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는 3월 10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10일(월) 하루 동안 종일 파업(필수진료 제외)한 뒤 11일부터 23일까지는 준법진료를 실시한다. 준법진료란 환자 15분 진료, 전공의(대학병원의사) 주 40시간 근무 등을 포함한다. 의사들의 파업. 오랜만이다.
파업 왜 하나? 지난 해 박근혜 정부의 정책(제4차 투자활성화대책 및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추진이 의료계의 반발을 샀다. 대한의사협회는 왜 정부와 척을 지게 되었는지 성명서를 통해 밝히고 있다.
다음은 <총파업 결정을 위한 전회원 투표에 부쳐>의 일부분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원격진료(핸드폰 진료, 전화 진료, 컴퓨터채팅 진료 및 이메일 진료를 허용)와 사무장병원의 활성화 등 일련의 의료영리화 정책(제4차 투자활성화대책 및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저지하고, 나아가 저부담/저보장/저수가의 왜곡된 건강보험제도와 잘못된 의료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지난 해 대정부투쟁을 천명하였고 지난 1월11일에는약 500여명의 의료계 대표자들의 총파업 출정식을 가진 바 있습니다. " 원격진료는 의료체계의 질서체계 무너뜨릴 수도
원격진료란 얼굴을 맞대고 진료하는 대면진료가 아닌 통신장비를 통해 원거리에서 진료를 하는 것이다. 의사인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 오지의 환자들에게는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닐까? 그런데 의사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원격진료 발상을 '무지하'다고 쏴붙인다.
초진이라고는 하지만 통신장비를 통한 진료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나 고령 환자들은 IT 기기에 익숙지 않아 원활한 진료가 어렵다는 점 등이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원격진료와 환자의 절박함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의료체계의 균열을 초래할 수 있고 그것이 불러올 파장이다. 다음 두 가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시고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자.
- 당신은 연봉 3000만 원짜리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습니까? 3억짜리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싶습니까?- 동네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나서 수술을 하거나 정밀 진단을 받은 적이 몇 번이나 있습니까?동네 의원으로서는 사활이 걸렸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네의원보다는 대학병원을 더 신뢰한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감기에 걸려도 대학병원 응급실부터 찾는다. 이른바 대학병원 쏠림현상이다. 동네의원보다는 대학병원을, 지방 대학병원보다는 서울 소재의 대학병원을 선호한다. 이런 현상에 KTX 등의 교통기술의 발전은 주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통신과 의료기술의 결합 역시 거리상의 제한을 없애고 환자들의 쏠림 현상을 가속화했으면 했지 늦추지는 않을 것이다.
또 동네의원을 찾는 환자들은 수술이나 정밀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경증의 환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을 들여다 보자면 청진기 한 번 몸에 대지 않고 5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문진(문답으로 진료)으로 진료가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현실에서 거리에 상관없이 환자와 의사를 직접 연결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현실화된다면 환자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가깝기 때문에 여전히 동네의원만 찾게 될까? 안방에서 종합병원 의사를 만나고 싶어할까?
물론 현재 법상으로도 1차(동네의원 혹은 보건소), 2차 병원(**병원 이름을 단 병원 중 소규모 병원)을 거치지 않고 초진에 3차병원(대규모 종합병원, 소위 대학병원이라 부르는 곳)을 찾아 가서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가 어렵게 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원격진료가 활성화되면 물리적 접근성에서 현격한 차이가 없어지고 어차피 동네의원에서는 문진이 많다면 통신상으로 진료를 받나 얼굴 보고 진료를 받나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게다가 환자는 아쉽고 갈급한 사람들이다. 사람이 절박하면 지푸라기도 튼튼한 걸 잡고 싶어한다. 조금이라도 신뢰가 높은 쪽으로 기우는 마음은 인지상정 아닐까?
그 상황에서 3차 병원에 걸려있는 제한이 얼마나 유효할까? 쏠림을 더욱 쉽게 만들어 놓고 다시 그것을 막는 정책과 구사하고 장벽을 세운다면 환자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문은 활짝 열어놓고 들어오지 말라고 하면 누군들 곱게 수긍을 하겠는가.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원격진료는 1차, 2차, 3차 병원마다 역할을 달리하여 병의 경중에 따라 신속하고 적합한 진료를 받게 하는 현재의 진료체계를 무시하고 환자를 직접 3차 병원의 의사와 연결시켜 진료 체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길을 열어 놓는 꼴이다. 3차 병원 선호가 높아질수록 동네의원은 입지가 좁아진다.
