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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홍석천 편의 한 장면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홍석천 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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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이 데뷔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되었다. 커밍아웃 한 지는 14년. 한국 연예인 최초로 커밍아웃을 하면서 많은 풍파도 겪었지만, 지금은 어느덧 성공한 사업가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게이 방송인으로서 인정 받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그 스스로 방송 프로그램에서 말했듯이 "왜 하필이면 니가 커밍아웃을 했냐. 좀 더 잘생긴 사람이 커밍아웃 하지"라는 비아냥. "원빈이나 장동건처럼 잘생긴 사람이 최초로 커밍아웃 했다면 게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이미지가 더 좋았을 텐데"하는 원망 섞인 말들. 더구나 그건 외부가 아닌 동성애 커뮤니티 내부에서의 목소리였기 때문에 그에게 더 큰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나는 무해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하는 홍석천

1990년대 인기 시트콤이던 <남자 셋 여자 셋>에서 '쁘아종'이라는 여성스러운 캐릭터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그였다. 이후의 방송에서도 이러한 캐릭터 설정은 거의 변함이 없었기에, 일반 대중들이 게이들은 다 여성스럽고 가벼운(?) 존재처럼 보이는 것을 우려한 목소리도 있었다.

방송에서 그는 과장되게 여성스러운 말투를 쓰고, 자신의 정체성을 희화화하는 듯 보이지만, 나는 방송인으로서 사회에 최대한 적응하려 노력하는 모습이라 생각한다. 방송인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기쁨과 웃음, 기분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홍석천이 만약에 진지하고 남자다운 말투로 이야기한다면 반응이 어땠을까?

그가 방송에서 보이는 캐릭터는 사실 웃음을 주기 위한 것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중들에게 끝없이 "나는 무해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암묵적인 메시지는 오히려 그의 캐릭터가 더 과장되고 희화화되며 연극적으로 그려질 때 강해진다.

그가 여성스러운 톤으로 과장되게 "수현아, 너 요즘 너무 잘 나가더라"라고 말하면 웃어넘길 수 있다. 하지만, 진지한 톤으로 "김수현씨 요즘 너무 멋져요"라고 말한다면, 그 낯설은 정서적 파장을 한국 대중들은 수용할 수 있을까?

만약에 한국에 어떤 청춘 게이 스타가 커밍아웃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미묘한 정서적인 벽은 견고할 것 같다. 그가 진실되게 내뱉는 말 하나 하나, 그저 또래 남자연예인들이 "제 이상형은 수지예요"라고 말하는 것과 등가적인 말을 하는 것조차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커밍아웃을 해도 '무성적인' 존재인 게이

한국의 문화는 여전히 공개 석상에서 게이가 그저 게이로 존재하도록 용인하지 않는다. 홍석천의 캐릭터가 그러하듯 남성성을 배제하고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과장되게, 그래서 역으로 무해한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수용될 수 있다.

이런 자기방어적인 역동은 사실 홍석천뿐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 게이청년들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기도 하다. 남성집단에서 게이들이 대체적으로 가장 먼저하는 액션은 "나는 눈이 높아서 너 정도 되는 애들은 성에도 안 차. 남자로 안 보여"라고 미리 선을 긋는 일이다.

그렇게 해야만 그들도 안심하고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커밍아웃을 하더라도 사회 속에서는 여전히 '무성적인' 존재인 것이다. 왜냐하면 조금의 진심이라도 그들에게 묻어나는 순간, "나는 그런데 쿨하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당혹스러운 얼굴을 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방송인 홍석천은 자신을 둘러싼 역경들을 훌륭하게 이겨내고 있다. 그런 진심을 알기에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그를 치켜세우기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노력을 단순히 개인의 성숙한 대처방식으로 칭송하고 넘어가기엔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방송에서 그는 자신의 게이성(?)을 역으로 과장함으로써 무해한 존재로 수용된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페르소나를 벗고 맨 얼굴을 보이는 순간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도 같이 두렵다.


태그:#홍석천, #LGBT, #동성애,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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