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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MBC>와 <MBC경남>이 주최한 섬진강 꽃길 마라톤대회는 전국에서 4000여 명의 마라톤 동호인과 외국인도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여수MBC>와 <MBC경남>이 주최한 섬진강 꽃길 마라톤대회는 전국에서 4000여 명의 마라톤 동호인과 외국인도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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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오셨슈? 여수에서 오셨으니 일등 해야제~"

50대 후반 아주머니는 내게 이렇게 응원했다. 슈퍼를 운영하는 평화상회 주인이 아침부터 분주하다. 가게 앞에 줄 선 차량에서 참가자들이 아침 대용으로 빵과 우유를 찾는다. 시골 가게에 모처럼 활기가 넘친다. 16일 아침 마라톤 대회가 열린 광양시 다압면 섬진강 둔치마을 한 슈퍼마켓의 아침풍경이다.

42.195km... 인생은 마라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42.195km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시작부터 전력 질주를 하면 완주가 어렵다. 그래서 자기만의 페이스대로 나만의 레이스로 달려야 한다. 마라톤의 기본은 끈기와 집념, 특히 오버페이스를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마라토너들이 자주하는 얘기가 있다.

"풀코스도 뛰어보지 않고 인생을 논하지 마라!"

난 어릴 적부터 왕복 10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닌 탓에 마라톤을 좋아한다. 학교에 늦지 않으려고 밥만 먹으면 뛰었다. 대회에서 풀코스, 하프코스를 십여 차례 뛴 경험도 있다.

마라톤은 꾸준한 연습 없이 대회를 나갔다간 낭패를 당한다. 처음 멋 모르고 풀코스 대회에 출전했다가 하늘이 노랗던 기억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후 여러 차례 대회에 출전해 하프 정도는 거뜬히 뛴다. 하지만 대회를 잊고 산 지 4년이 지나던 차 우연한 기회에 라디오 광고를 접하게 되었다.

"3월 16일 광양시 다압면 섬진강 둔치에서 펼쳐지는 제6회 MBC 섬진강 꽃길 마라톤 대회, 참자들의 많은 접수를 바랍니다."

이 소식을 듣자마다 후배와 함께 대회참가 접수를 했다. 하프코스 참가비는 3만 원. 모처럼만에 출전하는 경기라 기대도 컸다. 이참에 신발과 러닝복도 샀다. 대회를 나가려고 한 달간 준비운동 LSD(Long Slow Distance)에 돌입했다. LSD란 '장시간, 천천히, 긴 거리를 달린다'는 뜻으로 시민러너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훈련 중의 하나다.

국제대회로 키우겠다던 섬진강 마라톤, 글쎄...

 단상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섬진강을 달린다'라는 문구가 눈에 뛴다.
 단상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섬진강을 달린다'라는 문구가 눈에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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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MBC>와 <MBC경남>이 주최한 섬진강 꽃길 마라톤대회는 전국에서 4000여 명의 마라톤 동호인이 참가한 가운데 몸풀기를 하고 있다.
 <여수MBC>와 <MBC경남>이 주최한 섬진강 꽃길 마라톤대회는 전국에서 4000여 명의 마라톤 동호인이 참가한 가운데 몸풀기를 하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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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많은 정치인이 참석했다. 여수MBC사장을 포함해 박준영 전남도지사, 이성웅 광양시장, 주승용, 이낙연 전남도지자 예비후보등이 참가해 인사말을 건넸다.
 이날 많은 정치인이 참석했다. 여수MBC사장을 포함해 박준영 전남도지사, 이성웅 광양시장, 주승용, 이낙연 전남도지자 예비후보등이 참가해 인사말을 건넸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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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기다리던 출전의 날이 왔다. 섬진강에 도착하니 많은 차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섬진강에는 매화꽃이 활짝 폈다. 하얀 매화와 붉은 매화가 울긋불긋 꽃망울을 터트렸다. 봄기운이 절로 난다.

이날 여수MBC와 MBC경남이 주최한 '섬진강 꽃길 마라톤대회'는 전국에서 4000여 명의 마라톤 동호인이 참가했다. 풀코스와 하프코스, 10km, 5km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어 경기가 진행됐다.

사회자의 진행으로 가벼운 몸풀기가 끝나자 정치인 소개가 이어졌다. 이날 주최 측인 윤영욱 여수MBC 사장을 비롯해 박준영 전남도지사, 이성웅 광양시장, 주승용, 이낙연 전남도지사 예비후보 등이 참가해 인사말을 건넸다. 특히 광양시장의 인사말은 뇌리에 확 꽂혔다.

