 후배를 찾으려는 시도가 아닌가 의심했다. 물론  대학생이 대학생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가지고 '안녕들하십니까'가 20대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비판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대자보라도 붙이는 게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쟁으로 보자면 100만 대군이 패배해 99만 명이 죽고 1만 명이 살아 돌아가는데, 중간에 적군을 만나 100명을 사살했다고 전과를 올렸다 한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 대학사회가 이미 후퇴할 만큼 후퇴해 '안녕들하십니까'가 보여준 흐름의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인가?
"대학이 대안사회로 기능하던 시대가 이미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대자보가 개인의 이름으로 붙었다. 개인들도 실명을 거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이걸 보면서 기뻐할 수 있는가. 참혹한 현장이라고 생각했다. 개별적인 이야기가 어떤 경우는 아름다웠고 의미가 있었지만, 대자보를 통해 오프라인에서 담론을 생성하려는 게 의미 있다는 평가와 별개로 과거의 대안사회로 여겨지던 대학이 얼마만큼 후퇴했는가를 보여준 게 아닌가. 그것이 20대라는 세대의 담론을 보여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명박산성'보다 진일보한 '기춘산성', 컨테이너에 비할 게 아니다"

 "기업과 관료가 사회를 장악한 사회에서 할 일이 없어진 정치가 국민들에게 담을 쌓고 도망가는 거다. 정말 최악의 수다."
"기업과 관료가 사회를 장악한 사회에서 할 일이 없어진 정치가 국민들에게 담을 쌓고 도망가는 거다. 정말 최악의 수다." ⓒ 권우성


- 다시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철도노조 파업에 지지가 모이고, 대학생들의 불만이 쌓여 가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낄까? 사람들이 민주노총에서 망신을 당하는 경찰을 보고 쾌감을 느꼈을 거라고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손해본 게 없어 보인다. 오히려 노조를 싫어하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잘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결국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이 정치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IMF와 시작한 김대중 정부부터 사회의 사적인 영역은 기업이, 공적인 영역은 관료들이 장악해왔다. 관료들이 나중에는 기업으로 가게 되니까 둘은 공생관계다. 이러한 상황을 정치를 바꿔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작용한 게 '노풍'이다. 그때만 해도 정치를 통해 한국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대중들에게 강하게 작용했다. 그것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진보정당이 국회에 진출하게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사회를 개혁하지 못했다. 오히려 기업과 관료들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한미FTA를 추진했다.

그러는 사이 정치의 힘은 점점 약화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APEC 반대 시위를 막기 위해 부산에 쌓았던 컨테이너벽은 이명박 정부에서 촛불을 막기 위한 '명박산성'으로 변했다. 기업과 관료가 사회를 장악한 사회에서 할 일이 없어진 정치가 국민들에게 담을 쌓고 도망가는 거다. 정말 최악의 수다. 그렇게 하면 국민들은 다음 선거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대의민주주의가 주는 안정성을 바탕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통치의 기술이 생긴 거다. 박근혜 정권은 어떠냐. 강한 정치권력이 돼서 이걸 깰 수 있지 않을까 약간 기대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명박산성보다 더 강력한 '기춘산성'을 쌓고 그 뒤에 숨어버렸다."

- 얘기한 대로 김기춘 비서실장의 청와대 입성이 박근혜 1년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기점이 될 것 같다. 정권 초기 윤창준 전 대변인 사건이나 장관 인선문제 등으로 흔들리던 상황이었는데, 김 비서실장이 들어간 이후로 공안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정권의 방향이 잡히는 모습이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를 뭉개고 간 것이나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사건, 통합진보당 정당해선청구 같은 게 김 비서실장의 작품이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돼서 무엇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담을 쌓는 걸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기춘산성'을 쌓아버리니까 이명박 정부의 '명박산성'보다 더 진일보한 관리통치의 기술이 되는 거다. 김 비서실장은 사법과 검찰에 포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 한 명의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법괴'(法怪)라는 말을 썼다.

