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세기 최후의 전위 예술.' 

프랑스의 세계적인 문명 비평가 기 소르망은 1998년 6월 16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500마리를 끌고 방북하는 장면을 이렇게 표현했다.

같은 해 10월 2차로 소 501마리가 북한에 갔고 그 직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다. 2년 뒤인 2000년 6월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그해 8월 개성공단 건설 합의가 나왔다. 그리고 이 과정들이 쌓여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과 10·4선언이 나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이 빛나던 순간이다.

이런 장면이 박근혜 정부에서 재현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포항제철 철강을 실은 현대상선 배가 포항을 떠나 북한 나진으로 간다면, 수출품을 가득 채운 컨테이너선이 부산에서 출발해 나진으로 간다면, 이 수출품들이 나진에서 기차로 옮겨져 러시아의 국경도시 하산을 통해 유럽으로 간다면 어떨까.

부산에서 출발해서 북한을 관통한 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유라시아 철도). 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 대목 중 하나로 한반도종단철도(TKR)를 만들고 이를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결하는 것이 최종 목적인 이 구상은,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부산과 나진을 배로 연결하는 사업은 꼭 그렇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정상회담에서 한국-북한-러시아를 잇는 물류협력사업에 합의하고 그 첫 단계로 나진과 하산을 연결하는 54㎞ 구간의 철도 개선과 보수, 나진항 현대화사업에 우리 기업이 간접 참여하도록 한 바 있다.

"나진-하산 물류사업 9월쯤 큰 진전... 내년 봄엔 물류 이동도 가능"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이에 따라 코레일, 포스코, 현대상선 등 우리 컨소시엄 3사 관계자들이 지난 2월 중순 현장실사차 나진을 방문했고, 그 결과에 대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잘 이뤄지면 금년 9월쯤에 아마 큰 진전이 있을 것이고, 내년 봄에는 나진-선봉지역을 통한 물류 이동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이와 관련해 "부산과 포항에서 나진으로 수출품을 실은 거대한 상선들이 떠나고, 북한 나진과 러시아 하산, 우수리스크, 크라스노야르스크, 모스크바를 거친 뒤 핀란드를 통해 유럽으로 수출품이 이동하는 장면은 꽤 긴 시간동안 언론의 화제가 될 것"이라며 "특히 통일대박론이 화제가 된 상황에서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발휘하지 않겠느냐"고 예측했다.

남북정상회담 정례화는 어떤가. 박 대통령 임기 내에 2회 이상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다. 한번은 평양에서 두 번째는 서울 또는 개성, 금강산 같은 곳에서 말이다.

대통령이 통일준비위 위원장... 독일에서 '통일독트린'도 준비

물론 이 모든 것은 현재까지는 '가능성'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리 멀기만 한 것도 아니다. 집권 2년차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구호는 통일이고, 최근 박 대통령의 핵심 메시지들은 '통일대박론'과 연결돼 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 16개 중 박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은 것은 통일준비위원회가 유일하다. 또 그는 25일 방문하는 독일에서 '통일독트린'을 내놓기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황이 이 정도면 박근혜 정부와 북한과의 물밑접촉은 이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박 대통령이 국회 상임위원회 민주당 간사단과 한 만찬에서 "대북 대화 창구가 필요한데 여기 저기 줄을 대려는 사람이 있으나 그 사람들이 어떤 정부 사람들인지 알 수 없어 비선라인을 활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청와대가 이를 "북한과의 대화채널을 공식라인을 통해 열어가겠다"고 설명한 게 벌써 지난해 4월의 일이다.

문제는 이런 박근혜 정부의 '통일 드라이브' 과정에서, 진보개혁 세력 특히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이 통합하는 새정치연합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요 의제가 제기되면 그에 대한 반대 담론이 제기되고 토론이 이어지면서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민주정치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2014년 초의 통일 담론이 '통일대박론'뿐이라는 것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주도권을 쥐기는 했지만 '통일대박론'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통일은 대박이라면서도 통일을 위한 기초과정인 교류와 협력은 최대한 틀어막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직접 강조한 '나진-하산 물류 프로젝트'를 위한 방북은 5·24조치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경우'라며 허용했지만, 그 밖의 방북은 불가능하다. 쌀은 물론 옥수수·밀가루 지원도 안 된다.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의 '진정성'만 강조할 뿐 손을 놓은 지 오래다. 북핵 6자회담 중국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방북중인 현재 한국 수석대표는 공석인 상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포함한 수많은 문제점을 지적하는 새정치민주연합쪽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통일 문제에 130석 거대 제1 야당 목소리 안 들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이 18일 오후 경기도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경기도당 창당대회에 나란히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 경기도당 창당대회 참석한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창당준비위원장이 18일 오후 경기도 수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경기도당 창당대회에 나란히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통일대박론'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상대방 입지를 강화해 줄 뿐이라고 보기 때문일까. 아니면 통일문제는 정보 접근이 어려운 사안의 특성상 섣불리 뛰어들어서는 안된다고 보기 때문일까.

보수-진보의 기준이 불분명한 우리나라에서 기준점은 대북정책이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다른 정부와 달랐던 점도 경제나 사회정책이 아니라 대북 관계였다.

'야권 통합'은 집권을 위한 필수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못 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우리 나라에서 분단 극복 문제를 빼고 표를 달라고 할 수 없다. 집권해도 성공하기 어렵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의원 시절 '4대국 보장론'과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통일론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영향을 준 '3단계 통일론'을 내놓았다. 이렇듯 통일 방안에 대한 심도 깊은 대안이 있었기에 그는 집권을 했고 햇볕정책을 펼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의 통일 드라이브에 정면 대응하기는커녕, '6·15선언과 10·4선언 존중·승계 제외' 운운으로 논란을 일으키는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의 수준으로는 미래를 얘기하기 어렵다.


태그:#통일대박
댓글4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