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김영사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김영사 ⓒ 김영사
절판된 책을 구하기란 때에 따라서는 여의치 않다. 우연찮게 헌책방 구석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소비자 개인이 온라인 서점 등에 올려놓은 고가의 중고책을 마주하게 되면 한숨부터 나오기 마련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출판사에서 복간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런 경우는 무척이나 드물어서 제때 책을 손에 넣지 못하면 낭패를 보기 일쑤.

그러나 (출판사는 다르지만) 이번에 개정판이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은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는 어찌 보면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고도 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저자가 독자의 머릿속을 끊임없이 자극해왔던 헨리 페트로스키였기 때문일 테지.

과거 <서가에 꽂힌 책>이나 <연필> 등은 독특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였는지 독자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회자되었던 바 있다. 굳이 덧붙이자면 연필 깎기의 달인(!) 데이비드 리스의 <연필 깎기의 정석>(프로파간다, 2013)을 비롯해 기상천외한 내용이 담긴 책들은 언제나 인기몰이를 해 왔다.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김영사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김영사 ⓒ 김영사

세 갈퀴와 네 갈퀴 포크가 도입되면서 후자는 때로 '분리형 스푼'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더 이상 나이프로 음식을 떠먹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알뿌리 모양으로 구부린 칼날은 더 만들기 쉬운 반듯한 형태로 되돌아갔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어온 관습 때문에 기능 면에서 비효율적인 이 나이프들은 19세기 전반에 걸쳐 아직 옛 습관에 젖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음식을 입에 집어넣는 데 사용되었다. 이 세트들은 왼쪽부터 대략 1805년, 1835년, 1880년의 것이다. - 본문 p.39

윌리엄 제임스에 따르면 인간이란, 그 본성이 수십 가지 혹은 수백 가지 본능으로 이루어져 있다. 페트로스키 역시 머리말에서 "기술이 만들어낸 하나의 인공물은 어떻게 다른 모양이 아닌 현재의 모양을 하게 되었는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처럼 독특하면서도 보편성을 갖춘 제품들이 설계되었는가"와 같은 의문들이 자신으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만들었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인간의 본능 중 하나는,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특정 물건(기계, 제품, 인공물 등 모든 것)을 조금 더 다루기 쉽고 안전하며 디자인적으로도 아름답도록 바꾸길 원하는 데에 있다. 물론 여기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보편성'이란 것 또한 필요하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모든 것을 언급할 수 없으므로, 일단 한국어판 제목에 있는 포크를 보자. 최초로 등장한 식사용 포크는 두 개의 갈퀴를 달고 있었다고 한다. 페트로스키는 만일 갈퀴가 하나뿐이라면 나이프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행여 소스를 바른 새우라도 먹을라치면 방울져 뚝뚝 떨어지는 소스를 수직으로 들어 올린 후 수평인 혀에 올려놓기 위해 손을 비틀어야만 한다고 토로한다.(p.33)

시간이 흘러 4개의 갈퀴가 달린 모양으로, 그러니까 이 '포크의 진화'는 식탁용 나이프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기존의 뾰족했던 나이프는 포크의 발달로 끝이 뭉툭하게 변하기에 이르렀다. 날카로운 나이프는 식탁 위에서의 필요성을 상실했고 심지어 포크는 다양한 용도에 따라 적절하게 변형되기도 했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 하나는 인도 등지에서 음식을 먹는 방법이다. 알다시피 그들은 맨손을 사용하는데, 생각하기에 따라 맨손으로 음식을 먹는 행동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우리조차 햄버거나 빵, 그리고 적절치 않은 비유일는지 모르겠지만ㅡ 얇은 상추 위에 고기를 얹어놓고 손에 물기를 머금은 채로 입에 가져가질 않나. 페트로스키가 지적하듯 이러한 음식들은 문화적 목적과 그것에 따른 기술적 대안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야말로 '불만이야말로 발전을 위한 최초의 조건'이라 할 만한 것이다.

지금 나는 의자에 앉아있다. 앞에는 노트북과 마우스가 있으며 왼쪽으로 재떨이와 담배 그리고 휴대전화가 보인다. 오른편에는 전선이 잘 정리된 온풍기가, 밑에는 털이 부숭부숭한 슬리퍼가 양쪽 발을 감싸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편의 혹은 편리를 위해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산물이다.

그렇다면 다시 페트로스키를 의문스럽게 했던 질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우리 곁에 있는 수많은 물건들이 '왜 현재의 모양'을 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보편성'을 갖춘 모습으로 변하였는지, 더군다나 그 형태는 다를지언정 본질적인 기능만은 똑같은 도구들이 쓰이는 이유로 말이다.

그는 최초의 스푼은 아마도 오므린 손이었을 것이라 썼다. 물론이다. 그러나 인간은 손가락이라는 '다섯 개의 갈퀴'를 이용해 본래의 갈퀴들을 더럽히지 않을(혹은 다치지 않게끔) 방법을 고안해내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것은, 인간은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필요성의 논리ㅡ과장하자면 '공공의 미(美)와 편의'ㅡ라는 바다에서 영원히 자맥질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aaaaiiight.tistory.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백이호 옮김, 이인식, 김영사(2014)


#아잇#김영사#헨리 페트로스키#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