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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기간제)교사를 해 오는 나는 올해에는 학교를 구하지 못했다. 맞벌이에서 외벌이가 되었다. 아내가 출근하고 돌봐야 할 아이들과 남게 되는 첫 번째 날이다.

개학이다. "빨리 아빠 깨워라"라는 아이들 엄마의 한마디에 막내가 오고, 잠시 후 둘째딸이 왔다. 오전 6시30분 전에 일어나는 내가 우리집에서는 잠꾸러기로 통한다. 어김없이 오전 6시 40분에 출근길에 오르는 집사람 덕분에 우리가족의 아침식사는 오전 6시10분이다.

출근하기 전에 애들하고 나에게 집사람은 이것저것 주의사항을 이야기하였다.

"이건 진이 준비물이고, 이건 우리 이쁜이(둘째 딸)준비물이고 물통 챙기고 오늘 추우니까 이 옷 입히고..."

나는 알겠다고 했지만 막막했다.

나와 애들만 남았다. 둘째 딸의 머리묶기는 나를 좌절시켰다. 포기했다. 머리묶기는 첫째딸의 도움으로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막내(초등2학년)가 학교에 가지고 갈 준비물 목록은 어마어마 했다. 스스로 챙기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어엿한 2학년이지 않은가. 등교시간은 다가오고 준비는 더디기만 하고.

시간이 되어 일단은 둘째와 막내의 가방을 양손에 들고 초등학교로 아이들과 함께 갔다. 저학년 엄마들은 나처럼 아이들 가방을 들고 함께 등굣길에  있었다. 둘째가 아빠랑 학교같이 가는 건 우리뿐이라면 좋아했다.

집으로 왔다. 첫째는 30분 정도 더 있다가 학교에 간단다.

"아빠 딸 입학식 언제야? 아빠 절대 오지마! 와서 사진 찍고 하지마, 안 와도 돼"
"알겠어."

딸의 말을  듣기전까지는 갈 생각이 없었다. '애들이 학교 다 가면 30분만 푹 자야지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의 일정은 딸이 "절대 오지마"라고 하는 그 순간 바뀌었었다. 어질러진 거실을 정리하고 설거지도 끝내고 면도도 하고 시계를 보니 입학식 10분 전이었다.

전업주부의 아침시간이 이렇게 빨리간단 말인가? '화장 할 필요 없는 남자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그리멀지 않은 딸의 중학교에 정확히 오전 10시에 도착했다.

강당에는 학부모(주로 엄마들이 많았다)들과 선생님, 그리고 학생이 입학식을 위해 모여 있었다. 딸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딸의 눈길이 닿지 않는 것에서 잘 숨어서 입학식을 지켜보았다.

강당에서의 입학식 위쪽부터 부장교사 소개, 교장선생님 훈화, 밴드축하공연임
 강당에서의 입학식 위쪽부터 부장교사 소개, 교장선생님 훈화, 밴드축하공연임
ⓒ 송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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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순에 의해 개식사를 시작으로 담임선생님 소개 그리고 교장선생님 훈화로 진행되었다. 입학축하 공연으로 선배들의 플루트 연주가 있었고 밴드부의 공연도 있었다. 고음불가였던 밴드부 남학생들은 꿋꿋이 노래를 끝까지 불러주어 큰 웃음을 주었다.

▲ 밴드부의 축하공연
ⓒ 송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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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에서 입학식이 마치고 교감선생님과 교무부장선생님이 학교설명회가 열리는 1층으로 학부모들을 안내하였다. 적지않게 보이던 아빠들이 사라졌다. 학교설명회가 있었던 교실에는 거의가 엄마들이었다.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설명회를 진해하는 선생님은 자꾸 "우리 어머니들~"로 말을 이어갔다.

'인성교육이 중요하다. 책을 많이 읽혀라. 학원보다는 학교를 믿어라. 우리 선생님들을 신뢰해달라. 꼭 오늘 집에 가서 우리학교가 정말 좋고 담임선생님도 정말 좋다고 꼭 말해달라. 그렇게 믿음을 줘야 학교에서 교육이 이루어진다. 방과 후 학교는 이렇다. 생활지도는 이렇게 하고 있다.'

등의 내용이 "어머니들~"로 시작해서  이어지고 이어졌다. '여기 아버님도 있었요'라고 하고 싶었다.

학교설명회가 있었던 교실에는 아버지는 거의 없었다.
 학교설명회가 있었던 교실에는 아버지는 거의 없었다.
ⓒ 송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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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중에 학부모 면담이 있다'는 진로상담부장선생님의 말에 귀가 번쩍했다. 그때도 내가 와야 되는가?  엄마들 틈에 쑥쓰러운데.

"첫째 딸의 말을 들을 걸,학생 3명인 전업주부는 너무 벅찬 걸. 정말 피곤하네. 정신이 없네."

별 생각이 다 드는 하루였다. 방금도 오후 4시에 갈 둘째의 피아노 차를 놓쳤다. 아내가 너무 기다려진다. 빨리와 제발.


태그:#입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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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폐지, 헌옷, 고물 수거 중 하루하루 살아남기. 콜포비아(전화공포증)이 있음. 자비로 2018년 9월「시(詩)가 있는 교실 시(時)가 없는 학교」 출간했음, 2018년 1학기동안 물리기간제교사와 학생들의 소소한 이야기임, 책은 출판사 사정으로 절판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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