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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참 잘한 일이다. 간만에 정치에서 희망의 빛을 보게 된다. 3월 2일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이 전격적으로 신당 창당을 합의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해 11월 28일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 추진위원회' 출범과 정치세력화를 공식 선언한 날, 나는 <오마이뉴스> 기고(안철수 '중도' 신당은 새누리당 선거 도우미 될 것)를 통해 안철수 신당의 '중도신당, 제3당' 노선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안철수 신당은 민주당을 흡수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안 신당도 미래가 있고, 민주당도 긴장한다. 그리고 역으로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을 흡수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에 흡수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중도정당, 제3당' 노선은 야권을 분열시켜서 새누리당에게 어부지리를 주겠다는, 새누리당 도우미 노선일 뿐이다."

그런데 안철수 신당은 정치세력화 선언 세 달 만에, 그리고 지난 2월 17일 발기인대회를 열어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킨 지 보름 만에 민주당과의 통합을 결정했다. 과연 누가 흡수하고, 누가 흡수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새누리당과 함께 양당구도의 한축 담당할 강력 야당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은 지난 2일 국회 사랑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6.4 지방선거 기초선거 '무공천'을 선언하며 2017년 정권교체를 위한 신당 창당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 신당 창당 합의한 김한길-안철수 "2017년 정권교체 할 것"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은 지난 2일 국회 사랑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6.4 지방선거 기초선거 '무공천'을 선언하며 2017년 정권교체를 위한 신당 창당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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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 결정은 중요한 정치사적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통합신당(공식 명칭은 없지만, 편의상 '통합신당'이라고 쓴다)'의 등장으로 야권은 역대 가장 폭넓은 정치세력을 포괄하게 되었다. 정의당과 통합진보당 외에는 사실상 모든 민주·개혁·진보·중도세력을 포괄하는 정당이 되었다. 보수 세력을 확고부동하게 대변하는 새누리당과 겨룰 수 있는 강력한 정당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민주·진보세력이 이 정도로 강한 정당을 가졌던 것은 2000년 출범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의 새천년민주당 이후 처음이다. 이후 민주당은 새 정치라는 명분으로 걸핏하면 탈당하고, 분당하고, 신당을 만들고 또 합당했다. 그 결과 이후 민주당은 민주·진보의 중심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민주당이 스스로를 소중해하지 않으니 그 누구도 민주당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2003년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 2007년 열린우리당 분당과 중도개혁통합신당 창당, 2008년 일부 친노 세력 탈당, 2011년 민주당 밖의 안철수 현상 발생으로 이어지면서 민주당의 중심성은 해체되고, 당은 무력화되었다. 물론 민주당은 계속 통합을 모색했고 또 계속 통합을 진전시켰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분열 상황은 쉽게 극복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통합신당의 등장으로, 보수 세력의 확고한 정치적 대변자인 새누리당과 함께 양당구도의 한축을 담당할 강력한 야당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 분열상황에 허덕였던 민주진보진영이 하나의 단일정당으로 통합하여 명실 공히 양당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새누리당은 분열과 탈당의 역사를 어떻게 극복했나? 

정당의 분열과 탈당, 이어지는 통합의 역사는 민주진보진영만의 것은 아니었다. 보수진영도 한때 탈당과 분열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위기를 넘어 새누리당은 보수의 중심으로 확고히 섰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3번의 위기를 맞았지만 그 위기를 극복해냈다. 세 번의 위기는 1997년과 2000년, 그리고 2002년에 있었다.

첫 번째, 199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경선에 불복한 이인제 후보가 탈당해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대통령후보에 출마했다. 이인제 후보는 대선에서 19.2%를 득표했으며, 특히 부산(30%), 경남(31%), 강원(31%), 충북(29%)에서 높은 득표를 해, 고작 1.53%p 차이로 신승한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당시 보수진영 유권자들에게 이인제 후보의 탈당과 출마로 인한 김대중 대통령 당선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 일이었는지는, 이후 비슷한 분당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마다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압도적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보수의 분열은 2000년 4월 총선에서 다시 발생했다. 그것은 민주국민당의 창당이었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공천에서 당내 중진들을 대거 탈락시켰다. 조순, 김윤환, 이기택, 이수성, 김광일, 신상우 등 그야말로 쟁쟁했던 중진들은 공천에서 탈락하자 한나라당을 탈당해 민주국민당(민국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민국당은 지역구 1명, 비례대표 1명을 당선시키는데 그치고 말았다.

한나라당이 보수의 중심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음을 최종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2002년 지방선거 때 '박근혜 신당'의 참혹한 실패였다.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사건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200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제왕적 총재'라고 비판하면서 탈당해 박근혜 신당인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었다.

한국 보수의 원류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서 엄청난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박근혜 의원이 만든 신당인 '한국미래연합'은 당시 지방선거에서 성과를 거둘 것으로 전망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박근혜 신당은 광역·기초단체장, 지역구 광역·기초의원을 단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단지 비례대표 광역의원 2명(대구·경북 각 1명)만을 당선시켰는데, 정당투표 득표율도 대구 8.25%(한나라당 76.23%), 경북 5.46%(한나라당 74.9%)에 불과했다. 그 외 지역에서는 '한국미래연합'이 있는지도 몰랐다. 결국 박근혜 의원은 그해 11월에 한나라당에 복당하여 이회창 후보 선거운동에 참여한다.