그의 역사는 한국 법조계의 일그러진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유신헌법부터 시작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서는 법무부장관이었고, '우리가 남이가' 초원복집 사건 등, 온갖 종류의 공안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행정수도 이전 위헌청구 소송에서 대표 변호사였다. 한국 역사에서 일어났던 거의 모든 통치 수단을 겪어본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의 보호막이 된 것이다. 컨테이너 박스와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법을 가지고 국민을 완전히 통제하겠다는 얘기다. 기업과 관료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내버려두고 국민이 기어오르면 '기춘산성'으로 때려잡겠다는 선언과 같다. 그러면 정치의 역할은 더욱 축소되고 힘을 점점 잃게 된다."

"철도파업, 노동자와 시민이 정치를 개입시킨 것"

- 박근혜 정부에서 정치의 힘이 더욱 약해질 거라는 지적인데, 현재 정치권에서는 계속 '정치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무슨 정치개혁이 될 수 있나? 오히려 개혁할 때 썩어 있는 토호세력을 걷어내고 외부에서 그걸 타파할 누군가를 꽂아 넣어야 할 때도 있다. 무조건 상향식 선출이 옳다는 건 정당정치를 더욱 약화시킬 뿐이다. 부산에 있던 컨테이너가 광화문으로 왔고, 이제는 청와대 안에 들어가 있다. 한국의 정치는 이제 더 물러설 곳이 없다. 지구당을 부활시키고 하향식 공천을 하더라도 정치의 역할을 복원시키는 게 중요하다. 정치를 개혁하는 게 아니라 정치가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 관료조직과 사기업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박근혜 정권이 '기춘산성' 뒤에 숨어 있는 이 상태가 계속되면 끝장이다."

- 그렇다면 지금 박근혜 정부가 정치를 말살하는 공안통치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공안통치는 야권이나 민중이 정권을 뒤집을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있을 때 공권력을 이용해 억누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야권이 그런 힘을 가진 것도 아니고 사회적 분위기가 그렇지 않음에도 왜 공안정국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는지 의문이다.
"군중의 맛을 한 번 봤기 때문이다. 수도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해서 청와대 앞까지 넘실거릴 정도의 소요가 발생하면 위기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야당의 힘이 없다고 해도 미리미리 막아 놓고 있는 거다."

 "촛불은 마치 당장이라도 광장에서 직접민주주의가 실현 가능하다는 불가능한 바람을 사람들에게 집어넣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촛불은 마치 당장이라도 광장에서 직접민주주의가 실현 가능하다는 불가능한 바람을 사람들에게 집어넣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 권우성


- 촛불을 통한 학습은 젊은 세대만 한 게 아니라 정권도 했다고 봐야 할 거 같다.

"맞다. 오히려 촛불을 들고 나왔던 시민들은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 지난해 연말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 때도 별다른 일이 없이 마무리되니까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 촛불을 들고 나와도 아무것도 안 바뀐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게 된 거다. 촛불은 마치 당장이라도 광장에서 직접민주주의가 실현 가능하다는 불가능한 바람을 사람들에게 집어넣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 헛된 바람이 아니다. 다시 철도 파업을 이야기 하자면 그렇게 힘든 상황 속에서 철도노조가 버텨냈고, 국민들이 지지했다. 민주노총은 연대파업을 성사시켰다. 그래서 김무성, 박기춘 같은 정치인들이 개입해 사안을 국회로 가져갔다. 관료들이 수서KTX라는 가짜기업을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을 갈라먹으려고 할 때, 노동자와 시민들이 난리를 쳐서 정치를 개입시킨 상징적인 사건이다.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도 그게 정치의 역할이고 그래야 국회의원을 뽑은 의미가 있다."

- 4년이 남았다. 무엇을 해야 할까?
"'기춘산성' 얘기를 많이 했는데, 왠지 몸이 서늘해졌다. 이것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등용한 목적이다. 이명박 정권 말에 이빨 빠진 정권을 상대로 그럴 게 아니었다. 지금이야말로 '쫄지 말라'고 서로 이야기해야 한다. '법괴'에게 물리면 아프고 힘들겠지만, 지금이야말로 쫄면 안 될 때이다."


#노정태#논객시대#박근혜#이명박#김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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