동네 의원('개원의'라고도 한다)이 살아남을 길은 뭘까? 대학종합병원의 그늘로 들어가는 길 밖에 없지 않을까? 요즘도 동네 의원에 가 보면 어느 어느 대학종합병원과 연계하고 있다는 딱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걸 쉽게 볼 수 있는데 그 연계가 심화되면 간판부터 환자분담까지 대학종합병원의 하청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 이른바 프랜차이즈 병원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현행법상으로는 대학종합병원이 프랜차이즈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다. 병원은 비영리단체이어야 하므로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규모를 늘린들 추가 이윤이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사무장병원으로 예측할 수 있는 자본의 식성마치 원격진료의 확산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자본의 입장에서 고려하기라도 한듯 정부 정책은 병원 영리화가 가능한 방법을 열어주려고 한다. 자회사를 이용해 투자와 수익창출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제한을 둔다고는 한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나서 울타리치고 빗장을 거는 건 억지스럽다. 제한에 목적이 있다면 그냥 문을 닫아두면 되는데 말이다.
이윤이 생기는 곳에 자본이 몰린다. 공공의 목적에 반할 수 있는 경우 자본을 차단하기도 하지만 자본의 힘은 강력해서 그 차단선을 뛰어넘기 일쑤다. 사무장 병원이 그 좋은 예이다.
원래 사무장은 원무과장이나 총무과장처럼 병원 사무를 총괄하는 직책을 말한다. 그런데 '사무장병원'의 사무장은 '돈줄' 혹은 '실절적인 주인'의 다른 말이다. 의료법상 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할 수 없는, 의사 면허가 없는 비자격 개인이 자격 있는 의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실질적인 병원 설립과 운영을 하는 경우 그 운영자를 사무장이라고 하고 그런 사무장이 주인인 병원을 사무장병원이라고 많이들 부른다. 엄연히 불법이다. 하지만 동네의원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정부는 자회사에 한정해 영리 추구를 하면 문제없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사무장 병원처럼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편법 혹은 불법의 틈새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병원의) 자회사가 병원에 막대한 자금을 빌려주면 어떻게 되나? 고리대로 이자를 받아챙기면? 병원은 적자를 보겠지만 이윤추구가 아니니 문제가 없는 거 아닌가? 이것 말고도 방법은 많다. 병원이라는 껍데기 속의 인력, 장비, 시설을 자회사가 채워 넣는다면? 그리고 거기서 이윤을 낸다면? 그건 병원은 이윤을 내지 않으니 상관없는 것인가? 병원운영자는 그 이윤이 누구 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할까?
불법인데도 자본은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병의원을 운영하려고 손을 뻗치는 게 현실이다. 어떤 제한을 두든 영리화의 길을 열어준다면 탐욕스러운 자본이 거기로 몰려갈 것은 당연하고 거대한 자본(대기업)이 살길이 막힌 자영업자(동네의원)를 집어 삼키는 건 너무도 익숙한 광경이고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의원자영업자의 몰락 가능성은 여러 단계의 가정을 전제로 한 예측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사자는? 상상으로라도 그게 가능하다면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 일이 일어날 일말의 여지라도 막고 반대하는 게 또 당연하지 않을까?
의사들이 파업한다고 하니 누군가는 또 그럴 것이다. '밥그릇 싸움'한다고. 그런 사람들에게 묻자. '아니 그럼 당신은 누군가 당신 밥그릇을 빼앗고 박살내겠다는데 곱게 쳐다만 볼 건가?' 연봉이 높다고 해서 파업을 하면 비난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밥그릇은 크든 작든 악착같이 달려들어 싸우고 소리쳐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의사들이 파업을 하고 휴진을 하면 당장 나와 내 아이가 힘들다. 안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자영업자 의사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지켜냈으면 좋겠다. 자본에 휘둘리는 의사보다는 고액 연봉 챙기고 자기 병원에서 자존심 지키며 진료하는 의사에게 나와 내 아이의 건강을 맡기는 게 조금이라도 더 낫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 블로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