이런 뼈아픈 실패의 경험이 있었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대선후보 경선 패배 이후에도 탈당하지 않고 여당 내 야당으로 남아 있었다. 자신은 한나라당에 있으면서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한나라당 밖에서 '친박연대'라는 정당을 만드는, 정말 세계정당사에 보기 드문 기이한 상황을 연출하면서도 절대 한나라당을 탈당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군사독재의 시녀에 불과했던 부끄럽고 형편없는 역사를 가진 새누리당이 지금은 보수의 중심으로 확고히 섰다. 그리고 그러한 보수정당의 힘이 있었기에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도,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도 가능했다.

민주당의 분열과 무력화, 2007년과 2012년 대선 패배의 원인

지난 2012년 12월,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경기 파주 교하중앙공원 유세현장에 등장하며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모습.
 지난 2012년 12월,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경기 파주 교하중앙공원 유세현장에 등장하며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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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새 정치라는 명분으로 걸핏하면 탈당하고, 분당하고, 신당을 만들어 분열을 초래한 민주진영과 야당생활 10년 동안 갖은 정치적 위기를 겪으면서도 한나라당이라는 단일정당을 중심으로 극복한 보수진영, 이들의 승부를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흔히 2007년 대선과 2012년 대선에서 민주진영이 패배한 이유를, 2007년 대선은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서 졌고, 2012년 대선은 문재인 후보가 너무 진보적이어서 중도를 가져올 수 없어서 졌다고 평가한다. 물론 그런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과도한 단순화요, 참으로 편한 평가일 뿐이다.

만일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서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패배했다면, 정작 대통령 당선자가 노골적으로 시장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전면에 내걸었던 이명박 후보였던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패배가 너무 진보적이어서 그랬다면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와 같은 진보적 공약을 민주당보다 앞장서 내걸어서 당선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나는 2007년과 2012년 대선 패배를 되돌아보면서 핵심적으로 반성해야 할 것은 정당의 문제요, 리더십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민주당과 민주진영이 분열되고 중심성이 해체되어 무력화되었기에 진 것이다. 당의 권력의지가 미약했기에 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과 같은 문재인 후보의 2012년 대선에 대한 반성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대선에서 보여준 건, '민주당만으로는 안 되지만 민주당 없이도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정당정치의 현실입니다. … 민주당에 절망해서, 또는 민주당 갖고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정당을 만들고자 한 노력들이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2002년 대선 이후 만들어진 개혁당과, 실패로 끝난 열린우리당의 실험,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만들어진 국민참여당이 같은 맥락의 노력들이었습니다. … 대안정당을 만들려는 노력이 상당한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현실정치 속에서 압도적인 새누리당과 맞서려면 결국은 언젠가 민주당과 힘을 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 민주당을, 진화한 민주주의에 부응하는 정당으로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2017년에 패배를 되풀이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문재인 『1219 끝이 시작이다』2013. 바다출판사. 359∼362)

"저는 열린우리당 창당이 그 시기엔 불가피한 일이었을지 몰라도, 그 뒤 민주 진영의 분열이나 호남에 준 상처를 생각하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위의 책.  94쪽)

더 이상 '새 정치'의 이름으로 분열 없어야

한국 선거제도의 특징은 단순다수제로, 양당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선거제도와 소선거구제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모두 단순다수제로, 한 표라도 표를 더 얻은 후보가 모두를 차지하는 선거제도다. 한국뿐만 아니라 이런 단순다수제를 택한 미국, 영국, 일본은 모두 양당제로 귀결된다.

여기에 한국 정당구도의 특징은 보수정당의 압도적 우위다. 새누리당은 언제나 40% 전후의 압도적 지지율을 차지하는 제1당이다. 이러한 한국 선거제도의 특징인 단순다수제와 정당구조의 특징인 새누리당 압도적 우위가 결합하면 그 결과는 모든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항상 압도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막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40% 지지의 보수정당 외의 다른 정당들이 연대하고 단일화하면 보수정당과 겨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1997년 대선에서는 DJP연대로,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로 민주정부 10년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처럼 선거연대와 단일화가 있었기에 정권교체가 가능했다. 정권교체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다. 권력이 잘못했는데도 정권교체를 할 수 없다면 권력은 국민을 우습게 안다. 우리 국민들은 그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선거연대와 단일화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뤘고, 한국 정치제도의 한계를 뛰어 넘었던 것이다.

때문에 나는 단일화는 한국 민주주의 역사의 자랑이요, 한국 민주주의의 보루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렇게 선거 때마다 단일화를 하려면 결국은 당을 함께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유권자에 대한 도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새누리당 역시 단일한 이념의 정당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모순적으로 결합된 정당이 새누리당이다. 국가주의라는 집단주의 철학과 신자유주의라는 개인주의 철학이 함께 지도철학인 정당이 새누리당이다. 그 모순을 통합시켜주는 힘은 기득권층을 대변하겠다는 현실적 이해관계일 뿐이다.

야권도 다양한 노선이 있지만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민주당처럼 넓게 포괄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은 '새 정치'라는 명분으로 분당하고, 탈당하고 분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새 정치'를 내세우지만 행태는 오히려 가장 큰 구태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은 의도와 무관하게 보수 세력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말 뿐이다. 또한 정치에서 혁신은 당의 중심성과 리더십이 제대로 서야 가능함을 명심해야 한다. 분열되고 해체되고 중심성과 리더십이 사라지면 혁신도 새 정치도 불가능하다.


태그:#통합신당, #안철수, #민주당, #김한길,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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