"팔봉산에서 만덕포구까지 220km에 이르러 매화꽃 향기가 넘칩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이 대회에 참가해 주실 것을 부탁 드리고 이 대회를 빠른 시간 내 국제대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좋은 것은 딱 여기까지. 대회시작과 함께 약 10분 간격으로 출발이 이어졌다. 정치인들이 누르는 출발 폭축 속에 풀코스 주자들의 힘찬 레이스가 펼쳐졌다. 이어 하프주자는 그 뒤를 이었다. 나도 730여 명의 일행에 섞여 뛰기 시작됐다.

자신감이 넘쳤다. 하프쯤이야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꼭 이 대회에서 꼭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마라톤은 후반이다. 하지만 초반에 뒤쳐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앞으로 치고 나갔다. 섬진강을 따라 달리는 이 기분! 죽여준다.

출발선 비포장길을 벗어나니 오르막이 나왔다.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런데 일이 벌어졌다. 약 2km를 지나자 선두그룹이 180도 방향을 틀어 우리를 보고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막 소리를 질렀다.

"잘못 왔소. 턴하시오. 여긴 풀코스 길이요. 하프코스가 이 길이 아닌가베."

굴욕이었다. 그 소리에 뒤따르던 주자들은 즉시 방향을 틀었다. 선두그룹을 뒤따라 갔다. 왕복 4km를 되돌아가니 출발선이 보였다. 알고 보니 하프코스는 출발선을 지나 약 150m에서 오른쪽 길로 턴을 했어야 했다. 오르막을 넘으면 안 되는데 아무런 안내판을 두지 않아 풀코스 주자를 따라간 게 화근이었다. 현장에선 참가선수들의 격한 불만이 빗발쳤다.

"이래 가지고 무슨 국제대회 나불거려. 참 한심한 *들!"

힘이 쭉 빠졌다. 좋은 날씨에 기록을 기대했던 선수들은 이를 악물었다. 또 분을 삭이며 달려야 했다. 처음부터 코스가 틀리니 중간 중간 거리를 알리는 안내표시판의 숫자도 맞지 않았다. 주최 측에선 부랴부랴 4km를 뺀 거리를 조정한 듯 싶었다. 그래서 반환점이 어디인지도 분간이 안 됐다.

한참을 가니 안내원이 반환점이니 돌아가라고 일려 줬다. 10.5km에서 찍어야 할 반환점 확인 전자센서는 유턴 후 한참 만에야 보였다. 거리가 제대로 맞을리 없다. 한마디로 규정을 어긴 개판이란 말 밖에 달리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하지만 결승점을 통과하니 기분은 좋았다. 전광판엔 1시간 22분의 기록이 찍혔다. 지금까지 나올 수 없는 기록갱신이었다. 급조해서 거리조정을 한 탓에 거리가 맞지 않아 기록이 당겨진 셈이다. 기록상으로 약 2km의 거리가 사라졌다고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최악의 하프코스... 항의 빗발, 참가비 반환하겠다

 마라톤 대회가 끝나고 여천NCC 달리기 동호회가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마라톤 대회가 끝나고 여천NCC 달리기 동호회가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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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정 망덕포구가 있는 광양시 다압면 섬진강 둔치길에 매화꽃이 만발했다.
 청정 망덕포구가 있는 광양시 다압면 섬진강 둔치길에 매화꽃이 만발했다.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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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마친 후 항의가 빗발쳤다. 기자 역시 이날 사태에 대해 담당자에게 입장을 묻자 "하프코스가 잘못 운영되었다"면서 "참가비를 반환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홈피에 올리겠다"라고 즉석 인터뷰를 마쳤다.

현재 주최 측은 마라톤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발표했다. 또 하프코스 730여 명의 참가비 3만 원씩 총 2200여 만 원을 환불해주기로 결정했다. 지금까지 운영 미숙으로 참가비를 반환하는 어이없는 상황은 처음 접해본다. 이날 경기중단으로 하프코스는 시상식도 사라졌다. 홈피에 실린 안내문이다.

"미흡한 대회 운영을 보여드린 점,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프코스 이탈이 발생하게 된 것은 코스방향유도를 책임지던 선두 오토바이의 착각으로 인하여 코스이탈이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하프코스 참가자 여러분들께 큰 혼란을 드리게 된 점 깊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염불보다 잿밥'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인들의 소개는 빠짐없이 하면서 정작 경기에 중요한 '코스안내판' 하나 설치 못한 주최 측의 무성의에 화가 치민다. 마라톤을 정치인을 위한 이벤트 장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섬진강 마라톤 대회가 진정한 국제대회를 꿈꾼다면 규정부터 확실히 하라. 마라톤 동호인의 한 사람으로서 꼭 들려주고픈 말이 있다.

"신성한 스포츠 마라톤을 정치에 이용마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 <전라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섬진강 마라톤대회#하프굴욕#마라톤#다압면 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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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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