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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다시 태어나도 아빠랑 결혼할 거야?"
"아니."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고 나니 괜히 머쓱해졌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아이도 민망해하는 표정이었다.

"왜? 두 분 사랑해서 결혼하셨잖아요. 게다가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셨다면서요. 그럼 그만큼 사랑이 깊었을 텐데."

아이의 입에서 나온 사랑이라는 말에 당황스러워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도도했던 나, 그 남자에게 첫눈에 반했다

'사랑' 말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그리고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십대의 내 사랑을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사랑' 말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그리고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십대의 내 사랑을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 (주)에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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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말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그리고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이십대의 내 사랑을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생각해 보니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도 겨울 끝에 새순이 돋아나는 봄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그 때 나는 대학 졸업반이었고 남편은 다른 대학교 졸업반이었다. 새학기면 으레 행해지는 선후배 인사 자리 모임에 참석했는데 그곳에 남편이 모습을 나타냈다.

알고 보니 과대표가 그날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교수님도 참석하는 모임이라 빠질 수가 없어 친구들을 그 자리로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우리와 함께 합석을 하게 되었고 술잔이 오고가면서 마치 소개팅 같은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동그란 얼굴에 안경을 쓰고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던 남편은 부잣집 도련님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런 외모와는 달리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는 묘한 끌림을 갖게 했다. 게다가 소위 명문대라는 학벌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어 그 자리에 있는 여학생이라면 선후배를 막론하고 누구나 호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여자라면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나는 별 관심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또 그 때의 나도 우리 과의 얼굴마담으로 불릴 정도로 주변으로부터 소개팅 만남을 주선하겠다는 기회가 많았고 학교를 오고갈 때도 누군가 따라오곤 했었다.

옛말에 셋째 딸은 얼굴도 보지 않고 데려간다는 말처럼 우리 집에서 셋째 딸로 막내인 나는 어려서부터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커다란 눈에 자연스러운 쌍꺼풀, 오똑한 코에 보조개까지….  그 때문인지 나는 괜한 자존심으로 어지간하지 않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공부에 치중하는 것으로 만족하곤 했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 보기와는 달리 대학 졸업반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했었다. 그럴수록 나는 완벽한 조견을 갖춘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도 하리라는 어설픈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 내 앞에 나타난 남편은 그런 나의 어설픈 생각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다. 조건을 따지기 보다는 그냥, 무조건 좋았다. 그런데 남편 쪽에서 예상과는 달리 나에게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모임은 파했고 그러 인해 나 혼자만의 가슴앓이가 시작되었다.

친하지도 않았던 과대표에게 말을 건네기도 하고, 슬쩍 친구들을 물어보기도 하고, 과대표가 참석하는 모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 나가고. 그렇게 한 달쯤 후, 나는 학교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남편을 만나게 되었고 첫 눈에 반한 나의 사랑도 시작되었다.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편도 그날 나를 보고 첫눈에 반했지만 과대표로부터 내가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먼저 내 마음을 알기 위해 모른 척 했고 다음에는 나름 애를 태우기 위해 시간을 끌었다는 것이다. 내 자존심에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남편이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 생각해 보면 흔한 말로 눈에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던 것이다.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진 것은 없어도 마냥 즐거웠던 그 때, 남편을 만나는 일이 나에게는 전부가 되어 버렸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마냥 기다리면서고 남편이 내 손을 꼭 잡아주면 기다리느라 지루했던 시간들은 모두 잊어 버리고 말았다.

다시 태어나도 이 남자와 결혼할까

그 후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나의 사랑, 우리의 사랑은 지속되었고 언젠가부터는 결혼을 꿈꾸게 되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다섯 해를 보내고. 하지만 결혼을 입에 담고나서부터 우리의 사랑은 힘든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 사람 눈매가 매서워. 나중에 고생한다.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 찾아봐도 늦지 않았어야…."

엄마의 간곡한 부탁이 급기야는 외출 금지령으로 이어지고.

"성이 같아서 문중에서 반대한다는 거야. 본이 다르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만나 보지도 못한 시댁에서의 무조건적인 반대에 남편은 그저 기다리라는 말밖에는…. 유난히 어머님께 효자 노릇을 하던 남편은 며느리 감으로 나를 반대하시던 어머님께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런 남편을 보며 원망도 많이 했다. 지리한 기다림은 막연한 불안함으로, 답답함에서 초조함으로 변했다.

결국 나 혼자 어머님께 찾아가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길 한 번 주시지 않는 어머님께 잘못했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해야 했다. 다리가 저려서 휘청거리며 집을 나서면 마당에는 하얀 목련꽃이 피어 있었다. 그 때도 봄이었다. 눈이 부시게 하얀 목련꽃을 보며 울기도 참 많이 울었었는데…. 지금 그렇게 해보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꿈에 그리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예식장에 들어설 때도 예식장 화단에는 개나리, 진달래 같은 꽃이 활짝 피어 있던 4월이었다.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목련꽃이 하얗게 피어 있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 세상살이를 하다 보니 사랑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남편의 사업이 부도를 맞아 모든 것을 내놓고 나서야 했을 때, 나는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사랑만 바라보고 결혼한다는 것이 어리석다는 생각까지도 갖게 되었다. 남편이 저질러 놓은 일들을 모두 떠안고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나로서는 남편에게 따뜻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렇게 쉬지 않고 달려와 보니 어느새 쉰을 훌쩍 넘겨 버렸다.

"미안해, 고생만 시켜서. 결혼하면 정말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았었는데… 아무튼 고마워."

힘들 때 팔았던 결혼반지를 빼고 난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워주는 남편을 보며 그제서야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루하루 돌아오는 날이 숨 가쁘고, 툭하면 어슴푸레 밝아 오는 새벽을 맞이해야 했던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곁에서 지켜주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서야 사랑을 조금 알 것 같다. 너무 철이 늦게 든 게 아닌가.

세월을 속일 수 없는 것처럼 새치가 하나, 둘 늘어가는 남편을 보면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이 많기를 바라는걸 보면 나도 정말 나이 들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사랑이라는 게 정말이지 여러 가지 모습이라서 그래. 너처럼 이십대의 정열적인 사랑도 좋지만 지금 엄마처럼 묵묵한 사랑도 좋은 거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겠다. 다시 태어나도 아빠와 결혼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다시 꺼내본 내 사랑의 설렘으로. 사랑? 사랑은 숨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질 뿐, 그래서 우리들이 잘 느끼지 못할 뿐, 사랑은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을 얼싸안아 우리를 살아 숨쉬게 한다. 예전에도,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내일도.

덧붙이는 글 | 사랑이 뭐길래-응모글



태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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